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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기행-마량포구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04. 9. 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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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 기행 30] 마량포구

 

풋풋한 섬사람의 삶과 여유로움이 물보라 치는 포구



강진 버스터미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시인 김영랑 생가를 돌아보고 승용차로 23번 국도를 타고 18㎞ 달렸다. 미산마을 4거리에서 정수사 방면의 군도 12호선을 조금 더 달렸을 때 고려청자 도요지가 나왔다. 한국 미술 5천년 역사의 정수인 고려청자. 우리 민족문화 유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맑고 영롱한 비색으로 시대를 초월해 그런 옛 도공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도예작가 윤도현 씨는 전통 도예를 되살리는데 젊음을 다 바치고 있다면서 “도예왕국의 전통과 신비한 진면목을 하나 하나 벗기면서 인생을 흙에 묻혀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양팔에 송진과 흙 내음이 빚어져 묘하게 풍기는 작업실에서 운학무늬 병에 무늬를 그려 넣고 있었다.


일찍이 개방문화를 설파하다 유배된 곳에서 쓴 바다 경영서

다시 차를 돌려 마량포구로 향했다. 문득 강진으로 유배된 정약용 선생이 떠올랐다. 당시 다산 선생의 사상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개혁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소위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실학사상)이었다. 그러나 왜세를 배척하고 불교문화와 유교사상(인간과 자연의 일치론을 주장한 성리학)을 장려하는 세도의 권력에 탄압을 받았다.


약전의 사위 황사영이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를 탄압하는 사건들을 적어 청나라 주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써 보내려다 발각되었다. 그것이 ‘황사영 백서사건’이다. 이 일로 황사영은 사형되고 다산과 형 정약전 선생은 공범으로 지목돼 유배되었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돼 불후의 수산전문서인 ‘자산어보’를 남겼고 정약용 선생은 여러 저서 중 바다와 관련해서는 해양경영서 ‘경세유표’를 남겼다.


그런 역사적 진실을 보듬고 의연하게 저 드넓은 바다를 향한 강진만의 맞은 편에는 해남군 그리고 그 아랫녘에 다도해 완도군이 있다. 멀리 제주도가 아스라이 이어져 있다. 강진만은 지형이 두 갈래 나무뿌리 모양으로써 마량포구는 강진 서남부 최남단에 있다. 그 앞에 한 점 섬 까막섬이 있고. 이 섬은 상록수림으로 우거진 섬이다. 섬 주위에는 돔과 우럭이 많이 잡힌다. 완도로 이어지는 청정해역에서는 배낚시나 보트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전국 낚시대회가 열릴 정도로 낚시꾼들에게는 천혜의 낚시터로 통한다.


섬사람의 풋풋한 삶과 일상의 해방구

마량포구는 한적한 어촌의 감성을 타고났으며 풋풋한 섬사람들의 정서가 묻어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강진군에 속해 있지만 이곳 포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완도군 부속 섬인 금일도 고금도 생일도 사람들이다. 지리적으로 왕래하는 시간이 짧아 이곳에서 배를 타고 오고 간다. 포구에 들어오고 나가는 배를 맞는 양쪽 방파제 등대 아래는 늘 강태공들이 오늘도 입질을 유유히 즐기고 있다.


그런 강태공들의 모임 터이면서 일상의 해방구로써 마량포구는 사랑받고 있다. 광주 나주 해남은 물론 타 지역 사람들까지도 바다 나들이 섬 나들이가 주는 여유로움 그리고 평온함과 그리움의 물보라에 흠뻑 젖어간다. 얼마 전 메기태풍이 왔을 때 정겹기만 하던 포구에는 거센 파도를 해쳐온 섬사람의 도전과 희망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끝없이 나부끼는 어선의 깃발이며 방파제에 수없이 밀려와 철썩이며 드러눕기를 반복하던 그 파도소리...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강진의 지형을 뒤돌아보면 먼발치 첩첩의 기암괴석인 월출산 밑뿌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강진 땅은 전남 3대 강의 하나인 탐진강의 물줄기를 이어받아 들판을 적시고 그 물줄기는 이내 마량포구로 와서 바다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서로 만나 포구에서 쉴새없이 손뼉을 마주치면서 삶을 일구어 간다. 그런 풍경 속에서 어려울수록 풍류를 즐기고 어우러져 살줄 알았던 조상들의 슬기를 깨닫곤 했다.



