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삶과 희망의 등대를 찾아서
박상건(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장. 시인)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해발 249m 케이프포인트 정상에는 아프리카 희망봉등대가 있다. 1860년에 세워진 희망봉등대는 드넓은 대서양 절벽 위에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세계적 관광지로서 부상했다. 희망봉 등대는 본디 유럽제국의 침략의 발판이었다. 식민지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 등대 역시 일본의 대륙진출 의도에 따라 조선의 인력이 강제 동원 돼 세워졌다.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도 인천상륙작전의 거점이 된 이후 강대국의 한반도 진출로였다.
아프리카 희망봉처럼 우뚝 선 어청도 등대
요즈음 촛불시위를 바라보면서 등대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미국 쇠고기와 FTA, 일본의 끝없는 독도타령, 중국의 동북공정과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흘러나온 까칠한 논란의 본질은, 결국 글로벌 시대의 치열한 경쟁체제의 생채기이다. 특히 그 대상이 강대국이라는 점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한국항해항만학회와 국토해양부는 경주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국토해양부는 ‘해양교통시설 특별세션’을 마련해 해양학자와 시민단체, 해양공무원이 함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한다. 등대 관련 논문만 36건이라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 등대를 주제로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을까 싶겠지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등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어느 섬 어느 바다의 등대할 것 없이 뱃길마다 역사의 아픔이 배어 있다. 과거와 오늘을 잇는 역사교육의 산 교육장이다. 해양교역의 중심이다. 우리나라 등대는 2,542개이다. 365일 약 1백만 번씩 불빛을 깜박이며 뱃길을 밝힌다. 등대는 늘 그 자리에 서있다. 아무 말이 없다. 아무 강요도 않는다. 그저 베푸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대양으로 뻗어가는 강한 빛줄기와 그 공간은 시공간적 감각을 자극하며 예술창작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치열한 각축전이 펼져진 등대. 절경이 매우 아름다운 등대이다.
또한 자기발견의 공간이다. 카뮈는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뿐’이라고 말했다. 등대는 어둠을 좇는 고독한 고행자이다. 먼 길을 걸어온 물결마다 귀 기울이며 동행한다. 물결은 불빛에 머금어 더욱 따뜻해 보인다. 산다는 것은 파도소리를 내지르면서 풍랑으로 일다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다시 평온해지는 바다를 닮았다. 그런 면에서 등대는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중년의 삶을 닮았다. 나르시즘(Narcissism)의 공간이다. 삶의 카타르시스 공간이다. 고독은 인간이 평안과 만족에 이르는 삶의 과정이다. 사람은 각진 일상에서 고독을 통해 영혼의 갈증을 해소한다.
그래서 절대고독의 상징인 등대는 나를 발견하는 인생의 훈련장, 심신의 수련장, 인생의 실험실이다. 파도도 등대도, 삶도 사랑도 슬픔도, 함께 부대끼면서 평안과 안식을 찾아간다. 산사체험처럼 등대체험이 대중화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대에서 묵은 하룻밤은 인생의 참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각박한 현대인의 마음을 외딴 섬 등대 불빛에 헹구는 과정이야 말로 심리치료 과정이다.
또한 최근 우리사회가 요청하는 덕목 중 하나인 리더십과 시스템의 상징이다. 상징체계를 다루는 학문인 기호학의 구성요건은 상징, 도상, 지표이다. 바다에도 등대와 등표, 약호에 따른 불빛주기, 해도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섬과 바다, 등대와 항해자가 소통한다. 이렇게 수월하고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이 또 어디 있겠는가. 빛나는 소통의 문화의 상징이다.
완도 앞바다 천연기념물인 주도와 어판장을 낀 아름다운 등대이다.
그런 소통 속에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이 있다. 등대원과 마도로스, 섬사람의 희노애락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의 해양문화가 생동한다. 그래서 정부와 자치단체는 등대에 대한 아름다운 스토리계발을 통해 등대 프로그램 대중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올 여름에는 등대로 떠날 일이다. 나를 찾으러. 우리 모두의 소통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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