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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올리다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06. 6. 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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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국 한 그릇에 쏴와 밀려오는 파도소리

[시가 있는 풍경 34] 박상건의 ‘매생이국...’


누군가를 기다린다, 바다로 열린 창가에

난 줄기가 그리움의 노을바다를 젓는다

울컥, *용정의 매생이국이 파도소리 퍼 올린다.


장작불 지피며 기다림으로 저물어 가고

온 식구들 가슴 따뜻하게 말아주던,

*공돌 소리마다 겨울밤은 아랫목으로

깊어 갔다.


등외품 신세인지라 공판장엔 따라가지 못하고

완행버스에 절인 눈물 다 쥐어짜고서야

자판에서 실핏줄의 눈을 뜨던, 그 눈길에 타들어 가던

광주 양동시장 인파 속의 햇살들.


햇살들이 백열등을 밝히고 귀항하는 노(櫓)소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야 마는,

그리운 갯비릿내 치렁치렁 밀려온다

저 바다로 청동울림들 처 올린다.

- (박상건, ‘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 올리다’ 전문)


*龍井: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정식 집

*공돌: 김을 말리는 것을 발장이라고 하는데, 이 발장은 팽이처럼 나무로 만

든 공돌에 실을 감아 베를 짜듯이 떠넘기면서 왕골 띠를 엮어간다



고향바다는 늘 각박한 서울의 영원한 동반자로 다가선다. 김을 양식하여 일본으로 수출하여 입에 풀칠하던 시절에 어촌의 밤은 갈대 같은 왕골로 발장(김을 말리는 판)을 만들며 깊어갔다. 실을 묶는 공돌을 앞뒤로 넘기면서 베 짜듯이 발장을 엮는 소리로 어촌의 밤은 똑딱 똑딱 공돌 소리로 깊어갔던 것이다. 


가난한 시절에 적은 찬을 대신하여 매생이국에 밥을 말아 공복을 달래곤 했다. 낮은 뻘밭 층에서 미세한 해초로 자라나는 매생이는 그 시절 수협 공판에 끼이지 못해 오일장 자판에서 싸구려로 팔려나가거나 가난한 어촌의 찬거리 정도였다.


그런 매생이가 도심 한정식 메뉴로써 마주한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농담 속에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일어섰다가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 밀려가서는 백사장에 드러눕는 파도처럼 세상만사 새옹지마  이고 삶은 끝내 그리움 속에 젖어드는 수구초심의 길이 아니런가.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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