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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2. 10. 1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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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청구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 갔었드랬습니다
아들이 달리기에서 4등을 해서 낙담하고 있더군요
연습할 때는 2등이었는데 줄을 잘못 섰다고 투덜댑니다
하긴 줄서기는 매사 기본인 셈입니다

제가 아버지 달리기에 출전했습니다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말입니다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죽어라 뛰었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이 마지막 지점에서 제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2등이었습니다
아.... 마침내 저는 여태 푸른 젊은 시절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었드랬습니다
본부석 교장 선생님 앞으로 등수별로 줄을 서서 상품을 받았드랬습니다
세상은 줄서기와 성적순에서 아직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출발선에서 죽어라 달렸드랬습니다
등산도 즐겨 1등은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었드랬습니다
어째튼 상품도 받았습니다
하기사 그렇게 균우의 명예회복를 한 점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 아이들이 야하아~ 소리치고 주머니를 던지며
박을 터뜨리는데 백군쪽은 한번에 그냥 터지고
청군 쪽은 막대기로 두들겨도 안열립니다
균우는 청군이었습니다
줄을 또 잘못 섰군요

그리고 전학년 이어달리기가 이어집니다
청군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백군이 응원을 무지하게 열렬하게 해서 점수를 다시 역전시킵니다
운동회는 역전 드라마가 있어 재밌습니다
운동장을 가면 들여다 보면 기본질서를 체득하며
이 사회는 문화가 살아 작동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다음에 아이들이 커서 이 사회는 줄서면 손해라는 생각이 안든 ㄴ그런 사회여야 할텐데라는 노파심이 앞섰드랬습니다

이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게임 그리고 부채춤 소고춤이
아주 멋드러지게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대한의 아들 딸들은 어릴 때부터 북치고 장구치는 멋을 안다는 사실에 눈물이 찔끔 날뻔했습니다
우리 것은 정말이지 감동적입니다
한달 연습을 했다는 부채춤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을 운동회-
10원에 네 개 주던 깨끼를 사먹던 시절
사카리를 적당히 탔던 냉차 사먹던 시절
기마전 하며 상대의 모자를 뺏아 함성을 지르던 시절
100미터 출발선에서 죽어라 달리던 시절
시절들이 그립습니다

만국기 휘날리던 그 시절 가을 운동회를 떠 올리며
가족끼리 잔디밭에서 점심 까먹었습니다
운동장 풍경화 속에서 불현듯 전광석화처럼 석화광음(石火光陰)이라는 단어를 떠올랐습니다

석화광음이란, 돌이 부딪칠 때 불이 번쩍하는 것처럼 빠른 세월을 의미하는 것인데
운동장에서는 할머니 할어버지와 아해들이 함께 기쁨에 겨워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빠른 세월도 세월이지만
다시 윤회하는 삶의 편린 같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그 생각이 불씨로 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가는 것이지만
동심은 세대를 초월해 무심히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힘과 꿈이 함께 공구르듯이 굴러가는 가을 운동회
운동회는 아름다운 추억의 앨범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만사 훌훌 털고 만국기처럼 휘날려 볼 일입니다
삶은 털며 둥글게 둥글게 공구리며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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