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갈림길에서 맞는 번뇌와 운명의 이정표
[시가 있는 풍경 44]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전문)
교사와 신문기자 기자로 전전하다 시인으로 데뷔 하버드대 교수이자 저명시인으로서 삶의 대전환기를 맞았던 프로스트.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한 순수파 시인이다. 국내에서는 피천득 김종길 정현종 시인 등이 각기 번역한 바 있는데, 위 시는 피천득 선생이 번역을 인용한 것이다.
살다보면 이녁이 걷는 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주저함을, 혹은 뒤안길에서 서성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 그렇게 인생길을 걸으며 갈등의 오솔길을 지나고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번민한다.
갈림길에서 우리는 갈등을 겪는다. 길은 운명의 전환점을 요구한다. 거기서 인생의 도전과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런 삶의 길과 숲속의 길이 교차하는 소위 중의법을 사용한 이 시는 프로스트의 삶의 발자취와 그 체험이 우리네 삶의 맞닿으면서 위안과 이정표가 되어 준다.
두 다리의 직립인간이면서 정작 두 길을 걸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인간. 나날이 우리는
판단과 선택의 고뇌, 그 순간에 서성이곤 한다. 그것이 새로운 길을 찾는 몸부림의 시간들이다.
어느 길을 걸어가든 윤동주의 ‘서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선택한 길이라면 더더욱 빛나는 길이 될 것이다.
최소한 그 길은 주체적인 삶의 길이었고 자기창조의 길이었음으로. 그래서 그 끝자락에서는 옹골찬 보람을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상수리나무 숲에서 (0) | 2007.05.02 |
---|---|
바다의 찬가(수협 창립 45주년에 부쳐) (0) | 2007.04.02 |
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올리다 (0) | 2006.06.16 |
때로 울고 때로 소리치며 꿈꾸는 바다 (0) | 2006.02.15 |
앞만 보고 달리며 잠시 잊혀진 이름, 아내여 (0) | 2005.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