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15] - 서래섬② 꽃길과 자전거 풍경

섬과 등대여행/한강의 섬

by 한방울 2010. 6. 15. 15:35

본문

강물과 어우러진 꽃들과 자전거가 있는 풍경
[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15] - 서래섬②
2010년 06월 15일 (화) 박상건 섬문화연구소장  pass386@hanmail.net
 

 

 

 

 ▲ 봄철 서래섬에 핀 유채꽃. ⓒ박상건

 

서래섬에서 봄철 만발하는 유채꽃 풍광도 그만이다.
유채꽃은 서래섬의 봄을 더욱 풍성하고 자유롭고 그리고 수려하게 그려낸다. 봄이면 노란 물감으로 채색하는데, 이를 활용해 해마다 어린이와 가족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물들기 시작한 서래섬의 유채꽃. 제주도의 유채꽃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풍경이라면, 서래섬의 유채꽃은 서울 한강을 앞에 두고 상큼하고 정겨운 노란 봄의 정취를 연출한다.

서래섬의 가을도 일품이다.
9월이면 하얀 눈밭을 걷듯 메밀꽃밭에서 그윽한 꽃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아름다운 한강 만들기 일환으로 반포한강공원 내 서래섬 일대 2만5000㎡에 봄에 메밀꽃을 파종해 9월 중순 꽃망울을 맺도록 한 것. 하얀 메밀과 붉은 메밀이 어우러져 마치 천일염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서래섬 메밀꽃밭에 가면 메밀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만들어져 마치 이효석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메밀꽃이 만들어낸 강 안의 하얀 물결과 한강의 물줄기 그리고 하얀 거위의 유영,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유람선의 조화는 서래섬에서 맛보는 또 하나의 색다른 아름다움이다. 또한 밤이면 다리 조명과 둔치 가로등이 어우러져 불빛에 반사된 하얀 메밀꽃이 더욱 화려함을 뽐내며 가을 정취에 시민들을 흠뻑 젖게 만든다.

서래섬에는 유달리 꽃과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데, 특히 늦가을에서 겨울까지 맛보는 갈대밭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는 정경이다. 그 샛길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사진촬영 동호회의 셔터 누르는 소리와 연인들의 추억 만들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역동적인 모습들, 즉 강을 따라 달리는 울긋불긋한 유니폼을 맞춰 입은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를 비롯해 자전거 바퀴살을 돌리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강은 사람과 함께 풀 비린내를 돌리며 흘러가는 에코 체인임을 실감케 한다.

 

 

 

 

 ▲ 반포 시민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 꼬마숙녀의 자전거가 경쾌해 보인다. ⓒ 박상건

 

자전거, 그리고 시골길의 그리움

한강에 나오면 여러 풍경에 취하곤 하지만, 자전거 바퀴살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송수권 시인의 ‘시골길 또는 술통’이란 시()가 떠오른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시골길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 특히 산업화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자연 생태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리라.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전문

시골에서도 산비탈 밭 언저리까지 혹은 묘지 앞길까지 포장하는 시대이고, 그것이 그 마을과 자치단체의 부를 상징하며 행정서비스의 잣대인 양 인식될 정도여서 시골길은 추억의 오솔길로 남아 있다. 그래도 황토가 불거져 나온 울퉁불퉁하던 시골길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얼마전 남녘의 섬을 다녀왔는데 붉은 흙들이 푸른 들녘을 가로질러 아름다운 시골길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흙길은 들판의 경계이자 경계를 넘어서는 농촌 공동체 문화가 무엇인가를 상징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 그 섬의 면장과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은 곧 포장됩니다. 가능한 해변을 돌아볼 수 있는 모든 길은 올해 안에 포장할 계획입니다. 군에서 예산을 계속 배정해 준다고 하는데, 이제 더 포장할 길이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정녕, 안타까운 것은 “가능한 다 포장하려는데 포장할 길이 없어 안타깝다”는 그 마음이라는 생각이 울컥,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성난 파도처럼 끓어올랐다가 물보라로 부서졌다. 한반도 최남단 외딴 섬마저 포장하는 문화를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염되지 않은 외딴 섬이나 오지를 찾아간 사람들은 살아 숨쉬는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싶어간 것이다.

물론 그 마을 단체장도 나름대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생활방식을 바꾸고 싶겠지만 향토적 문화유산이 산재한 마을의 전통적 특성과 정서마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해 버린다면 다녀간 관광객들이 다시 찾겠는가?

 

 

 

 

 

 ▲ 서래섬에서 한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 ⓒ박상건

 

여하튼, 그렇게 시골길들이 사라지고 있다. 시골길이 움푹 패인 탓에 자전거 바퀴에 자갈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일지라도 그 돌멩이 하나에 곧잘 넘어지곤 했던 시골길. 이따금 논바닥으로 튀어간 돌을 논 주인이 일일이 걷어내는 불편도 있었지만, 곡괭이로 파헤쳐도 뽑히지 않을 정도의 잡풀뙈기의 시골길은 잡초처럼 살아가던 끈끈한 농부들의 삶의 상징이기도 했다.

양조장에서 구판장으로 가는 길, 혹은 구판장에서 모내기, 벼 베기 하던 들길을 향하던 자전거 뒤 짐받이의 막걸리 통. 차바퀴 튜브를 잘라 만든 단단한 줄로 동여매여 있었고 들길은 통통 넘쳐 튀는 술맛에 취한 듯 비틀비틀 꼬불꼬불 강이나 들판을 따라 이어졌다.

지금이야 포클레인으로 닦은 직선 길을 문화로 삼는 시절이지만 지름길보다 둥그렇게 이어가던 시골길은 여기서 끝나는 것만 아니었다. 귀가하던 사립문 안 초가지붕도, 기와지붕도, 그것을 떠받치던 기둥도, 마룻바닥도, 그 앞의 절구도, 밥주걱도, 항아리도, 살림살이 모든 것들이 곡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 농촌문화를 이끌던 주인공들이 할머니 고모 삼촌이었고 방학에 찾아가던 할머니 댁의 기억은 “아이고 우리새끼”하며 늘 치마폭에 끌어안던 정겨움이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기억하는 세대는 얼마쯤 될까?

“주모가 나와 섰다 /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라는. 배달한 자전거가 멈추면 구판장 아줌마가 반갑게 맞았고 신작로를 거쳐 들길을 거쳐 달려온 막걸리 자전거 길은 그 치마폭 앞에서 멈추었으니, 그 길 역시 치마폭으로 시계태엽 감기듯 감겨들어간 셈이다.

우리네 시골은 형제지간뿐 아니라 옆집도 앞집도 모두가 그렇게 반갑게 맞는 낙천주의를 사랑하며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손님도 혈육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던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농촌과 세상을 버팀목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이 글은 인터넷서울타임스(http://www.seoultimes.net)에도 실립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