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섬은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중간에 위치한 한강의 섬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할지구로 볼 때 반포지구, 행정구역상으로는 반포 2동에 속한다. 크기는 2만 3000㎡(6970평) 규모이다.
한강 거위들의 유영은 도심 한복판의 강이라는 사실을 문득 잊게 할 정도로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만큼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붕어, 잉어 등을 낚는 강태공들의 명소라는 점도 향토적 분위기를 한층 더해 준다.
산업화된 도시에서 우리를 잠시 추억의 고향으로 안내하는 서래섬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 종합개발을 하면서 3개의 다리를 연결하여 만든 인공 섬이다. 그러나 인공 섬일지라도 불을 밝히는 가로등과 벤치 외에는 그런 분위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생태적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무지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수양버들이 산수화의 한 켠을 차지한다. 시골에 가면 어느 강가에서나 마주하는 것이지만, 반포에서 맞는 이 곡선과 울림, 흔들림의 모양새는 한강물의 출렁임만큼이나 도시민들에게 한가로움과 여유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허공을 흔드는 푸른 수양버들은, 한가함이 왜 철학의 어머니인지를 깨닫게 해줄 정도로 서래섬에서의 사색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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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포 서래섬 수양버들. ⓒ박상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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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에워싼 수양버들과 소박한 풀숲
문학에서 수양버들은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옆에서 소박한 풍경화로 그려지기도 하고, 성과 욕망의 가락으로 흐느적거리는 풍류의 소재로도 곧잘 등장하곤 한다. 혹은 수백 년 묵은 노송들과 대조되어 어우러진 풍치로 그려지기도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강이나 호수를 향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모습은 여인으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부산에 사는 최영철 시인의 작품 중에는 수양버들을 소재로 한 이런 시도 있다.
겨울 깊어 바람이 서늘해지자 호수를 에워싼 수양버들 누울 자리 찾아 슬슬 물 가까이 내려왔다 호수를 따라 둥글게 모여선 가지들 한파가 닥치면 어서 발을 집어넣으려고 캐시밀론 담요를 깔아놓았다 서로 싸우지 않으려고 저마다 대중해둔 그 담요는 정확한 일인용이다 지금 서둘지 않으면 이제 곧 바람이 와서 호수 전체를 얼음으로 덮을 것이다 수양버들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단잠에 빠지려는 물의 지느러미를
자꾸만 흔들어 깨운다 잠들지 마 잠들지 마 벌써 저쯤에서는 곯아 떨어진 물의 등을 밟고 얼음이 걸어오고 있다 슬금슬금 남의 집에 발을 찔러넣어보는 살얼음들 수양버들 그림자가 그 차가운 발목을 덮어주고 있다
- 최영철, ‘그림자 호수’ 전문
최영철 시인이 부여 궁남지에서 쓴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궁남지에 왔을 때는 초겨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처럼 궁남지에 연꽃이 피어 있고 버드나무도 풍성해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면 저는 별 감흥이 없이 ‘좋은 관광지구나’하고 돌아섰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해거름에 차가운 호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버드나무뿐이었고 그 광경이 포착됐습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빛과 그림자’도 그렇죠. 빛은 좋은 것, 그림자는 어둡고 어려운 시간과 공간으로 곧잘 비유합니다. 그러나 빛은 빛대로, 그림자는 그림자대로 가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시인은 수양버들의 그림자를 나무들이 누워서 잘 캐시밀론 담요로 느꼈고, 호수의 물이 얼어 버리려 하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그늘이 호수를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나의 자연적인 사물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상상력과 여유로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점이 바로 한강의 섬들이 시민들에게 주는 상상력의 무한함이며, 마음의 평화이고, 위안이며 기쁨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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