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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두메산골 주말농장의 어느 샐러리맨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4. 5. 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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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박상건, 박상건

 

5일 도시, 2일은 산골 주말농장에 사는 송찬영씨


안양에 사는 송찬영씨. 그이는 두 자녀를 둔 중견 기자이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강원도 평창 오지로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그이는 가족과 함께 2년 째 이렇게 일주일동안 5일은 수도권에서 2일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두메산골 도사리에서 생활 하고 있다. 그이와 함께 그이의 주말농장을 향해 영동고속도로 진입하여 신록의 봄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용평면은 평창군 중심부에 위치한 관문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보다 훨씬 교통이 원활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 면소재지에 고속도로 IC가 두 개(장평IC. 속사IC)나 개설된 지역이다. 역설적으로 교통중심지인 셈.

평균 해발 표고 590m나 되는 전작농업지대중심의 산간 고냉지대가 바로 이곳이다. 계방산, 백적산, 금당산 등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군과 면의 행정 경계를 가른다. 그러면서 양쪽 농가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다. 남한강 최상류 지류의 하나인 속사천과 흥정천이 그 중심부로 찰랑이면서 산과 들녘의 젖줄이 되어준 채 말이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 강릉군에 속했다가 조선조에 평창군이 되었다. 그이의 주말농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틀어지는 길이 봉평 가는 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그 마을이다. 이효석은 메밀꽃을 일러 "숨이 막힐 듯 하다"고 했다. 그 소설에서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을 살아온 허생원의 단 하룻밤 사랑을 지켜보았던 물레방아는 여전히 세월이 흘렀어도 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하얗게 물보라 일으키며 돌아가고 있다.

메밀꽃 피는 봉평 마을 지나 앵두꽃 피는 도사리
허생원 일행이 당나귀를 타고서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밤새 벌판과 산길을 가야했던 대화면 소재지는 이제 승용차로 몇 분이면 당도할 수 있다. 오지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우리 농촌으로 가는 길과 오는 길이 좋아졌다는 반증이다.

매년 가을 봉평에서는 열흘간 메밀꽃 잔치가 열린다. 그 아련한 메밀꽃 향기들이 켜켜이 휘날리다가 쌓인 시골 도로를 얼마쯤 달렸을까. 오른 편에 용평면사무소 표지판이 보였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자 도사리에 있는 그이의 주말농장이 있었다. 69구세대가 사는 그리 크지 않는 마을. 크지 않은 만큼 모두가 가족이다. 옛 공동체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마을이다.

봉명에 메밀꽃의 추억이 있듯이 이곳 도사리 이웃 마을에도 ‘평백시인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시의 여울이 출렁이는 곳이니 그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고요한 사색의 공간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5월 1일에도 이웃 마을 중학교 교정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서울 사람들이 시인들과 어울려 시를 낭송하는 작은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땅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 그 땅의 귀중한 가치를 깨달으며 이를 시로 표현해 낭송하고 그 시를 들으면서 마을을 감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시의 숨결로 감상하는 맛은 직접 매료되지 않고서는 쉬이 짐작키 어려운 일일 게다. 적어도 그런 낭만과 여유를 위해 하룻밤 정도는 이곳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울창한 숲에 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주말농장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송찬영씨는 이곳에 그렇게 푹 빠져 살고 있다. 자랑이 그만 저만 아니었으니 말이다. 평창의 청정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금당계곡 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은 그렇게 울창한 숲에 새소리와 맑은 물소리 그리고 손을 집어넣으면 곧 잡힐 듯한 투명한 계곡물에 마음껏 헤치고 꼬리질 하는 피라미 떼들과 물고기들이 마을의 평화와 정겨움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드디어 그이의 주말농장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 몇몇이 미리 막걸리와 찬거리를 들고 손을 흔들며 맞아 주었다. 서른 살 안팎의 동네 청년들은 그이의 빼 놓을 수 없는 농자천하지대본인 셈. 맨 처음 그이가 이 마을에 왔을 때 타지에서 온 사람에 대한 탐탁하지 않은 눈길이나 텃새 등을 우려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그이가 힘들 때마다 마을 청년들은 농사일이라는 것은 처음 적응이 어렵다며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트랙터를 몰고 와 땅을 갈아엎었다. 그 때마다 그이의 잡념과 절망도 갈아엎어졌다. 그렇게 곁에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농사짓기 방법을 가르쳐 주고 땅에 정 붙이는 과정에 아름다운 동행을 해주었다.


