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국 한 그릇에 쏴와 밀려오는 파도소리
[시가 있는 풍경 34] 박상건의 ‘매생이국...’
누군가를 기다린다, 바다로 열린 창가에
난 줄기가 그리움의 노을바다를 젓는다
울컥, *용정의 매생이국이 파도소리 퍼 올린다.
장작불 지피며 기다림으로 저물어 가고
온 식구들 가슴 따뜻하게 말아주던,
*공돌 소리마다 겨울밤은 아랫목으로
깊어 갔다.
등외품 신세인지라 공판장엔 따라가지 못하고
완행버스에 절인 눈물 다 쥐어짜고서야
자판에서 실핏줄의 눈을 뜨던, 그 눈길에 타들어 가던
광주 양동시장 인파 속의 햇살들.
햇살들이 백열등을 밝히고 귀항하는 노(櫓)소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야 마는,
그리운 갯비릿내 치렁치렁 밀려온다
저 바다로 청동울림들 처 올린다.
- (박상건, ‘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 올리다’ 전문)
*龍井: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정식 집
*공돌: 김을 말리는 것을 발장이라고 하는데, 이 발장은 팽이처럼 나무로 만
든 공돌에 실을 감아 베를 짜듯이 떠넘기면서 왕골 띠를 엮어간다
고향바다는 늘 각박한 서울의 영원한 동반자로 다가선다. 김을 양식하여 일본으로 수출하여 입에 풀칠하던 시절에 어촌의 밤은 갈대 같은 왕골로 발장(김을 말리는 판)을 만들며 깊어갔다. 실을 묶는 공돌을 앞뒤로 넘기면서 베 짜듯이 발장을 엮는 소리로 어촌의 밤은 똑딱 똑딱 공돌 소리로 깊어갔던 것이다.
가난한 시절에 적은 찬을 대신하여 매생이국에 밥을 말아 공복을 달래곤 했다. 낮은 뻘밭 층에서 미세한 해초로 자라나는 매생이는 그 시절 수협 공판에 끼이지 못해 오일장 자판에서 싸구려로 팔려나가거나 가난한 어촌의 찬거리 정도였다.
그런 매생이가 도심 한정식 메뉴로써 마주한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농담 속에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일어섰다가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 밀려가서는 백사장에 드러눕는 파도처럼 세상만사 새옹지마 이고 삶은 끝내 그리움 속에 젖어드는 수구초심의 길이 아니런가.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바다의 찬가(수협 창립 45주년에 부쳐) (0) | 2007.04.02 |
---|---|
인생의 갈림길에서 만나는 시 한편 (0) | 2006.07.12 |
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 꿈꾸는 바다 (0) | 2006.02.15 |
앞만 보고 달리며 잠시 잊혀진 이름, 아내여 (0) | 2005.10.11 |
사는 길이 막막하거든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0) | 200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