[詩가 있는 풍경 13] 안도현作, ‘개망초꽃’
서민들처럼 흔들리며 사람 눈길 닿는데 피어나
흔한 만큼 우리들 일상에 익숙한 동변상련의 꽃이 개망초꽃이다. ⓒ양주승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 (안도현, ‘개망초꽃’ 전문)
개망초꽃은 여름에서 가을 문턱까지 흰색 혹은 연한 자줏빛으로 핀다. 이 꽃은 생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흔하다는 말은 그만큼 사람 사이에서 핀다는 것이다. 들길에 무더기로 피는데 흉년일 때 더욱 불붙는다.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빈 자리를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간다. 논밭에 이 꽃이 많이 피면 농부들은 흉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다른 농작물이 더 이상 희망을 버렸을 때에 핀다. 외진 땅뙈기에 주변 잡풀들과 더불어 자란다. 공동체적 친환경적 친인간적인 꽃이다. 아이들은 꽃으로 왕관을 만들고 겹겹의 잎을 따낸 후 빙글빙글 돌리며 헬리콥터 놀이를 한다. 개망초꽃은 아무 곳에서나 잘 뛰노는 아이들을 닮았다.
군락을 이뤄 하늘을 배경으로 사이좋게 속삭이는데 빌딩 숲 도심에서 하얀 산책길을 이루는 탓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에 자지러지게 핀 개망초꽃 길은 이미 시민들의 산책길로 사랑받고 있다. 그렇게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는 개망초꽃.
하잘 것 없는 듯해도 저마다 꿈꾸며 사는 서민들처럼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을 통해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면/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라는 화두를 이끌어냈다. 꽃도 사람도 동변상련의 위로의 대상자로 그려져 서로에게 용기와 삶의 의미를 던져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것처럼.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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