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움트는 봄의 생명력 | ||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 ||
봄은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왔다. 농부들은 파종을 위해 트랙터, 이앙기를 손질한다. 우수(雨水)를 맞아 날이 풀리고 봄바람에 새싹들도 어깨를 들썩인다. 수확을 향한 농부들의 한해살이는 이렇게 본격화된다. 그러니 우리네 첫출발도 이제부터인 셈이다. 모처럼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파릇파릇한 봄나물을 만지작거리는 주부의 손끝에서 설렘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렇게 고향 봄나물의 향기는 객지 자식들의 식탁에서 다시 만난다.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게 냉이였다. 봄나물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노래와 시 가락에 자주 등장하고 그 독특한 향과 맛도 그만이다. 된장국, 고추장 무침, 바지락 국물 등 가난한 식탁의 감초였다. 춘곤증 예방이며 술국, 위와 장, 고혈압을 앓던 어른들에게 식사 그 이상의 민간요법의 역할까지 했다.
재래시장의 풋풋한 농산물
시장을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시골 산등성이를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뿌리에 마늘 종지처럼 둥근 열매의 달래도 보였다. 쓴 듯 쌉쏘름한 그 맛이 매력이다. 그리고 돌나물은 산비탈에서 뽑아 먹던 삐비꽃 윗부분과 채송화를 닮았다. 삶은 감자나 고구마와 궁합이 맞아 시원한 물김치로 일품이다. 맛도 그러거니 간염과 피를 맑게 해서 웰빙 식품으로 그만이다. 영락없이 봄 학기 고사리 손을 닮은 고사리나물은 어린잎을 뜯어 나물로 삶거나 말렸다가 물에 불려 무침이나 국으로 먹었다. 그 값어치는 제삿날 단골로 등장한 것만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석회질이 많아 이와 뼈를 튼튼하게 하고 위와 장의 열독을 풀어주기도 한다. 겨우내 ‘삼성 기름유출사건’으로 한구석에 밀렸던 어물전 자리에 푸른 나물들이 새로운 봄의 기지개를 켠다. 할머니의 세상살이만큼이나 쭈글쭈글한 무말랭이지만 그 맛만은 쫀득쫀득해 시골학생들의 도시락 밑반찬으로 최고였다.
달래
쑥
그렇게 파노라마처럼 고향소식이며 봄의 시작과 끝이 흐르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고향 사람들의 땀방울과 생명력이 용틀임하는 곳이다. 그리움과 기쁨과 슬픔이 버무려진 곳이다. 오르락내리락 서민물가와 농부들 신음과 웃음소리가 공존한다. 그렇게 봄이 왔다. 봄으로 오는 징검다리께 ‘국보 1호 숭례문’이 무너졌지만, 600년 자존심이 무너진 아픔만큼,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잿더미에서 시작한 것도, 5천년 역사를 지탱해온 것도 농민의 힘이다. 그 에너지의 뿌리는 농경문화이다. 좌절과 희망, 순응과 악천후를 극복했던 삶의 전형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터전이다. 문화(Culture 또는 Kultur)란 본디 밭을 갈아 경작한다는 뜻이다. 문화의 본질은 생명력이다. 생명력 없는 문화는 곧 사멸한다. 민족과 국가의 생명력은 문화의 작동여부에 달렸다. 그 문화적 시스템은 자연환경이다. 드디어 봄이 왔다. 출발선(Start Line)은 우리가 밟고 사는 이 땅이다. FTA 반대와 우리 농산물 애용 운운 하기 전에 나부터 재래시장을 찾아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애틋해 하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봄날을 시작해보자. 더욱이 각진 세상일수록 흑백사진의 아련한 추억을 쟁기질하고 퇴색된 가족애와 모성애를 일깨우기엔 재래시장이 제격이다. 어깨 부딪치며 걷는 그 길, 아옹다옹 옹기종기 반반씩 버무려 사는 그 길은 고향의 숨결을 찾아가는 길이다. 인간의 고향,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사랑의 오솔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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