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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위시대 진짜학위 받던 날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7. 8. 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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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박사 가짜학위가 이슈가 되는 이즘에

학위를 받는 기분은 묘했습니다

떡이라도 돌려 "나 진짜 졸업했다"고

증인들을 여기저기에 만들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우수깡스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오늘은 서울시내 각 대학이 일제히  졸업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시내 교통체증이 더해졌습니다.

저도 그 체증을 더한 원죄를 지었습니다.

솔직히 민망하고 송구합니다.

 

저는 오늘 11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성대는 오늘 학사 978명, 석사 806명, 박사 124명을 배출했습니다.

제가 받은 언론학 박사분야는 6명이었습니다.

아무튼 1개 대학교에서만 이렇게 많은 인력이 배출되는 것을 보면

한국은 역시 세계최고 교육열을 자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많은 소위 고급인력들이 어느 자리로 갈까?

저마다 밥벌이는 잘 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족동반 없이 직장에 출근했다가 수여식장으로 바로 갔습니다.

소지한 디카를 아무에게나 주며 한 컷 부탁해도

넉넉한 마음으로 촬영을 해주는 것이 졸업식장의 인지상정입니다

아마 동문이거나 한 울타리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친지들이라는

그런 동류의식 탓이겠지요

 

성대 심벌인 은행잎 기념탑 앞에서 한컷 찍었습니다

그런데 학위모를 턱에 단정히 매야 하는데 그냥 찍고 말았습니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민망합니다

논문 통과 전에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법부터 배웠어야 했는데

기본을 못 배운 탓입니다.

스스로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도서관 쪽을 배경으로 한컷을 찍었습니다

학위모 끈을 잘 맸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맨 것이 아니라

식장에 들어갔더니 어느 교수님이 다가와 매여주더군요

성대 전통 중 하나가 졸업식날 교수님들이 일일이 제자의 학위모를 매여준다고 합니다

 

사실 이 사진을 보면서 저 뒷편 도서관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칩니다

과제 발표 며칠 전 자료 찾으러, 논문학기 때 자료 찾으러 몇번 들락거렸던 기억,

도서관은 안 들어가고 그 앞에서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던 기억만이 많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과거입니다.

 

 

식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애국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ROTC 생도들과 교직원들이 단상 주위를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행차한 헌충원과 세종문화회관 국경일 행사를 방불케 했습니다

일정 수준의 권위있는 연출이 행사장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더군요

비표 없이 단상 앞에서 사진을 찍을 경우 진행요원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얼마후 학교 교기가 퇴장하고 총장님 이사장님 동창회장님 교수님들이 교기를 따라

식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사진이라도 한장 더 찍을 욕심으로 호주머니에서 디카를 꺼내어 한컷 부탁했습니다

졸업식장에는 학생보다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이 적은 졸업식장은 옛 눈물의 졸업식은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이라고 비웃는 듯 했습니다

학생도 학생이지만 보직교수님 외 학과별 교수님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부 때는 좋아하는 교수님과 기념사진도 찍고

선생님이 준비해온 선물로 받곤 했는데

갈수록 사제지정도 옅어져 가는 듯 합니다

강산이 변한 만큼 모든 것이 다 변하는 듯 합니다

 

문득, 마음이 옅어지는 데 학문만 깊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치있는 사람을 만드는 담론과 정확한 사람을 만드는 필기작업은

교육을 생산품화 할 뿐입니다

생산품은 곧 점수, 졸업장, 직업, 돈으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서글프지만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짜학위 논란이 불거지고 성대는 바로 며칠 전 한 유명인사의 석박사학위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진정한 교육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참 힘든가 봅니다

인간을 인갑단게 하는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

우리시대에는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인 듯 합니다

결국 교육은 누가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단히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정신을 개발하는 일만이

진정한 학문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고 했는데

저는 어느 세월에 두 다리 쭉 뻗고 자신 있게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론학 박사과정을 함께 밟아온 동기분들이십니다

논문 쓰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슨 죄인처럼 앉아 5명의 심사위원(내부 3명 외부 2명)에게

시종 일방적으로 문제점을 지적받으며 당하는 수모는

아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먹을만큼 먹은 나이이기에 그런 심사현장에서 부딪치는

자존심을 정중동으로 지키는 일이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학문의 깊이나 새로운 연구문제보다는 인간세상에서는

역시 인간끼리 부대끼는 일이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4차례 거듭되는 심사과정과 수정하는 작업에서 많이 배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다시는 그 논문을 들여다보기 싫어졌습니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속으로 마음 다독이며 함께 걸어온 동기들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깊은 동기애를 느낀 듯 합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인규 KBS이사, 이경열 방송위원회 전문위원 그리고 필자입니다 

6명이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식장에서는 세분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부과 석사졸업생은 대표들이 단상에 오르는데

박사들은 모두 단상으로 호명해  재단 이사장, 총장, 동창회장, 귀빈, 교수님들이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더군요

학위수여식 카다로그에도 박사들은 얼굴과 함께 논문명을 표기해 두었더군요

고생한 작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수여식 때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둬야 하는 세상을 맞았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가짜학위 논란으로 어수선한 시간들이 흐를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언론계 내부에서 문화종교계 내부에서 가짜경력을 알려진

연예인, 유명 문화종교인(지금 언론계에선 더 많은 사람이 거론됩니다)의 과거를

마구 쏟아내는 일에만 급급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안적인 교육과 우리사회 시스템 문제

발굴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미 이런 사실을 숙지하고 일부에서는 그런 유명인과 지척에서 생활해온

언론인들은 추호의 자기반성은 없이 털어내기에 급급한 매우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아무튼 학위수여식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워서 서둘러 학위복을 벗고 A4용지 한장짜리 학위증서를 찾아 학교를 빠져 나왔습니다

학교를 떠나지만 배울 때의 그 자세를 한결같이 견지하겠노라고 다짐해봅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그런 학자가 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중단치 않으려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학문이 세상에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세상과 함께 겸허하게 사색하고 배우면서 학문이 위태롭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양심에 반하지 않는 지식인으로 거듭나도록 각고의 시간을 경주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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