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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서 만난 봄, 봄은 그렇게 오는가!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9. 4. 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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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왔다. 봄 풍경의 절정은 아무래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시골 들녘이 아니겠는가. 지금 농촌에서는 파종과 물꼬 손질하기가 한창이다. 사계절이 사라졌나 싶었는데 아파트단지 여기저기 시골 뒷산에서는 모처럼 식목일을 맞아 나무 심는 모습이 보이고 음역 3월을 기점으로 농촌은 비로소 본격적인 봄농사의 메아리가 울려퍼진다.

 


그렇듯 논두렁 밭두렁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고 보리밭도 푸르게 일렁인다. 겨우내 아랫목 장작불 지피며 지냈던 농부의 발걸음도 유난히 가벼워진다. 봄의 기지개처럼 “뿌리는 대로 거둔다”고 믿는 농부들은 창고에 넣어두었던 트랙터, 이앙기 등을 손질하며 분주해진다. 요즈음엔 농기계 역시 고객중심 서비스가 활성화 되어 읍네로 향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맞춤 서비스가 생활화 되어 있다. 농기계 제작 업체와 함께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사후봉사업소 및 농협농기계서비스센터 등이 지역실정에 맞게 지역순회 수리반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농기계를 고치는 날은 모처럼 마을 사람들이 가볍게 한잔 술에 대화를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저마다 벅찬 마음으로 봄을 맞아 술잔 부딪치며 일년 농사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저마다 병가지상사로 경험한 시행착오도 되씹어 보면서 수확의 계절을 꿈꾼다. 그렇게 농촌이 봄이 당도했다.

 


봄나물 찾아가는 주부들의 설렌 발걸음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1년 중 농사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이즈음 서울 재래시장 몇 군데를 둘러봤다. 벌써 재래시장에는 봄나물이 선보이고 도시 소비자들은 고향 들판에서 기른 봄나물을 가족과 함께 식탁에서 만난다. 색색의 봄나물을 구경하면서 파릇파릇 식물들을 만지작거리는 주부들의 손길에도 금방 설렘이 묻어있다. 저마다 이 땅 농민들의 후예들인 터이다.


쑥을 사던 주부에게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묻자, 쑥국을 끓여 먹겠다고 했다. 쑥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어릴 적에 쑥탕에 이 쑥물을 우려내 자주 마시곤 했다. 밥을 잘 먹지 않아 식욕을 돋우기 부모님은 늘 쑥물을 찧어 마시게 했다. 어찌나 쓰던지 한 모금 마시고 숨을 헐레벌떡이고 또 한 모금 들이키고 나면 김치를 뜯어 먹곤 했다.


들길에 섣부른 낫질에 손을 베면 어른들은 쑥을 뜯어 지혈제를 썼다. 쑥이 없으면 질경이를 뜯어 사용하기도 했다. 쑥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신경통에 좋아 이를 술로 담아 마시는 어른들도 많이 있었다. 쑥에는 비타민이 많아 감기 예방 효과에도 커 한방 치료재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해열, 해독 작용을 한다고 한다.

 


남편 속 풀이용에서 아이들 식욕 돋우기까지 다양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것이 냉이였다. 봄나물하면 어쩜 대부분 사람들은 냉이를 기억해낼지 모른다. 노래나 시 가락에서 봄을 노래하면 으레 냉이가 등장하곤 한다. 만인의 사람을 받을만한 독특한 향과 맛을 자랑한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된장국, 고추장 무침, 바지락 국물 등 약방에 감초 격이다. 흔히 먹는 방식은 살짝 데쳐 된장을 넣고 버무려 먹는 맛일 것이다.


야영을 할 때 들길에서 조금 뜯어다가 그렇게 묻혀 회 무침을 하기도 하고 찬거리가 아쉬울 때 해독작용도 할 겸 냉이국을 끓이면 한 끼 식탁용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단백질 함량 많고 칼슘 철분이 풍부하고 비티민 A가 많아 특히 나른한 봄날에 춘곤증 예방에도 안성맞춤이다. 냉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냉이에 스민 무기질이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방에서는 소화제나 지사제로 이용할 만큼 위와 장에 좋고 고혈압 환자는 냉이를 달여 먹게 해 처방하기도 한다.


어느 중년 주부 역시 한주먹을 비닐봉지에 사갔는데 남편의 술국을 끓여줄 참이라고 했다. 냉이 된장국을 일컬음이다. 냉이는 어른들의 해장국으로도 그만이지만 아이들 봄철 식용 돋우는 데도 그만이다. 그 다음으로 주부들 손길에 많이 잡히는 것이 도라지와 시금치였다. 모두 무침용이다. 시금치야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좋아하는 것이고 특히 도라지는 시골에서 각광받는 나물인데 한방음식이라는 인식이 깊다. 꽃말도 “영원한 사랑”일 만큼 꽃도 아름답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엄마와 달래캐던 시절, 삐비꽃 같던 돌나물

달래는 뿌리에 마늘 종지처럼 둥근 열매가 달려있다. 맛은 쓴 듯 한 맛. 쌉쏘름하다. 그게 달래 맛의 매력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산골 분교로 전근을 가게 돼 분교 사택에서 가까운 화전에 이 달래 캐러 자주 갔었다.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은 틈틈이 산에 올라 경사진 산비탈과 밭뙈기에서 달래 꽁지를 따서 한약방에 팔아 돈을 사곤 했다. 달래가 약재로 쓴다는 사실을 그 때 알 수 있었다.


