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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빗줄기를 사랑하는 이유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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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토요일 생방송으로 옮겨져 새벽에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어젯밤에는 어인 일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 뒤척이다가 무거운 몸으로 빗줄기 속을 헤쳐 왔습니다

여전히 빗줄기는 거셉니다
어젯밤 뉴스에서 전국 포구 상황이 보도되면서
거센 비바람 속에서 고향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들 녀석도 할아버지의 바다가 궁금했는지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뉴스에 태풍온데요? 거기도 바람 많이 불어요?]
그 애가 궁금한 것은 할아버지 생각보다는 완도라는 곳에도
저런 배들이 그렇게 빗줄기에 흔들리고 있을까 하는 궁금중이었을 터입니다

어제밤 뉴스는 제주 마산 여수 목포 인천 연평도 등 항구와 포구별로
돌아가며 어촌의 풍경과 정박한 배들의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태풍피해도 피해이지만
그 배들을 보면서 묶여있는 풍경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그렇다
그 배들은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생각을 뒤흔들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거센 풍랑을 만나면
그것을 헤쳐가거나
아예 힘들어 나자빠져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잠시 온몸이 뒤틀리도록 울어버리고 나면 평온해지는 마음처럼
저 바다도 잠시 잠 못이루며 꺼질정도의 억장 무너지는
파도소리를 처올리다가
이내 평온해질 터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창가에서 뜨겁게 몸 비비며 타오르는 빗줄기를 봅니다
가까이 아주 가꺼이에서 그 뜨거운 혈맥을 보듬고 싶어졌습니다

빗줄기는 창에 강을 그리다가 그리고 강을 건너고
큰 바다를 이루며 포구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그 물결들 어느날에는 창틀에 고이고
햇살이 창아든 날에는 녹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녹물은 이 거센 빗줄기의 고군분투의 사리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정녕 빗줄기의 생채기이거나 영혼의 빛발일 것입니다
그런 빗줄기를 사랑하는 아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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