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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날은 떠나요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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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떠나요      
비오는 날은 넋두리가 필요하제
살아있음으로 넋의 두리가 있것제

어제 하오는 이 넘의 빗줄기 땜세
서울역에서 아무 하행선이나 달라며 티켓을 끊고
투덜대는 열차에 몸을 실었지
갈 때는 목포행
올 때는 부산행이었지

내 옆 자리 어느 여자는 열심히 김밥을 씹으며 신문을 보고
나는 따끈따끈한 오징어를 찢고
캔맥을 따며 서울로 서울로 향했지

떠나봐야 더 갈 수 없는 것을
철길처럼 내 길은 이미 노정되어 있는 것을
더 가면 돌아오는 길도 멀던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날 수 없는 것은 더 큰 아픔이지만

집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빗물 같은 생수에 밥을 말아먹고
여인천하 마지막 편을 보았지

악으로 시작되는 일은 늘 불행하게 막을 내린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결론을 끝으로
두 여인도 떠나고

다시 세상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복도에서 한개비의 담배를
꼬나 무는데

아 이 빗방울!
정녕 별빛이더군요
어둠 속에서 가장 정갈한
김현승 시인이 노래한
바로 그 옥토의 눈물 같더군요

담배 연기는 더 멀리 가지 못하고
그 빗방울에 눌려 19층 아래로 아래로 낙하했드랬습니다

난, 이즈러지는 시간 속에 육신을 눕히고
꿈 속에서도 낙숫물 소리는 시간의 터널을 부지런히 뚫고 있었드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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