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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과 꿀벌의 여행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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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만취상태에서 욕설까지 퍼부었드랬습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에 애꿎은 아내와 아들에게 못난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드랬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균우는 순간 이불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 엄마의 바지가랑이를 잡아 댕기고 있었습니다
말대꾸를 하지 말라는 신호였습니다
술 취한 아빠에게 바가지를 긁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막무가내인 아빠의 모습이 무서웠는지도 모릅니다
순 간, 그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술을 못이긴 몸짓으로 저는 내동이친 그릇 조각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물 조각이었습니다
균우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할, 균우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푸른 멍자국들이었습니다
제 방으로 와서 밤새 울었습니다

내 어릴 적 새소리뿐인, 그 적막한 시골 분교 사택에서 어느 날 밤 아버님의 고함소리에 아무 반항 없이 방 한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던 어머님의의 얼굴이 스쳤드랬습니다.
그 때 나 역시 균우처럼 이불을 뒤집어쓴 채 가정의 평화를 깨던 아버지를 탓하고 있었습니다. 부부싸움도 부전자전인가....누가 부부싸움을 물로 칼베기라고 했는가? 이 피멍든 남녀간의 마찰음을 말이다.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어젯밤에는 유난히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 못 이루었습니다
아침 생방송 원고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6시 죄인의 심정으로 현관을 나섰습니다
방송작가는 계속 핸드폰을 울리며 난리법석이었고 부랴부랴 원고를 보냈습니다
생방송! 목울대가 껄껄하고 숙취 탓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기침소리.....
어젯밤의 실수는 아침으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빗줄기는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하늘에는 무슨 날벼락이 터졌던 것일까요?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담배를 연거푸 깨물었습니다
쓰디쓴 니코틴이 내 가슴의 멍을 더욱 진하게 덧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 한번도 누군가를 위해 밑거름이 못 되 온 터에 아예 눈물짓이긴 거름으로 속이 푹 썩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균우가 방학하는 날
마지막 수업은 [제1회 학급 동요부르기 대회]를 치른다고 들었습니다
자꾸만 균우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차창 가를 바라보며 한없이 후회해본들 슬픔만 깊어 갔드랬습니다

운동장을 지나 마로니에 목련꽃 정원을 지나 복도에 이르자 몇몇 엄마들이 복도에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제 혼자 뿐이었습니다
균우는 아빠를 보자 의외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역시, 저 녀석은 아빠 친구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애써 웃으며 답례를 해보지만 죄 짓는 아빠의 몸짓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불안했던 마음이 빗방울처럼 가벼이 부서져 갔었습니다
빗방울이 이처럼 맑고 고운 햇살로 깨진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두 번째로 균우가 동요를 불렀습니다. 제목은 [꿀벌의 여행]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손뼉을 치며 하아모니를 함께 넣어주었습니다. 활짝 열린 창가로 조무래기들의 메아리가 꿀벌의 날개처럼 윙~윙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마지막 학생의 노래를 다 듣고 나오는 시간은 2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동요대회라기 보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임 속에서 그들의 순진난만함에 어른의 이기주의와 오만 그리고 교만을 어느정도 씻고 나온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였습니다. 균우는 잊지 않고 아빠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저도 더 열심히 흔들어주었습니다.

꿀벌의 여행이라....
꿀벌만도 못한 인간 벌이 되어 이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꿀벌 같은 삶을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전히 빗줄기는 힘차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시인이 핸드폰을 걸어왔습니다. 올 휴가는 섬에서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골학교 산골노시인은 제 이메일함에 이런 글을 보내왔었드랬습니다

"박상건 형! 비오는 날에 아이들이 동요 부르는 학교, 학급 교실을 다 방문하다니... 그것도 하나의 축복입니다. 이래서 인생은 저물어 가는 듯 다시 시작되면서 밝아지고 기우는 듯하면서 새로이 좋은 쪽으로 가지를 뻗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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