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섬이 연출한 한 폭의 동양화에 취해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33] 나로도

바다와 섬이 연출한 한 폭의 동양화에 취해

고흥반도에서 25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섬, 나로도. 옛날 중국 상인들이 이 섬 앞바다를 지나다니면서 “바람에 펄럭이는 낡은(老) 비단(羅)같은 섬”이라고 불렀단다. 그래서 ‘나로도’ 가 되었다. 섬 풍광만 비단 같은 것이 아니라, 섬사람들 마음 또한 비단결이었다. 길을 물으면 왜 그리도 친절하게 일러주던지... 넓은 바다만큼, 중국 대륙의 칭송만큼이나 이 마을 인심은 그렇게 깊고 아름다웠다.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라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섬끼리 사로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고흥군에서 건너갈 때 첫 섬이 내나로도인데 1994년 연육교를 통해 고흥반도와 어깨동무를 하며 출렁이게 되었다. 조선시대 말 목장 지대였다는 이 섬과 이듬해인 1995년 바깥 섬 외나로도와 다시 다리가 이어져 지금은 승용차로 계속 내달리며 출렁이는 바다와 섬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섬은 고흥의 심장처럼 생겨 드넓은 바다로 뻗어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저 수평선을 향해 뛰쳐나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연륙교를 건너 드넓은 바다의 물보라와 상록수림의 자태

그렇게 45.6 km에 이르는 해안선을 일주할 수 있는 나로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우거져 있고 청정해역의 해수욕장이 있다. 섬 모퉁이와 절벽, 갯바위에 이르기까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파스텔 톤의 바다 빛깔이 나그네의 가슴에 잔잔한 향수와 평화로움을 파문 일게 해준다.

푸른 바다 위에 햇살들은 제들끼리 무어라 손곱장난하며 웃는 아이들처럼 환하게 반짝였다.  울긋불긋한 부표들도 색동옷 입고 뛰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처럼 다가서며 바다의 율동을 더해주고 있었다. 일주도로는 바다를 끼고 달리면서 솔숲 오솔길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 숲길에는 새들 우지짖는 소리며 유자 숲의 노란 열매들이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 가을 향기가 갯바람에 실려 계단식 논밭을 타고 야트막한 해변으로 불어가고 있었다. 다시 먼 수평선을 달려온 물결들이 그 바람들과 포옹하며 철썩철썩 적막에 잠든 포구를 깨우는 것이었다.

이 섬의 사람들은 미역 김 파래 양식업과 고기잡이를 주로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다른 섬과는 달리 천혜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초류와 어획물이 거의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로 넉넉한 바다 생활을 누리고 있다. 처음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악천후에 이겨 살면서  강한 생활욕이 생겼고 그런 어려움이 교육열을 높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한집 건너 대학생이 있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꽤 높은 섬이다. 또한 남해안 어획전진기지로서 그 명성도 이어가고 있다. 다리가 이어지기 전까지는 주로 배를 이용해 육지를 오고 갔는데 생활 근거지는 고흥과 여수, 그리고 맞은 편 육지 부산이었다고 한다.

우주항공센터와 야생 동식물 숲 그리고 일몰 포인트

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하반마을에는 우리나라 최초 항공우주센터 건립이 한창이다. 지금은 토목공사 중이다. 2006년 과학위성 2호의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은 비포장도로 탓에 접근이 불편하지만 항공센터가 완공될 시점에 이 일대를 야생 동식물 보호센터 동시에 개발할 예정이라니 나로도의 또 다른 여행 맛을 우려내 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꿈꾸는 항공센터를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공사장 바로 앞 하반포구 방파제에서는 낚시꾼들의 손맛을 즐기기가 한창이었다. 이처럼 나로도 섬 기슭이나 방파제마다 강태공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을 보는데 그만큼 어족이 풍부한 섬을 의미한다. 삼치 도미 농어 장어 쭈꾸미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나로도의 삼치 파시는 유명하며 고흥군의 축제로 열리고 있다.

