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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섬 금일도(평일도)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05. 2. 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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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마량포구 앞에 고금진을 설치한 후 평일도 생일도 금당도 일대를 항일 전략 요충지로 삼았다. 그런데 신석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생일도는 왜적은 물론 여태 외침을 한번도 받아보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평안하고 온화한 날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평일도’라고 부르고 있다.

 

입춘을 앞두고 1월 끝 무렵에 서울은 찬바람과 눈발이 휘날렸지만 남도 땅 마량포구에서 내려다 본 고금․약산․거금․평일․생일도 앞 바다는 참으로 평온했다. 엄마가 아이를 보듬고 졸고 있는 듯, 바람 한점 없었다. 평일도는 1914년 면 소재지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이웃 섬 생일도를 합쳐 금일읍으로 승격되었다. 평일도는 금일읍 주섬(主島)이다. 유달리 안개가 많아 늘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 이 섬에 다다르면 누구나 사색에 잠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평화롭기 때문이다.


백사장은 조개껍질들이 파도에 씻기고 씻겨 모래알 보다 더 작은 잔해로 남아 백색의 해변을 이룬다. 예로부터 이 마을과 인근 섬사람들은 조개껍질 모래를 밟으면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해변 산책을 통해 마음과 건강을 다스리곤 했다. 바닷가 길은 삶의 묘약이었던 셈.


바이칼 호수 같은 파스텔 톤의 바다

평일도 최고봉 망산에 올라 이 섬을 내려다보면 문어가 뭍에서 먼 바다로 기어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미 사슴이 새끼들을 데리고 뛰어가는 모양 같기도 하다. 수평선까지 가지 않더라도 진즉 근해부터 수평을 이룬 채로 평온한 바다는 파스텔 톤으로 바이칼 호수를 닮았다. 그렇게 푸른 바다는 바닷가 해송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이다.

 

이런 바다를 365일 바라보는 백사장에서 살면서 평일도를 관광마을을 만들기 위해 젊음을 다 바치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김남용씨(43). 이 섬에서 태어나 이곳 섬 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섬에 눌러 살며 청년회장으로서 해변에 해당화 공원을 만드는 데 온힘을 쏟는 등 쾌적한 섬 문화 일구기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지금 한창 마량포구에서 고금도까지 연륙교를 잇고 있는데 그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되레 근심부터 하고 있었다. “섬은 섬으로 남아 있어야지라우(있어야지). 육지가 되면 승용차만 들락거릴 테지라우(터이지). 이곳 섬사람은 빠져나가지 않것쓰라우(않겠소). 승용차 중심으로 섬을 찾는 사람들은 머물다 떠나면 그 자리가 뭐가 남것쏘(남겠소)? 쓰레기만 남지 않것쓰라우(않겠소)?”. 그렇게 온 사람들이 이 섬을 사색하는 공간으로 삼겠느냐는 것이다.


조용히 며칠 묵으면서 이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여행 그리고 그런 공간으로써 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녁이 사는 섬도 대접받고 섬사람들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찾아온 사람들도 찌든 영혼을 씻고 가는 깨달음의 섬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것. 그런 생일도의 미래를 일구고 있는 그이는 인근 섬마을 청년회장을 찾아다니며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곤 했단다. 그런 일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 다리는 잇되 거금도 등 작은 섬끼리 이어 고유의 다도해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그이가 생각하는 섬 문화 보존의 자구책이다.


섬은 섬으로 남아야 한다는 젊은이의 색다른 꿈

그래서 그이는 사동리 해변(금일해수욕장)에서 민박을 운영하면서 예약된 손님만 받는다. 우연히 발길이 닿는 사람의 거처로써가 아니라 사계절 언제나 찾아와 찌든 일상을 털어내고 섬에서 자연을 배우며 생각하는 삶을 일깨울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천혜의 섬을 지키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여름 한 철 장사를 위해 바가지요금을 챙기거나 사람 끌어 모으는 일에 매달리는 법이 없다. 해수욕장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다만 쓰레기 종량제 봉투만 판다. 백사장에 제발 쓰레기를 묻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보다 깊고 깊은 평일도 사랑에 빠져 사는 그이는 시인을 꿈꾸던 섬 소년이었다. 방과 후에는 포구 앉아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달빛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아름다운 이상향을 꿈꾸며 습작활동을 하곤 했다. 고교 때는 호남지역 최대 예술제였던 호남예술제(광주일보 주최) 문학작품 공모에 초등부에는 여동생 이름으로, 중등부에는 남동생 명의로 그리고 고등부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 개의 작품을 응모했다. 모두 최우수상과 대상을 받았다. 이 일로 학교에서 스타가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너희 집은 모두가 문인 가족이구나?”라고 칭찬했다. 그 칭찬이 힘이 되어 이후 자작시집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졸업 후 친구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서울로 돈벌러 간 친구, 대학에 진학한 친구, 가난 탓에 원양어선을 타고 남태평양으로 나간 친구, 시집 간 친구....그들이 그리울 때마다 이 바다에 나와 사색하고 글을 쓰는 일에 매달렸다. 두툼한 습작노트가 아직도 그가 꿈꾸고 있는 섬과 섬 문학의 증거이다. 그렇게 불혹을 맞은 그이에게 오늘은 잊을 수 없는 친구가 찾아왔다. 고교 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오형운씨(43). 오씨는 돈 벌러 원양어선을 탔었고 이녁은 생태 관광마을의 밑천 마련을 위해 생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수도권 어느 횟집에서 회 요리 기술을 배우는 대가로 1년간 무료로 횟집 종업원 생활을 했다. 오씨는 이후 돌아와 강진 미곡처리장 전무로서 쌀 파는 일에 매진하고 이녁은 민박과 횟집을 운영했다.


