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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서 행복 따는 농부를 찾아서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4. 6. 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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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서 행복 따는 장덕룡·임연순 부부
배나무 숲에 집 짓고 자연과 함께한 한평생 배농사, 농민, 박상건


비 내리는 1호선 국도를 타고 달렸다. 성환읍 일대는 온통 배밭이다. 배 과수원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다보면 이따금 사과 과수원도 함께 하고 있다. 배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과일세트 판매를 겨냥해 배를 기르면서 약간의 사과도 재배하고 있는 것.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이면 이곳은 환상의 터널을 이룬다. 하얀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뿐하게 앉은 듯, 승무 춤이라도 추는 듯, 배꽃 핀 과수원의 풍경은 가히 감동 그 자체이다. 더위가 절정을 이룬 듯 하더니만 결실을 향해 영글어가는 배와 잎들이 출렁이는 과수원에는 빗줄기가 시원스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푸른 물결 속을 불보라 치면서 승용차를 몰고 찾아가 만난 장덕룡 씨. “농사꾼에게 단비이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만 내리면 좋겠어요.”

배나무 숲을 뚫고 찾아간 그이의 집은 동화 책 속의 풍경화 같았다. 푸르른 배 잎들이 일렁이는 나무숲에 그이의 집은 아담하고 소담하게 핀 꽃처럼 놓여 있었다. 그이는 전통적인 농촌 마을인 성환에서 태어났다. 이곳 토박이로서 15대째 농사를 짓고 있다. 어릴 적부터 농사에 맛들이며 사계절 피고 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읽고 이에 적응하면서 성장했다. 스물두 살에 지금의 아내 임연순 씨와 결혼을 하고 노모를 모시며 아버지로부터 되 물림한 배 농사를 짓고 있다.

집 앞으로는 사과 과수원, 좌우에는 드넓은 배 과수원이 둘려 퍼져 있다. 과수원은 그이 가족을 포근히 감싸 안고 삶의 숲을 이루며 그이 가족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이는 본디 농사짓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 소유의 과수원 6500 평 규모에 임대한 2만평까지 꽤 규모 있는 배 농사를 짓고 있다.

한때는 벼, 복숭아 농사도 지었다는 그이는 “농사는 저의 천직이죠. 먹고 살기 위해 짓는 농사라기보다는 저의 살붙이로서 과수원에서 기쁨을 느끼고 땀방울 흘린 만큼 보람도 맛보며 살죠. 이것이 진정한 농사짓기라고 생각해요. 제 나이 65세이지만 늘 앞서가는 농사에 골몰하며 살았고 젊은 후배들과 호흡하는 공동체 농촌 만들기에 큰 비중을 두며 살아왔어요.”

농협 부회장 출신이기도 한 그이는 이날도 농업인 체육대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젊은이들과 해외 농업 연수도 다니고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모으고 영농조합도 만들며 스스로 농업의 판로를 개척해 나갔다. 서울, 인천 등 전국을 오가며 좋은 농사법을 터득하고 판로를 뚫어가면서 경쟁력 있는 농촌 만들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도 육체도 젊어지고 농민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더라는 것이다.

배는 중국, 한국, 이탈리아, 미국이 주산지. 우리나라의 경우 나주, 진주, 영동, 금산, 완주, 논산, 청원, 성환의 행정구역인 천안 일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배는 원산지 중국에서 동아시아를 경유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들어왔고, 또 다른 경로인 중앙아시아와 내륙아시아, 코카서스, 소아시아, 서부 유라시아 쪽으로 이동해왔다.

배는 감기예방과 천식, 소화 작용에 좋아

우리나라 최초 배 재배 기록은 삼한시대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오랜 세월 속에서 우리민족의 사랑을 받던 과일이 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품종도 오래 전부터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1611년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에는 5품종이 소개돼 있고, 구한말에 황실배, 청실배 등과 같은 명칭들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 ‘본초 강목’에 따르면 배는 감기 예방은 물론 기침에 아주 좋다고 쓰여 있다. 수분함량이 85~88%, 열량은 51칼로리. 주성분은 탄수화물, 당분 10~15%. 물론 품종과 재배면적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다. 이밖에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이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C는 잎에서 동화작용의 결과로 생성된 포도당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이것이 과실로 이동하여 축적되는 데 일반적으로 햇빛을 많이 받는 과실일수록 비타민 C 함량이 많다. 사과가 배보다 비타민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배는 알려진 대로 천식, 가래, 기관지에 아주 좋다. 예로부터 소화가 잘 되고 이를 촉진시켜 주는 과일로 각광 받았다. 요즈음 음료수 대용이나 후식으로도 사랑받고, 입시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간식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풍부한 무기질과 비타민 B, C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 배즙도 인기이다. 당도가 높고 과즙이 많아 시원함을 더해주는 것. 배숙, 통조림, 잼으로도 이용된다. 부드러운 연육효소 탓에 냉면이나 육회 등에도 애용되는데, 육류에 많이 사용하는 배는 질긴 고기류에 배즙을 야채류와 같이 갈아서 24시간 정도 재워두면 육질이 많이 연해진다.

