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32] 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 꿈꾸는 바다에 서면
이근배作,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에
바다를 가두고 사는 까닭을 안다
바람이 불면 파도로 일어서고
비가 내리면 맨살로 젖는 바다
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
때로 잠들고 때로 꿈꾸는 바다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하나씩 섬을 키우며
사는 까닭을 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눈이 내리는 섬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별빛을 닦아 창에 내걸고
안개와 어둠 속에서도
홀로 반짝이고
홀로 깨어 있는 섬
여기 와 보면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꿈의 둥지를 틀고
노래를 물어 나르는 새
새가 되어 어느 날 문득
잠들지 않는 섬에 이르러
풀꽃으로 날개를 접고
내리는 까닭을 안다.
- (이근배,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전문)
“바람이 불면 파도로 일어서고/비가 내리면 맨살로 젖는 바다/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때로 잠들고 때로 꿈꾸는 바다”. 파도는 그대로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다. 꺼이꺼이 살면서 때로 몸부림치고 때로는 다가설 듯 한오라기 희망에 한 목숨을 건다.
그러나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별빛을 닦아 창에 내걸고/안개와 어둠 속에서도/홀로 반짝이고/홀로 깨어 있는 섬”, 그렇게 그 누군가를 위해 여백이 되어주는 섬, 그것은 사랑이다.
견뎌낸 사랑은 나눌 때 빛이 난다. 사랑은 함께 나누고 함께 사는 일이다. “꿈의 둥지를 틀고/노래를 물어 나르는 새/새가 되어 어느 날 문득/잠들지 않는 섬에 이르러/풀꽃으로 날개를 접고/내리는 까닭을 안다.”
산 정상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계곡에 여음(餘音)을 울리고 강줄기로 젖어들어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장자는 이를 도라고 불렀다. 하늘에는 하늘 길, 물에는 물길,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다.
그 길을 만드는 일이 사는 길이다. 그 길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나를 채찍질해서 파도로 일어서고 부서지면서 밀려가는 것이다. 서로 어깨 걸고 밀려가는 것이다. 그대여! 사는 일 막막하거든,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귀를 열고, 눈을 들어 한 마리 물새의 포물선을 따라 가 보자.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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