우정어린 섬 친구들의 만남과 솔숲의 환상적 노을 풍경

오형운(43)씨는 호남 일대에 쌀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틈틈이 섬에 있는 친구에게 주식을 보내오곤 했단다. 물론 평일도 김남용씨는 육지에 있는 오씨에게 자연산 해산물을 보내주며 퇴색될 것만 같은 우정의 불씨를 되살려 다시 동아줄로 이어가며 삶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불혹이 넘어 두 사람은 관광농어촌 살리기에 젊음을 다 바치고 있는 셈. 때 묻지 않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변치 않은 우정을 살며시 엿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 백사장에 꽂혀 있는 하얀 조가비, 푸른 바다에 부서지는 물보라처럼 빛나고 시원스런 광경이었다. 테마가 있는 농어촌 삶을 위해 남은 길,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그들 틈에 잠시 끼어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얼마 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승용차를 몰고 그들은 일몰 포인트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월송리 해변이었다. 수 백 년을 넘은 아름드리 해송 숲에 노을이 뚝, 뚝 지고 있었다. 솔숲 나무의자에 앉아 노을감상에 빠져 있노라니 어느새 이방인과 저쪽 수평선까지를 동아줄로 잇듯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푹 취해 있노라니, “이곳 말고도 더 볼 것이 많으니 너무 지체하지 말지라구라잉(말자구요)~~”, 그들의 권유에 따라 다시 사동리 바닷가로 향했다.


한 겹은 솔숲 병풍으로 쳐져있고 다시 한 겹은 해당화 공원으로 바다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해수욕장의 길이는 2.8km. 폭 200m에 수심은 1~1.5m 가량. 누군가가 먼저 찍어둔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방금 떠나온 월송 해변 너머 생일도 청산도 방면으로 아스라한 실핏줄 노을이 걸려 있었다. 산 정상에 이제 막 핀 해당화, 혹은 새끼 동백꽃처럼 환상적인 풍경화가 그려졌다. 마침내 그 노을의 파장이 우리가 서 있는 바닷가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참으로 환상적인 노을의 파노라마이다. 감동이 물오르니 그저 침묵뿐이었다. 문득 이 섬 맞은 편 고흥반도에서 태어난 이순을 향하면서도 남도의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송수권 시인의 ‘적막한 바닷가’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저 침묵한 채로 삶을 일깨워주던 ‘적막한 바닷가’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밀물을 쳐 보내듯이/갈밭머리 해 어스름녘/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한 마리 해오라기처럼/먼 산 바래서서/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또는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마지막 이 바닷가에서/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전문)

 

그렇다. 살다 보면 때로는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또는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소리에/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마지막 이 바닷가에서/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바로 오늘 이 순간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적막한 바닷가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바다가 너무나 잔잔해 마치 어느 산사나 호반에서 하룻밤을 묵은 듯 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우리 일행은 해당화 산책길을 걸어 아침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여전히 평온했다. 이 산책길에 봄이 오면 해당화 향기가 가득 찬다고 했다. 예로부터 해당화는 선비들로부터 사랑받는 꽃이었다. 그래서 시나 노래의 소재가 되었다. 해당화 같은 섬 시인으로, 해당화 같은 노을을 맞으며 불혹 이후의 삶을 항해하는 그이의 삶이 반추되며 파도는 작은 물꽃을 피우며 잔잔하게 백사장에 와 스러졌다.

