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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기행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4. 2.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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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포로 갔다
1박2일 일정이었다

전날까지 연사흘 새벽을 벗삼아 마신
술기운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행기 예약도 못하고 기차 예약도 못한 채
출근하던 옷차림으로 그대로 준비되지 않은 여행길에 나섰다
마음으로 몇개월째 준비되어 있었던 가슴 설레이는 여행길은
터미널에 2시에 도착 4시45분 차를 예매하고
시간을 떼우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아들 녀석이 기대에 부풀어 짜증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대구행 버스는 버스 전용도로를 힘차게 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구미쯤부터 체증이 이어졌다
8시 도착예정이 10시 넘어 도착했다
속이 거북해 점심에 이어 저녁을 굶었다
아들 놈만은 먹여야지 해서 메뉴를 고르라 했건만
또 햄버거 타령이다
일단 그거라도 먹여 이미 창녕 가는 시외버스는 막차시간을 넘긴 후였다

대구시내 아무 호텔에나 들어가 푹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러나 자꾸 아른거리는 그 이름들
정일근 형님
배한봉 친구
너무나 좋은 시인들이 아닌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분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시인들에게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행사 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택시를 잡아 탔다
서대구에서 4만원인데 동대구에서 잘못내려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만 5천원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하여간 빨리만 가달라고만 했다
아들녀석은 잠에 들었다
오늘따라 우포늪이 왜 그리 멀단 말인가

아무튼 우포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자정이 다 되어 우포에 도착했다
첫날 공식행사는 거의 다 끝난 상태에서 뒷풀이 시간이었다
일근이 형 배한봉 시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울산 부산에서 온 시인과 문학 지망생들이 맞아주었다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이 피곤함을 깨게 하는 것은
범어사 주지스님과 용학 스님을 뵌 것이었다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
일적이라는 호까지 지어주시던....

새벽 3시가 되도록 아들은 잠들지 않았다
억지로 재우려 해도 녀석은 신기한 분위기에 잘 적응했다
빡빡이 스님에게 [깡패 같다]는 둥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잔 무용가 여류시인들에게
[왜 아줌마들은 집에 가서 안 자세요?]라는 둥....

날이 샜다
먹는 둥 마는둥 아침을 먹었다
아들은 개구리가 어디 있느냐고 찾았다
추워서 물 속 땅 속 깊이에 있다고 했다
휘귀종 새들이 간혹 보였다

본격적인 우포늪 생태체험 시간이 왔다
아들은 제일 앞질러 제 키를 훨씬 넘기는 갈대숲을 잘도 헤쳐나갔다
그러면서 [어...뒤에 아저씨들 빨리빨리 좀 오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우포 시생명제]라고 쓰여진 깃발을 들고 3개중대(?)를 이끌은
일근 형은 [예, 꼬마대장님 빨리 가겠습니다] 했다
녀석은 신기하고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킥킥거렸다
다섯살 때부터 아빠와 북한산 8개능선을 5시간 종주하고
수도권 600미터 넘는 산들을 오르락 내리락 했던 탓인지
녀석은 걷는 데 잘 길들여져 있었고 지구력이 있었다
(물론 귀경길에 푹 재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무당벌레 고니 가창오리 등을 보며 좋아했다
동무 삼아 둑길을 같이 걸어준 엄마의 엄마벌 되는 여류시인이나
주부들의 장난에 기분이 붕붕 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우포 나들이를 마쳤다
범어사 대안 스님의 염불 속에 우포 생명 기원제도 지냈다
본 행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끈끈한 인간사랑 자연사랑을 이 시간에 만끽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우포늪이 이들 시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사 박물관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길이길이 후손에 전수되고 보존되길 축원했다

상경 길은 더한 체증 길이었다
그러나 순수했던 시인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것은 잠시 불편한 통과의례였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현상을 이 자연현상과 연계하는 것은
시인과 자연에 대한 모독이리라

정일근 형은 평소 목에 걸고 다니던
신라의 기왓장이 새겨진 목걸이를 선물로 채워줬다
그러면서 그이는 [이것은 신라의 형이 백제의 아우에게 준 징표]라고 했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사랑의 표현이던가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들
어쩌면 이상범 중진시인의 야외 특강 때 말씀처럼
시인에게 환경사랑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 자체가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음으로 말이다
그것에 애수와 향수가 없었던들 노래로 불리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텅 빈 겨울 우포늪...
그 곳에는 삶을 반추하게 하는 窓이 열려 있었다
먼동이 트며 삶이란,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를 물고 고니 한마리가 허공으로 긴 포물선을 긋고 있었다

그렇다. 자연을 통해 사람들은 생활 습관을 떨쳐 버리게 하며
감춰진 순수를 키워 내 자연의 비밀을 일러주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말여행 길에 오른다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인 위고는
인간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생은 경이로 가득찬 자연의 창가로 가서
먼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비밀과 삶의 가치를 확인한다는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에머슨의 말을 더욱 사랑한다
그리고 신뢰한다

그렇게
그래서
나는

한동안 우포사랑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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