아예 도시 떠나 오지마을 청년과 공동체 꿈꾸는 도시 지식인의 변신
마을 이장 김남성씨 역시 40대 초반으로 도시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정착한 경우이다. 이 마을은 이처럼 40대와 3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아주 독독한 농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장은 축산업을 하며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30대 청년도 연 소득이 5 천만 원 이상씩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 고랭지 농사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런 그이들과 땅을 일구고 그렇게 일러주는 이야기 속에서 그이는 사계절 마다 다르게 변하는 숲과 물의 빛깔 그리고 땅의 성질들을 터득했고 미래를 멋지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농사꾼으로서의 희망을 다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요즈음 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주말농장에 간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집에 간다”, “우리 동네 청년들 보러 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란다. 땅을 일구면서 느끼는 것은 농사는 결국 땅에서 땅과 함께 호흡하며 산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이라는 아주 쉬운 삶의 지혜를 이곳에서 깨달았다는 송찬영씨. 그이는 이 곳에 살수록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던 조상들이 왜 서둘지 않고 천천히 사는 법을 터득하고 이왕이면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고 자연의 생산물을 그대로 먹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살았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털어 놨다.

결국 그런 조상들의 생각이 유기농이나 무논 무농약 농법으로 후손들에 의해 경쟁력 있는 농법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 세상에 처음부터 새로운 것이 어디 있었으랴. 기존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반작용이거나 새로운 확장이 아니었겠는가. 그것이 문명의 발전이라는 코드였고 학문의 반전이라는 확장일 터이다.

요즈음 직장생활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가장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그이는 우리 농업이 우리 고유한 전통 농업 기반 위에서 시작하되 그것은 결국 지식산업으로 거듭나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한국적 경쟁력이고 우리 농업의 세계화라고 나름의 농업철학도 갖고 있었다.

지금 당장 어렵지만 돈버는 길 보다 자연을 일구겠다는 미래 농업이 꿈
지금 당장 많은 돈을 벌고 그것이 대단한 농업의 상징으로 대두되지는 못할 지라도 천천히 가는 우리네 농사꾼처럼 성급하게 자본주의 원리부터 따질 게 아니라 흙의 정직함을 믿고 정직하게 흙에 정붙이고 살아가는 유능한 지식인 농사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새로운 우리 농업, 우리 농촌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우리 농업은 분명 새로운 모습으로 탄탄하고 활력 넘치는 농촌의 모델을 만들어 그 빛을 강하게 발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열정을 다해 일구어 온 땅에서 그이는 참깨를 수확했다면서 “요즈음 시장에서 파는 깨는 대부분 중국산이죠. 그만큼 국내산 깨가 귀하죠”라면서 자신이 가꾼 깨를 애정의 손길로 만지작거리며 만족한 삶에서 우러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이는 이 깨를 안양의 이웃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단다. 그리고 함께 수확한 콩도 만만찮았는데 이웃들과 함께 메주도 쓰고 매일 식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메뉴로 접하고 있단다. 그 간장 한 방울, 쌈에 묻은 된장에서 자신의 땀방울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하고 있단다.

이 지역 특산물이기도 한 감자 수확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무침과 된장국에서 빼 놓을 수 없고 방과 후나 휴일에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친지들에게 한 박스씩 보내는 보람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농촌의 어려운 여건 있지만 영원한 환경지기로 거듭날 터
이제는 마을 사람들 덕분에 산골 주말농장의 적응기가 끝나간 셈이라면서 초등학생인 아이들도 이곳에 오면 알아서 설거지를 하고 마을 이장 아이들이 우연스럽게도 또래들이어서 늘 잘 어울리고 꽃나무에 함께 물주고 흙으로 인형 만들고 로봇도 만들면서 산골 생활에 흠뻑 반해가고 있단다. 이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그이의 보람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이는 자신만을 위한 농작물 수확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이 주말농장을 하면서 땅과 농업에 눈을 떠갔듯이 지식인 중심의 다른 예비 농사꾼들을 상대로 한 여러 프로그램을 동네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 농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 데 앞장서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두메산골이다 보니 인터넷 보급이 여의치 않고 자녀 학교 문제 등이 마음에 걸리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도 어느 일에서나 접하는 초창기의 부작용이나 감수해야 할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이. 그런 그이는 천상 농사꾼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서른 후반 젊은 지식인치고는 퍽이나 낙천적인 모습이 남다르게 보였고 영원한 환경지기, 영원한 자연지기로 거듭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런 그이가 꿈꾸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이 마을 사계절 자연의 특성을 분석해서 채소 건강식단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에 맞춰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 그리고 이런 작물 재배를 도시 사람들과 특히 도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직접 체험 재배해 보게 하는 일이다.