달래는 칼슘이 많아 빈혈과 동맥경화에 좋다고 한다. 어른들은 달래무침을 하는 것을 보면 식초를 뿌리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면 비타민C가 파괴되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일상생활 자체가 과학적이었던 것이다. 달래가 국으로 들어가면 개운한 맛을 우리는 달래된장국이 된다. 이 때는 알카리성 강장식품이 되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불면증 장염, 위염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궁출혈, 월경 불순 등 질환에 좋아 여성에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보기만 해도 파릇파릇 봄 분위기를 내고 입맛을 돋우는 것이 돌나물이다. 어릴 적에 산에서 뽑아 먹던 삐비꽃 윗부분과 채송화를 많이 닮은 나물이다. 돌나물은 물김치로 담가 먹으면 시원한 맛이 있어 삶은 감자나 고구마에 곁들여 마시는 국물에는 늘 이 돌나물 혹은 열무 국물이 궁함이 맞는 음식으로 등장했다. 간염에 좋고 피를 맑게 한다는데 주부들은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봄 식탁 분위기 내는데 그만이고 식욕을 돋울 수 있는 무침이나 국물 소스로 자주 사용한다.


봄 햇살에 반짝이는 고사리, 어린 시절 친구의 얼굴

봄 학기 고사리 손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들판에 봄 햇살에 반짝이는 것이 역시 고사리이다.

고사리 손이라고 부를 만큼 고사리 또한 들판 뿐 아니라 식탁에서도 사랑받는 나물이다. 어린잎을 뜯어 나물로 삶아먹거나 말렸다가 물에 불려 나물 혹은 국으로 먹는다. 제삿날에는 으레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고사리 뿌리를 집집마다 구충제로 사용했다. 고사리에는 석회질이 많아서 이빨이나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어린 순을 약재 쓰고 뿌리줄기에서 녹말을 채취해 사용한다. 위와 장에 있는 열독을 풀어 주고 이뇨 작용에도 좋다고 한다.


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부추를 생각하면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유난히 부추를 자주 싸오던 친구가 떠오른다. 왜 이것만 자꾸  싸오느냐는 물음에 녀석은 “우리 엄마가 부추를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대...”라고 대답했던 친구였다. 중림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정례씨(64)에게 물어보니 “머리를 좋게 한다는 말은 모르겠고.., 익혀 먹으면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비뇨기에 좋다”고 말했다. 어쩜 군것질에 반찬투정만 하는 녀석을 엄마가 달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을까 짐작되지만, 아무튼 중학교 시절 유별나게 부추를 좋아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스치는 봄날이다. 

 

이어 만리시장과 공덕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겨우내 얼린 어물전이 거의 사라지고 신선한 푸른나물들로 봄 향기를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여든을 넘긴 할머니들이 아직 가시지 않는 추위를 피해 화롯불을 째고 있었는데 좌판에는 무말랭이가 가득했다. 어린시절 할머니는 시골 처마 밑에 무를 걸어 말리곤 했다. 어떤 무는 땅 속 깊이 김장용으로 묻었고 어떤 것은 걸어두고, 어떤 것은 아랫목에 잘게 썰어 말리곤 했는데 그 냄새는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무를 말리는 온기 탓에 방안 역시 온난다습 했다.


시장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러나 봄이 오고 나면 이 무말랭이는 적당히 말라서 고기 살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김치를 도시락 반찬 주 메뉴로 하여 오가면서 책가방 속을 온통 붉게 물이던 시골 학생들에게는 이 반찬이 등장할 즈음에 대환영이었다. 무말랭이는 그만큼 어린 녀석들의 양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말끔하게 포장이 가능했고 생기가 도는 위 이빨과 아래 이빨 사이에서 씹히는 그 맛, 먹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돌아 다시 집 앞의 새마을시장으로 들어간 봄이 오는 시장통. 시장사람들의 풍경은 우리 서민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사계절의 흐름을 가늠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물가의 오르락 내리락에 따라 농부들의 신음소리와 웃음소리도 엿들을 수 있는 곳이다. 도시 서민들의 삶의 모습도 곁눈질할 수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인간시장이기도 하는 시장통.


좌판에 놓인 풋풋한 농산물은 저마다 고향의 풍경을 그려준다. 흙을 일구는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이 베여 나온다. 그래서 시장은 늘 생동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추억 속의 얼굴들이 흑백사진으로 되살아나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장통으로 간다. 아무 일 없어도 배회를 즐긴다. 도심에 가린 나의 잊혀진 추억의 오솔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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