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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인제수해복구 현장에서 느끼는 인간의 왜소함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6. 7. 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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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수해복구 현장을 다녀와서] 재앙 앞에서 왜소해지는 인간군상


26일 신문발전위원회 9명의 직원들은 강원도 인제 수해현장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적은 인원이지만 전날부터 삽을 준비하고 그곳 주민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빗줄기가 내리다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2시간여 끝에 도착한 인제읍. 465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덕적리, 덕산리, 가리산리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처참한 광경을 하고 있었다. 수마가 핥고 간 지 10여일이 지났는데도 이런데 당시 주민들의 상황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음이 분명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고 사람 키를 넘기는 돌덩이와 집체만한 거목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을 뿐 사람이 다니는 길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돌덩이와 쓰러진 집채, 산산조각 난 아스팔트 조각, 가드레인 등이 뒤얽혀 있는 현장을 중장비들을 동원해 힘겹게 처 올리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우리 일행은 왜소해졌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가져간 삽자루는 그 거대한 자연재앙 앞에서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물난리로 고통받은 주민들에 대한 가슴 아픈 심정은 전 국민들이 갖는 인지상정이었겠지만 현지 주민들의 생사를 다투며 절규했을 당시의 상황을 목격하면서 그 마저도 사치와 수치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잘려간 논밭, 트럭과 승용차가 처박히고 그 바퀴들이 신나게 굴렀을 도로는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잘려나갔는데 흙더미가 붙어있는 곳에 돌을 깔고 다져서 임시도로를 만들어 복구장비가 오가고 1시간 단위로 마을버스가 지친 나그네 표정으로 산길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런 지리적 악조건과 비포장 도로 사정으로 인제읍에서 16km 거리의 덕산리와 가리산리를 오고가는 시간은 평소 20분에서 지금은 1시간을 넘기고 있다.


이 일대 수해 피해지역은 현재 도로와 통신시설을 임시 복구한 상황이다. 아직도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하기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전기시설도 없는 후덥지근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라면과 쌀, 물을 지원받아 하루살이를 하고 있을 뿐, 예전의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까마득해 보였다. 그런 현장을 바라보면서 이웃돕기 성금이며 정부의 지원이 행정 간소화를 통해 이들 주민들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신속하고 범정부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책이 아까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굳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러한 현장을 목격하고 삽자루 들고 달려갔던 지역에서 느끼는 수치심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되찾아 보기로 했다. 영국 비평가 카알라일은 “수치심은 모든 도덕의 근본이다”라고 하였지 않던가. 작은 땀방울이라도 흘리고 가야지.... 그래서 다시 군청을 찾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소개받은 곳이 내린천에 있는 3천 평 규모의 1급 정비업소 대일공업사였다. 인제읍의 유일한 자동차 검사소로 이번 집중호우 때 산사태로 공장이 흙더미에 파묻혀버린 것이다. 공장에 있던 승용차는 물론 모든 부속품이 흙에 파묻혀 덤프트럭 25대, 10여 일 동안 자원봉사만 250명이 연일 투입돼 흙더미를 치우는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공장장 홍금창씨(47)에 따르면 “앞산에서 전기공사를 하면서 전봇대 설치 공사 과정에서 웅덩이를 파고 산길을 뚫으면서 산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결국 인재인 셈이다. 홍씨에 따르면 “나무와 흙더미들이 도로로 쏟아져 내려와 국도 교통이 마비되고 도로 건너편 이곳 공장으로 토사가 밀려와 쌓인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쨌든 공장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도 우리가 가져간 삽자루는 쓸모가 없었다. 물차가 흙더미를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하면 넙적한 플라스틱 삽으로 흙을 밀어내고 빗자루로 흙물을 씻어내는 반복적인 작업을 했다. 워낙 큰 정비공장인 탓에 이웃 경기도 양평군 용문리 주민들, 사회봉사 법인 굿네이버스 등과 우리 일행이 투입돼 흙더미에서 부품을 파내고 이를 세척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서먹서먹하던 봉사원들은 함께 땀 흘리면서 한 가족이 되어갔다. 오물과 흙, 기름이 범벅이가 된 악취가 진동하는 검사장 주변을 밀고 쓸고 닦아내며 저마다 행복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여성들은 공장 안에서 흙더미 속에서 빼낸 부품들을 닦는 일을 했다. 여성들 손톱은 메니큐 대신 검은 기름 때로 베여갔다.


한동안 힘에 겨워 팔을 걷어 올려 땀을 씻는 사이에 정비공장 사장이 건네 준 빵 한조각과 음료수 맛은 꿀맛이었다. 온몸에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이가 된 문명근 사장(60)은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그러면서 “흙더미에 공장이 깔리고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을 때는  살 궁리보다는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나 이름 모를 자원봉사들이 찾아와 연일 힘을 보태면서 “내가 대한민국 사람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60여명이 어울려 그날 기계와 부속품 사이에 몰려 든 오물과 흙더미들을 파헤쳐져 공장이 서둘러 가동되도록 작은 힘을 모았다. 워낙 큰 피해를 당한 공장이 완벽한 복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손길들이 계속 이어지는 한 그 삽질들이 모아져 분명 종사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필 것이다. 그래야 수해복구 차량과 장비들이 고장 나거나 부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인제군민들의 승용차 수리는 물론 정기검사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봉사라는 것은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는 영국 속담처럼,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다”는 우리 속담처럼 작은 손길이 모아져 하루빨리 활기찬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예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정열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실감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박상건(시인. 계간 섬, 섬과문화(summunwha.com)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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