자신이 시골 생활 경험이 뒤늦게라도 땅에 눈뜨게 했듯이 도시 아이 세대의 농촌 사랑이 미래를 위한 농촌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등으로 부실한 자연에 대한 이해와 정서의 단조로움을 흙을 통해 충족시켜주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인근 마을과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 사계절 프로그램으로 관광마을 꿈꿔
그리고 주변 자연 관광지와 연계해 이 마을 특성을 함께 되살려 패키지로 평창 문화를 아우르는 축제와 모임을 꾸리는 일이다. 이를테면 인근 월정사나 휘닉스, 용평 스키장의 눈축제와 연계해 이 마을만의 독창적인 눈썰매, 단풍축제, 향어 매기 잉어가 많은 아름다운 계곡에서의 낚시대회, 울창한 산림을 이용한 산머루 다래 산나물, 열매 따기 대회 등 계절별 이벤트를 통해 인근 마을 특성과 조화를 이루는 관광마을로서 주말농장 코스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그 때마다 참여한 시민들을 회원으로 하여 농민과 도시민 농산물직거래 제도를 만들어 늘 친구 같은 농민에게 곡물을 부탁하면 바로 배달된 상품을 집에서 받아먹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도의 컨테이너나 통나무 가옥을 회원들과 직접 만들어 평일이나 주말에도 언제든지 오가며 농장을 일구고 자연과 함께 휴식하며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이에 못지않게 아내와 아이들이 이 자연에 흠뻑 젖어서 가능한 빨리 이 두메산골에서 그런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나가고 싶어 한단다. 그런 탓에 그이는 아내와 의논해 내린 결론이 따로 작은 텃밭을 만들고 여러 종자나 모종, 비료, 농기구를 비치해 놓고 도시민들이 직접 농작물을 기르면서 스스로 농사 체험을 영농일기에 적도로 할 계획이란다.

그렇게 이곳에서 흙을 사랑하고 우리 농촌,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다 보면 건강함과 정서적 교감 외에도 농민의 소득도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가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토종닭과 버섯, 산채, 과일 등을 재배해 인터넷으로 동시에 판매하는 시스템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

최근 면사무소와 마을에 경험 있는 농부들로부터 유기농 야채 재배법과 배추벌레 퇴치법 등을 전수받았다는 그이는 이번 감자 농사를 비롯해 배추 농사가 끝나면 자신처럼 어린 시절을 어렵게 살아온 고아원 등에 방학 때마다 대형 승용차로 이곳에 초대해 자연 학습장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당당하게 기른 야채로 김장을 담그고 간식 먹거리 등을 기증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번잡한 일상의 탈출구 자연으로...“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아름다운 사람 송찬영씨. 자연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이 자연 안에서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인간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버리는 무한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자연의 극치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의해서만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지 않던가. 독일의 유명한 시인 괴테의 말이다.

굳이 괴테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을 통해 위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이 남의 탓만 해오며 살아왔는지를 되새겨 보게 하는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우유부단하고 부화뇌동하는 현대인들이 하루살이에 집착한 탓에 내가 태어난 땅과 내가 밟고 있는 땅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원망과 타인의 잘잘못을 탓하기에 급급했던 것. 그런 사이에 덧없는 세월이 흘렀다. 그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자연은 변치 않은 마음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우리를 기다렸던 것. 그렇게 먼발치서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던 산과 물 그리고 땅에게 무정하고 하릴없는 원죄를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말농장은 그런 깨달음과 한 젊은 농사꾼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지혜를 일러주고 있는 듯 했다.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이 내내 떠나 줄을 몰랐다. 이제 땅은 더 이상 무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갈 그런 대상이 아니리라.

오랫동안 ‘네 탓’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진 만큼이나 우리는 보다 더 생명력 있고 윤기 나고 보람된 대상으로서 그런 땅으로 되살려 내야할 것이다. 땅은 우리네 삶의 근본이며 현실적으로도 번잡한 일상의 탈출구이자 새 희망을 창조하는 밑거름이요 신념의 표상임에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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