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새마을호를 타고 목포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유달낚시점에서 목포대 신순호 교수를 만나 미끼와 낚시도구를 챙기고
신 교수님 차로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 포구로 향했습니다
내 고향 완도가 작은 섬들로 군을 이루는 것에 비해
진도는 제주도처럼 커다란 육지가 섬을 이루고 부속도서는 달랑 하나이더군요
가을이 오는 산봉우리 저수지 잘 닦인 들녘 그리고 아기자기한 신작로가 정겨웠습니다
가학리에서 5인승 보트를 타고 15분간 목포로 가는 길목인 진도 먼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배는 파도가 높아 말달리듯이 부웅붕 떠 다녔습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시내버스 울림처럼 몸은 몸대로 쿵더쿵을 연발합니다
그러나 쪽빛바다의 찬란함에 싱싱한 공기는 너무 좋았드랬습니다
가사도 등대 밑에 이르자 강용정 표지관리소 소장님과 등대원이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선 낚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선착장에서 노을이 떨어지기까지 몇 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등대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등대는 제 밑에 불을 놓지 못하고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먼바다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산길을 걸어 등대지기 숙소로 갔습니다
강소장님이 그물을 쳐서 잡은 농어 간재미회에 소주를 비웠습니다
소주병이 14개에 이르자 새벽 2시에 다다랐고
창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툭툭 지는 빗방울이 싱그러웠습니다
밤새 등대지기가 된 사연, 등대에서 보낸 35년의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우리 나라 최초 섬 박사인 신순호 교수는 술에 취해서도 열심히 적고 있었고
저 역시 받아쓰며 마시며 새벽 능선을 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파고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오는 바다에서 몇 번의 입질을 시도해보다가 고동과 청각을 뜯고 등대로 돌아왔습니다
폭풍주의보가 내렸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도 등대에 갔다가 일주일 묶였던 일이 스쳤습니다
저야 묶이면 묶인 대로 파도와 며칠을 보내도 좋다는 생각이었지만 일행들은 꼭 나가야 하
는 상황이었습니다
트럭을 불러 큰 마을로 내려가 어제 타고 온 보트를 불러 타고 떠났습니다
파도 위에서 곡예를 하며 섬을 빠져 나왔습니다
작은 섬들에서 아직도 낚시에 빠져 있는 강태공들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가학 포구에 이르자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역시 그 섬은 먼바다에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 진도 드라이브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지방 특산품인 홍주를 몇 병 샀습니다
아쉽게 동행하지 못한 이성부 시인이랑 몇몇 지인들에게 풀어볼 요량입니다
목포에 이르자 비행기는 결항이었습니다
신 교수는 이 기회다 싶어 친구를 불렀고 목포항에서 농어회를 먹습니다
술독에 빠진 후 어렵사리 구한 무궁화 침대칸에 몸을 던졌습니다
새벽에 서울에 당도했습니다
이제 멀리 떠나간 섬, 그러나 28일 [아름다운 만찬] 때 강소장님이 오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등대지기, 참 아름다운 그이의 외출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