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양로원 할머니들과의 하루
♧ "오래 살라"는 말이 더 이상 덕담일 수 없는 세상
각박한 세상에서 황혼기의 어른들에게 "오래 오래 사세요!"라는 말은 더 이상 덕담일 수만 없는가. 먹고사는 일이 힘든 이즈음이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돈 없으면 늙어 가는 일도 슬픈 일인가. 지난 7일 농림부 공보실 직원들은 인천 부평지역의 한 양로원과 요양원을 방문했다. 인생의 마지막 열차에 승차한 할머니들은 81명. 절반은 중풍과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중환자들. 나머지 절반 역시 칠순에서 백순을 앞두고 있었다. 저마다 생활보호 대상자이거나 인생의 맨 밑바닥까지 갔다가 결국 길거리에 버려지거나 길거리를 헤매다가 경찰과 동사무소 직원에게 발견돼 이곳으로 온 경우이다.
세상이 메말라가면서 제 어머니와 할머니를 폭행하고 피멍들게 해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이다. 고부간 갈등으로 지하 창고에 가두고 아사 직전에서 보냈다가 가까스로 구해져 이곳에 온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의 이런 황혼기가 실존하고 있었다. 올해 나이 86세 윤정옥 할머니는 자식으로부터 버려져 며칠을 굶다가 기력이 다하는 날 이곳에 왔다. 세상 사람들이 두렵다는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의 소원은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한정옥 할머니 역시 과대 망상과 치매로 신음하고 있는데 집이 어디인지도 나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불행한 노년을 그늘지게 보내고 있었다.
♧ 산소호흡기 달고 들어와 일주일만에 세상 떠나기 반복
요양원에는 이러한 중증환자가 많았다. 애당초 산소호흡기를 달고 들어와 일주일도 채 넘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요양원 신지원 원장은 "임종을 앞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하는 일이죠. 안도감을 느끼며 마지막 자식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직원들이 마음을 다 바치는 도리밖에 없어요. 그렇게 6개월 이상 유해를 보관하다가 가족이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행려자로 처리하고 있어요. 이런 할머니들에게 이승과 저승은 백지 한 장 차이일 뿐이죠.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장수가 축복일 수 있겠어요? 돈 있어야 오래 살 자격도 있는 세상입니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요양시설의 후원금이 끊어지고 방문객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이다. 이날 김영만 국장 등 농림부 직원들이 찾아간 것은 지난 12월 농촌을 소재로 한 시를 발표한 시인들에게 부상으로 준 쌀 가운데 고재종 이은봉 시인이 수도권 불우시설에 쌀과 과일을 대신 기증해달라고 부탁해 온 탓. 감사하다는 할머니들 앞에서 시인들 심부름 왔을 뿐이라며 할머니들 손을 붙잡아 가며 입에 굴을 까서 넣어주던 농림부 직원들도 무거운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래도 그 순간의 만남마저 기뻐하는 할머니들 모습에서 외로운 인생 길의 한 대목을 엿볼 수 있었다. 한 편 농촌시 수상자 정규화, 배한봉, 정우영 시인 등은 연초에 마산과 창원, 장성 소재 등 자신의 인근 마을 소녀가장과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쌀을 전달했었다.
♧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할머니들의 겨울나기
물론 모든 할머니들이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만 아니다. 요양원 이성희 선생님 등 직원들과 친절한 지도 아래 여가시간을 통하여 젊은 날 손재주를 십분 발휘하는 경우도 있었다. 늦었지만 여성으로서 보람과 소망을 이루어 가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그 가운데 수화를 배우는 김형숙 김영자 김순덕 김유한 씨 등 칠순의 할머니로 구성된 '박하사탕팀'은 전국 노인복지시설 종합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인천 여성합창단 정기공연 때마다 초청공연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뜨개질반, 숯공예반도 장려상을 수상해 요양원 곳곳에 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칠순에서 백순에 이르는 80여명 할머니들은 야유회 갈 때를 가장 좋다고 했다. 요양원측은 자원봉사자만도 100여명이 모집해 동행해야 할 정도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유일하게 젊은 손자나 며느리의 간접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병원 가는 일. 아이들처럼 주사를 더 놓아주어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때를 쓰곤 한단다. 그래서 할머니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원장, 간호사, 영양사 순.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고 주사 맞고 맛있는 것 많이 먹어 건강하고 살고 싶은 것은 할머니들의 최고 바람. 그리고 그것은 어쩜 긴 세월 외롭고 아픈 세월을 감당해 놓은 할머니들의 자기고백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이 다가오는 시점이기에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은 쓸쓸하고 아프게 저미는 파노라마로 스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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