낚시도 낚시지만 툭 트인 넓은 바다의 풍경은 감동의 포인트. 특히 하반마을 서쪽에 위치한 염포마을로 돌아가면 황홀한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서해안에서 당진 왜목마을이 이런 지형을 타고 났지만 이곳은 그곳보다 더욱 넓게 가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로 솟구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썰물 때 바다로 나가는 아낙들과 어판장의 생동감

나로도는 바다의 수심이 얕은 편이다. 그래서 모래밭에서 쉽게 조개와 게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물이 맑아서 여러 조개와 해초류들이 바위나 선창가에 붙어 있는 모습이나 작은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어항 들여다보듯이 마주할 수 있다. 썰물에는 마을마다 아낙들이 삼태기를 허리춤에 끼고 굴 바지락 고막 새조개 쭈꾸미 잡으러 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저녁 식탁에 얼리기도 하지만 아침 고흥 어판장으로 나가 팔아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툭 트인 바다에 옹기종기 작은 무인도를 스쳐 지나는 일몰을 카메라에 담다가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고흥 읍네로 나가는 도중이라고 했다. 동승을 권한 후 많은 섬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왜 그렇게 말솜씨가 대단한지...역시 교육열 높다는 말을 실감했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먹고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을 못 느낀다고 했다. 씨알 좋은 고기들을 읍네에 나가 팔면 몇 십 만원은 거뜬히 받아온단다. 돈도 돈이지만 서울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고기와 미역, 톳 등을 말려 보내면서 유자즙 등도 담아 택배로 보내주고 있단다.

아주머니는 바다농사 외에도 유자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수확한 유자들은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는데 유자차, 유자즙, 유자두부, 유자잼, 유자식혜 등 그 상품 용도도 다양해졌다. 소위 웰빙 유자 농사가 이 섬에서 유행한다. 변화하는 농어촌, 수준 높으면 농어민들의 삶을 실감하며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한 폭 동양화 같은 솔숲 해변

아주머니는 섬에서 키운 아이들이 건강하게 타향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사는 일은 새옹지마이고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없다가 있는 것이라면서 여행 다니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고 덧붙여 주는 덕담까지 잊지 않았다. 괜스레 목이 5센티 정도 더 커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인생은 나그네라 하지 않던가? 나그네가 또 다른 나그네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시원하게 터놓고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진미가 아니겠는가.

나로도는 인심이 해말간 것은 어쩜 변치 않은 자연환경 탓인지도 모른다. 아직 외지인에 의한 절 오염된 섬이기에 경치와 공기가 좋고 바가지 상흔이 없어 더욱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일 게다. 휴가철이면 응당 찾게 되는  해수욕장이 이 섬에도 몇 개 있는데 수려한 해변으로 각광받는 나로도해수욕장을 꼽을 수 있다. 나로도 최대의 해수욕장으로 신금마을에 있다. 마을 이름을 따서 신금해수욕장 혹은 면소재지 이름을 따서 봉래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해변에는 37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아름드리 솔숲이 동양화를 판박이 한 듯 조성돼 있다. 가는 모래밭에 이 소나무들이 그림자로 드리워질 때는 그대로 수묵 담채화이다. 이 숲은 문화재로 등록된 소위 방풍림 솔숲이며, 소나무 앞으로는 1km에 이르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또한 서북쪽 끝자락으로 가면 천연기념물 상록수림을 만날 수 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잣나무 등 100년 이상 넘은 150여종의 희귀 수목이 모여 가을빛을 더욱 짙게 한 채 짙푸른 바다의 물결소리로 바람소리로 서로 호흡하고 있다. 이 상록수림은 나로도 사람들의 기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힘든 일이 많은 법. 그 때마다 이 곳 사람들은 늘 푸른 상록수들이 서로 보듬고 더욱 푸르게 살아남아 성장하는 것을 거울삼아 마음을 다지고 희망의 삶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항구에서 만난 꼴뚜기와 동병상련, “사랑받는 삶을 삶이란?”

생동하고 끈끈한 생명력의 살아가는 섬, 나로도. 이 상록수림에서 얼마 안 되는 곳에 나로도항이 있다. 축정마을에 있어서 ‘축정항’이라고도 부른다. 포구에는 갈매기와 싱싱한 새우 생선 조개 낙지 등이 어물전에서 선조이고 있었다. 구경하다보니 이방인은 지금 갯내음 가득한 섬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방인처럼 어부들 손길에 저 편으로 밀려나간 고기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꼴뚜기였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그 말 그대로 살 좋은 새우를 고르는 아낙의 손길에 의해 꼴뚜기는 저만치로 푸대접받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열외 되는 세상만은 결단코 살아서는 아니 될 일이라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불현듯 꼴뚜기가 동병상련으로 다가서기도 했고... 

섬을 돌며 포인트로 아껴 두었다가 다시 찾아간 곳이 섭정마을. 어느 섬에나 꼭 한 개씩 있는 것이 형제섬이다. 얼마나 외로운 민족이고 가족애 등 공동체 문화를 중시했으면 형제섬을 앞에 두고 살았겠는가. 마을이 아주 작은 섭정마을에 내려가 텃밭을 일구는 어민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 저 섬, 형제섬인데...”라고 말해주었다.