 

해송과 해당화로 울타리 친 백사장의 진풍경

해당화 공원을 걸으며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해당화를 아낙네처럼 애처롭게 보이는 꽃으로써 여겼다. 그러나 특히 해당화 열매는 우리 여인네들 저고리 동정처럼, 시골 담벼락을 오르던 앵두처럼, 그 담벼락 아래 아이들이 갖고 놀던 유리구슬처럼 빛나고 찬란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문득 떠오른 시구가 있었으니.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오신다고 하였습니다./봄은 벌써 늦었습니다./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봄이 오고 보니/너무 일찍 왔나 부러워합니다.“라는 한용운의 ‘해당화’.  해당화는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우리네 전통적인 섬마을 정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했다.


해당화 군락지 아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해보았다. 고만고만한 바위에는 푸른 파래가 뒤덮여 있어 색다른 해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섬 모롱이를 돌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섬 낚시는 섬 지역마다 사계절마다 어종이 다르지만 평일도는 대륙붕이 발달하고 청정해역인 탓에 연중 낚시가 가능하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돔, 감성돔, 농어, 우럭, 광어, 볼락이다. 물때가 맞지 않은 탓인지 낚시 재미는 못 보았다. 덕분에 못 잡은 광어, 우럭 회를 그가 담가 둔 약주와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이어 동백리 해변을 구경했다. 청정해역인 탓에 서해안 해수욕장과는 달리 간조 때도 뻘이 드러나지 않고 바닷물도 매우 맑은 게 특징이다. 이 일대는 평일도 특산물이기도 한 다시마, 전복 양식장과 유자 농원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평일도 전복은 전국에서 알아주는데 1년간 평일도 섬사람들이 전복 종자(실패, 종양)를 사들인 규모가 연간 60억에 달한다고 한다. 그만큼 전복을 주 생산물로 삼고 있다.


첫배를 탄 섬사람들과 일출의 환희 그리고 등대

거기에 우리나라 전체 다시마의 70%를 완도군에서 생산하는 데 완도군 물량 80%를 이곳 생일도 사람들이 도맡고 있다. 이는 섬 전체가 평평해 양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섬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다시마에서 설탕 액을 뽑아내는 기술을 연구한 바도 있고, 다시마와 미역을 접붙인 ‘쇠미역’을 생산하기도 했다. 쇠미역은 다른 미역과는 달리 표면에 송송 구멍이 뚫려 있었다. 두 해초류의 장점만을 살린 것이다. 이런 미역은 식용은 물론 피부미용에 좋아 화장품 원료로도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유자 역시 남도 지방 섬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생일도 생산품은 온난다습한 기온과 사질토양 탓에 표피가 두껍고 향이 뛰어나 예로부터 제사상에 올리고 있는데 비타민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성인병, 피부미용, 숙취해소에도 좋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틀 밤을 그렇게 묵고 새벽 첫배로 평일도 도장 선착장을 빠져나왔다. 새벽 바다 바람이 거센 가운데 첫배 객실에는 명절 상차림을 준비하려 마량항으로 나가는 아낙들이 웅크린 채 새벽잠을 채우고 있기도 했고, 어제 바다 양식장에서 생긴 일들을 손뼉 쳐가며 웃어 쌓기도 하고 서로의 체온으로 새벽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강진, 성전, 영암, 나주, 광주로 출근하는 이 섬 출신 직장인들도 있었다. 모두가 평일도의 아름다운 후예들.


그렇게 철부선이 어둔 바다를 철썩이며 1시간여를 달리자 우리가 떠났던 그 평일도 방면에서 아침 햇무리가 뜨겁게 숨소리를 몰아쉬고 있었다. 산등성이가 붉어졌다. 그 기운이 아침 바다에 뜨거운 물보라를 퍼 올린다. 철부선 선미에서 스크루가 힘차게 퍼 올린 하얀 포말도 급기야 붉게 타오른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그 찰나의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마침내 철부선은 두 개의 방파제 등대 사이로 들어서며 부우웅~ 기적 소리를 울렸다. 마지막 기항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 평일도로 가는 길

 


1.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광주 톨게이트→10분 후 비아방면→나주→강진→목리교(4차선)→23번국도→마량항→평일도(금일읍) 여객선
순천→2번국도→벌교, 보성, 장흥, 강진→목리교(4차선)→23번 국도→마량항→금일읍

 

2. 고속버스

서울→광주(고속버스)→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서울→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3. 기차․항공

용산역(김포)→광주역(광주공항)→강진(고속버스)→마량항(시내버스)

4. 배편

완도항~금일행(2회 운행)

마량항~금일행(9회 운행)

 

5. 자세한 문의

완도항 여객터미널(061-552-0116)/마량항여객터미널(061-433-6485)/금일농협(061-553-3388)/해송가든(061-553-2387) 하얀집(낚시어선 출조 061-553-3512)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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