강태공의 추억과 섬사람들의 희망이 되어 빛나는 등대

그렇게 꺼지지 않는 삶의 등불로 이 바다를 지키고 밝혀주는 두 개의 등대가 서 있었으니

방파제 등대였다. 포구 왼쪽 붉은 등대는 ‘마량항동방파제 등대’라고 부른다. 이 등대 불빛을 찬찬히 지켜보면 4초에 한번씩 불빛이 반짝인다. 작은 것 같은 이 불빛이 지리적으로 11마일 해상까지 가 닿는다. 그 맞은 편 하얀 등대를 ‘마량항중방파제등대’라고 부르는데 이 등대는 녹색 불빛임이 특이하다. 4초에 한번씩 반짝이는데 이 역시 지리적으로 11마일, 광학적으로는 7마일 해상까지 비추는 것이다.


그렇게 멀리 선박의 안전한 항해까지 헤아리는 두 개의 방파제 등대. 이들 등대는 무인등대이지만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원격 조정하고 있다. 이런 등대는 낙도로 오가는 섬사람의 교통의 편리를 돕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이러한 뱃길을 해양학에서는 소위 보조항로라고 부른다. 목포 관할 다도해 지역이 48%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여수, 군산, 인천항이 12%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마량 같은 포구를 오고 가는 섬과 섬사람들이 서부 남해안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과 배가 오가는 곳에 늘 등대가 있다. 그 등대 아래서 마음 편히 입질을 즐기고 먼 바다에서는 마음 놓고 항해를 하고 어부들은 고기를 잡는다. 마량포구에는 값싸고 맛있는 많은 횟집과 건어물 상점 그리고 배들이 오고 가고 포말이 아름답게 회오리치곤 하지만 이름도 조건도 없이 여전히 이 한 세상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반짝이는 저 등대. 결국은 그가 바로 이 바다, 이 포구의 화룡정점임을 알았다. 그렇게 바다와 섬과 섬사람 그리고 등대는 영원히 동행하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미니상식/ 한국의 섬과 등대는 몇 개일까?


우리나라 섬은 공식 통계로는 3,195개. 유인도 447개 무인도 2,748개. 이는 내무부의 ‘한국도서백서’에 근거한 것이다. 다만 책이 나온 지 거의 10년째를 맞고 있어 일반적으로 해양연구원이 추정하는 약 3,400개를 주로 인용하고 있다.


등대는 항로표지 가운데 하나인데 크고 작은 항로 표지는 총 2,300개. 일반적으로 탑 모양으로 세워진 것을 등대라고 부르는데 유인등대는 43기, 무인등대는 519기. 무인등대와 바다에 떠 있는 등표는 1980년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선박 출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03년 12월말 현재 빛을 내는 항로표지는 1,528기. 해안선 길이 6,088마일을 기준으로 환산할 때 3.98마일당 1개가 설치되어 있는 셈. 참고로 선진국은 평균 3.5마일당 1개씩 설치돼 있다. 따라서 바다의 신호등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항로표지는 보통 해양수산부가 직접 설치하지만 섬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직접 설치하기도 한다. 이를 ‘사설표지’라 하는데 1990년 이후부터 경제적 성장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0년 전후 사설표지가 국유표지 기수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일반 항로는 81개 지역에 123척의 여객선이 운항중이다. 낙도 등을 오고 가는 보조항로는 25개 지역에 30척이다. 이러한 연안 여객선은 날로 늘어날 것이고 그 때마다 등대도 늘어날 것이다.(2002. 해양수산부 항로표지관련 자료 참고)


● 마량포구로 가는 길

․ 항공

김포공항→광주→목포공항→강진→마량포구

․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서해안고속도)→광주→강진군(성전면 삼거리에서 강진방향 직진)→강진읍 →국도 23호선 마량 방면 24Km지점→마량포구

․ 고속버스

서울→강진(401Km. 하루 6회 운영. 5시간 20분 소요)

․ 철도

서울역→목포(나주, 광주역)→하차 후 고속버스 이용

(광주→강진 1시간 30분, 목포→강진 1시간, 나주→강진 1시간 소요)

(강진버스터미널 하차 후 마량군내 버스→마량포구(30분 소요)

․ 문의: 강진군 문화관광과(061-430-3223)/강진마량항터미널(061-432-2366)

마량, 박상건,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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