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푸드세대 대학생들 캠퍼스에서 김장담가 독고노인에게 배달

 

(자료사진; 고양시 제공) 

 

김치 품앗이의 추억

본격적인 김장철에 접어들었다. 이즈음이면 집집마다 붉은 고추 가루를 버무린 어머니의 손놀림이 또 하나의 겨울 풍경 중 하나이다. 어릴 적 분교 사택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김장김치를 만들면 강 건너 이웃마을로 가서 집집마다 한 포기씩 배달  하는 일을 하루의 일과로 삼을 때가 있었다.

무엇을 얻으러 가는 일도 아닌 것이고 갓 담은 김치를 나눠주는 일이어서 늘 발걸음이 가벼웠던 듯하다. 특히 손가락에 한 가닥의 김치를 감아 올려 입에 물고서는 “야, 맛있다”고 해주던 이웃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아름답고 행복한 겨울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집으로 올 때는 빈 그릇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골 이웃들은 홍시 혹은 총각김치, 시루떡 등을 그 집에서는 답례로 전해주곤 했다.  

김장 때 어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노란 속잎을 된장에 발라 먹는 일도 즐거운 일었다. 심부름 다니다가 더욱 배가 고파 맛있던 쌈김치. 길 가던 이웃주민들을 불러 모아 어른들은 어른대로 마당에 둘러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풍경. 막걸리 한 사발에 삶은 돼지고기를 쌈으로 상 차려 주던 우리네 아낙들의 넉넉한 풍경은 지금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는 마을에 작은 일 하나에도 늘 함께 나누던 공동체 문화 중 하나였고 김치 품앗이이기도 했다.

 

외국이 인정한 세계적인 김치, 국내에서는 감소 추세

우리나라 김치는 재료와 담는 방법, 지역에 따라 배추김치와 깍두기,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깻잎김치, 도라지김치, 통김치, 물김치, 보쌈김치, 짠지 등 독특한 맛과 종류도 100여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추억과 함께 영양가 또한 무궁한 게 김치이다. 김치에는 비타민 A, B, C와 무기질인 칼슘, 칼륨, 철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김장김치는 젓갈과 해산물 등 단백질 부재료를 넣어서 영양이 풍부하고, 유산균이 많아 요구르트의 성능을 능가한다고 한다.

들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식사 후 체하는 경우 어른들이 김치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다. 이유는 김치 국물이 소화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미국의 ABC 방송과 주요 언론, 영국 BBC 방송은 김치가 조루인플루엔자 치료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닭에 김치를 먹인 결과 13마리 중 11마리에서 뚜렷한 치료효과가 있었다는 것. 가히 우리 김치가 세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치는 1980년 이후 수출은 13.5%로 느는 데 비해 국내 소비는 연평균 2.5%씩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식생활의 변화 탓이다. 입맛도 입맛이지만 김치에 스며있는 고추 맛처럼 강인한 우리네 사랑과 나눔의 정신마저 희석돼 가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운 실정이다. 

대학생들 캠퍼스에서 김장김치 담아 독거노인들에게 배달

이러한 가운데 서울여대(총장 이광자)는 재학생, 교직원, 지역주민,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캠퍼스 삼각숲에서 학부모들이 기증한 1톤 트럭 분량의 배추를 가지고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를 치른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이주 노동자들이 김치 담그기를 통해 우리네 공동체 문화를 체험하는 일, 담근 김치를 학교 주변 공릉동 일대 독거노인과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10kg 단위로 포장하여 집집마다 배달하는 나눔의 행사가 아름다워 보인다. .

서로 어우러져 맛깔을 내는 김장 김치처럼 모두가 사랑을 모아 정성으로 포갠다는 점에서 무척 아름다운 축제로 보인다. 패스푸드에 길들여진 요즈음 대학생들이 이 행사에 참여해 김치 한포기가 아쉬운 이웃들을 찾아가 전하는 모습 또한 작은 감동으로 다가선다. 차제에 젊은 대학생들이 한 때 유행한 농활처럼 매년 이맘 때 우리 농산물로 우리 김치를 담아 우리네 전통적인 맛과 멋을 알고 이를 통해 사랑을 나무는 김장철 작은 축제문화로 기억되고 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주 동안 합숙하며 바롬교육을 받았다는 박은진(언론영상 4년) 양은 “배추김치를 담는데 마늘, 생강, 멸치액젓,새우젓,고춧가루,깨소금,굵은소금 등 그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간지 몰랐다”면서 이번 행사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면서 “배추를 반으로 가르고 소금물에 적셔 소금을 켜켜로 넣어 절여두고 기다리면서 전통 김치담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조들의 맛내기 솜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을 뿐 아니라 매사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지혜도 배웠다는 것이다.

이 대학 유홍식 홍보실장(언론영상학과 교수)은 “사실 남정네들은 어머니와 아내가 담근 김치를 당연한 음식물로 먹어왔지 않느냐” 반문하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김치 한포기에 이렇게 수많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면서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마을에서 대대로 뿌리 내려온 나눔과 사랑의 정신이 대학 캠퍼스와 우리 사회 곳곳으로 번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튼 고단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나 독일 시인 괴테는 말했다. “아무리 넓은 공간일지라도 설사 그것이 하늘과 땅 사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힘으로 채울 수 있다”라고. 사랑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 한 포기의 김치를 안고 배달 가는 대학생들과 손녀딸들의 어여쁜 정성을 안고 겨울나기에 힘을 받을 독거노인들을 그려본다. 우리네 인생이란 늘 그렇게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버무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