해변은 미숫가루처럼 잘게 부순 모래였는데 마치 어린 시절 국자에 설탕 넣고 만들던 그 뽑기처럼 물결무늬가 신기하게 그려져 있었다. 신혼방 장롱 무늬 같기도 하고 고려청자의 신비로운 곡선의 아름다움 같기도 했다.

정갈한 모래밭의 형제섬과 바위 위로 펼쳐진 환상의 노을

바로 너머 염포마을이 있었는데 오던 길에 해조음을 듣노라고 푹 빠져 누워 있던 곳이다. 먼 바다 배들이 정오의 햇살을 동무삼아 소리 없이 항해 중이던. 이곳 해변에는 바로 마을과 이어져 민박이하기 좋고 해송 숲이 바다 주변으로 울타리를 이루어 경치도 그만이었다.

그 마을로 다시 가려는데  섭정마을 넘어서자 언덕에서 만난 나로도의 노을.

바위가 바다 한 가운데 툭 트여 나와 있어 ‘너릿여’, ‘널린여’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었다. ‘여’라 함은 바다에 있는 바위를 말하는데 ‘널려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마치 등대처럼 노을빛을 받아 반짝이던 바위들. 등대 같던 그 바위가 이내 장군의 칼끝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이 활동하기도 했다는 나로도 앞 바다 바위 칼끝에 빗발치던 그 노을빛...나로도 여행의 장엄한 대단원은 그렇게 장식되었다....그 절정의 드라마 앞에서 흥분에 휩싸이며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다시 다음 여정을 향해 액셀리트를 밟는데 신작로 길에 유자농원을 만났다. 대단위 농원이이어지던 신작로 길. 아름다운 유자는 지고 남은 노을로 살아나 내 가슴에 일렁이고 있었다. 노을의 감흥이 진한 유자향기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다시 유자 속의 그 노란 씨처럼 내 마음에도 오래도록 남을 나로도의 색 노란 추억으로 배여서 간직될 것이었다. 그렇게 나로도를 떠나 나그네는 EH 다른 길 위에 나그네가 되어 다음 섬을 향해 악세레트를 밟고 있었다. 

● 미니상식/ 어업전진기지에 대하여

어업전진기지라 함은 수많은 어선들이 어업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는 다목적 어항(漁港)을 말한다. 필요한 시설이라 함은 물과 급유시설, 창고, 가공과 유통시설, 무선국 등 항해와 배가 정박할 때와 하역할 때 필요한 것들이다. 

어업전진기지는 연근해어업전진기지와 원양어업전진기지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1966년 동해안의 울릉도와 남해안의 미조도, 욕지도, 나로도, 청산도, 흑산도, 거문도, 성산포 등에  이를 설치한 이후 해마다 그 기지수를 늘려 전국 해안 지역에 설치하고 있다.

이런 항구의 발달은 어업인 수의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을 의미하기도 하며 육상교통 못지 않게 해상교통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다목적항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인데 남해안에서는 모슬포와 이어도, 부산 감천항, 남해 미조항, 통영 호두항, 동해안의 거진항, 속초항, 죽변항, 구룡포, 울릉도, 독도, 그리고 서해안의 태안반도, 변산반도, 가거도 등에 이르는 어업전진기지들이 널리 알려져 있고 이곳에서 어민들이 많은 수입을 올리고 수출 전진기지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원양어업전진기지로서는 대서양 라스팔마스, 뉴질랜드, 괌 등이 있고 이 가운데 우리나라 어선들은 세계 30여 개국의 전진기지에서 약 1만 여명의 어업인들이 600여척의 원양어선을 항해하며 꽁치, 참치, 오징어잡이 등에 나서고 있다.(두산백과, 해양수산부 정책자료 참고)

● 나로도로 가는 길

1. 대중교통

- 강남터미널 고속버스 서울→광주

- 광주→고흥 직행버스(15분 간격 2시간 20분 소요)

- 고흥→외나로도(30분 간격. 40분 소요)

- 광주→내나로도, 외나로도(버스 1일 4회 운행)

- 순천→내나로도, 외나로도(버스 1일 7회 운행)

- 광주→내나로도, 외나로도(버스 1일 4회 운행)

2. 승용차

- 호남고속도로 순천IC→벌교(2번국도)→세동→내나로도 →나로도

- 호남고속도로 주암IC→27번국도→벌교→15번, 27번국도→고흥(15번국도)→나로도

- 호남고속도로 동순천IC(2번국도)→벌교(15,27번국도)→고흥(15번국도)→나로도

3. 문의

나로도수협(061-833-8101)/고흥군 문화관광과(061-830-5224)/고흥시외버스터미널(061-835-3772)   

글․사진=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