수확 시기 늦춰가며 유기농으로 건강한 과수 수확

타고난 농사꾼 장덕룡씨는 이런 배를 수확해 가락동 농수물시장과 인천 등 수도권에서 각광받는 상품종의 재배 농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인공. 판로를 전혀 걱정하지 않을 정도라는 그이는 “품질이 좋고 농산물이 안전하면 소비자들이 먼저 찾기 마련이죠. 소비자들이 맛과 안전도로 입증한 것이죠. 없어서 못 파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입니다”라고 웃는다.

그러면서 그이는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죠. 세상에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병충해를 방지하게 위해 농약만 마구 뿌려대면 과수의 윤택이나 소비자의 건강도 염려되는 일일 뿐 아니라 돈은 돈대로 더 투자되기 마련이죠. 당연히 흑자 폭이 줄여들고요. 소비자 불신도 커질 터이니 농사의 큰 장애물일 수밖에요. 따라서 수확을 1~2년 더 늦게 하더라도 땅의 성질을 미리 파악하고 자연의 숨결을 찾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땅이라면 그 잡초를 이기는 식용작물이나 화초를 기르고 궁합이 맞는 식물과 그 향기와 함께 배가 성장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배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영글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농사짓는 재미에 그이는 지금 남은 3000평 규모의 나대지에도 바로 배나무를 심지 않고 식용작물을 길러 땅도 다지고 윤택하게 만들어 옹골찬 배 농사를 또 다시 확장시켜 나간다는 계획도 갖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를 짓는 일은 한마디로 자연을 배우는 일이죠. 땅을 억지로 파헤치고 농약 뿌리고 씨 뿌린다고 많이 수확하고 판로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그거야말로 자연을 죽이는 일이고 자기 삶을 속이는 일이죠. 쉽게 키우고 쉽게 결실을 얻으려는 것은 인간사도 그렇지만 특히 자연은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유기농이 성공하고 안전한 농사법이 된 이유도 다 이런 무공해 자연, 그런 자연이 땅과 대기 속에서 원활하게 호흡하고 성장한다는 원리를 따르고 적용하는 농법 때문이죠”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농사짓는 일이 조금 늦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손길이 덜 가고 안전하고 풍성한 수확을 얻고 편안하게 농사짓는 길이란다. 그런 자연의 흐름을 좇아가는 일에 익숙해진 그이는 이런 방식으로 4~5년 다년생 작물로 배나무를 선택해 심고 건강한 배나무의 성장 촉진을 위해 햇볕 노출 정도를 늘 체크해왔고, 유기질과 화분 작물을 심어가며 잡초 서식을 막고 편안하게 배가 열매를 맺도록 배려하는 농사짓기를 실천해왔다는 것. 그런 후에 맛보는 배나무의 생육상태를 보고 너무나 행복했고 생육이 너무 좋아 걱정할 정도였다고 웃었다.

농민은 농사만 짓고 농협이 판로 맡아줬으면…

그이는 작지만 마지막 소망 하나가 있다고 말했다. “농사짓기에 자신이 생겼고 이제 돌이켜 보니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실감나요. 조상님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의미심장한 말인 듯해요. 다만 농민은 농사짓는 데만 열정을 바치고 판로 문제는 농협이 개척해 주는 시스템의 농정을 펼쳐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이의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이 좋은 배를 선택하는 방법을 묻자, 푸른 기가 없는 맑고 선명한 황갈색을 띠며 꽃자리가 납작하고 배 고유의 점무늬가 큰 것과 둥근 것이 좋다고 했다. 또 과일 껍질은 너무 두껍지 않고 수분이 많고 향이 나는 것이 좋다는 것. 특히 배는 차게 해서 먹을수록 맛있다면서 구입 즉시 하나씩 비닐 랩으로 싸서 냉장고 2℃~-1℃ 상태에서 보관하면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맛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농산물 개방에 대해서는 그이의 의견을 묻자, “한마디로 우리 농산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해요. 특히 배는 더욱 그래요”라면서 “수입산의 경우 덜 익은 것을 수확해 부패방지 농약을 처리하여 운송하기 때문에 좋지 않기도 하지만 우선은 맛이 떨어지니 우리 농산물 애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이들 부부가 과수원에서 섰다. 그이의 아내 임연순 씨에게 살짝 물었다. 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지는 않느냐고. 그러자 아내 임영순씨는 “농사가 안되고 못 살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배나무를 전정하고 배 솎기를 하고 배 봉지를 씌우고 수확의 보람을 통해 느끼는 삶의 재미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농사의 재미를 몰라요”라며 웃었다. 기르고 수확하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은 농민의 진정한 행복을 모를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 마을 과수원에 배꽃이 하얗게 뒤덮을 때는 마치 눈 내리는 모습 같아요. 그 때 꼭 한 번 더 오세요?”라고. 그렇게 여유롭고 넉넉했던 농부의 아내의 모습에서 우리 농촌의 진정한 에너지와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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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님은> 91년 <민족과 지역>으로 등단,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추진위원장, <뿌리깊은나무> < 샘이깊은 물> 편집부장을 지냈고, 현재는 계간<오크노>·계간 <섬> 발행인,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겸임교수, 농림부 공보 자문관으로 활동중입니다. [저서] <김대중 살리기>, <일류공무원 삼류행정>, <여론조작 40년>, <포구의 아침>. 최근 열일곱 시인의 작업실과 창작무대를 동행 취재한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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