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 여름 꽃은 왜 뜨겁게 피는가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05. 6. 27. 11:40

본문


 

꽃이 주는 여유와 행복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덕적도엘 다녀왔다. 너무나 평화롭고 맑은 바다 저 편에 갈매기가 포물선을 긋는다. 이들을 바라보며 푸른 바다에 첨벙이듯이 허공에 출렁이는 것은 섬 기슭 이름모를 들꽃들이었다. 풀섶에 고개 내밀고 선 장미는 아직도 때얕볕에서 여름나기를 하고 있었다. 연분홍 나리꽃, 그 곁에 붉은 해당화가 붉게 피어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향해 힘껏 기지개를 폈다.


봄에 보는 꽃의 느낌도 느낌지이지만 여름날에 푸른 잎들을 나부끼며 피는 꽃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사람도 힘들어하는 무더위 속에서 목마른 대지를 뚫고 나와 흔들릴 때로 흔들리는 식물의 생명력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녘에 시들어갈 꽃이지만 그날의 열매를 위하여 더운 여름날 꽃을 피는 밤꽃이며, 흉년 땅뙈기를 향해 무한지경으로 쳐들어가는 개망초꽃은 흡사 풍년 농사를 위한다면 농부들일랑 이 여름날 더욱 분발할 것을 촉구하는 듯하다. 그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꽃들은 흔들린다. 그렇게 서로의 일생 주기를 바턴터치하면서 사람의 일생처럼 꽃은 여름나기를 하고 있었다.


그 꽃들이 바라보는 뻘밭에는 수많은 게들이 분주한 몸놀림을 했다. 옆으로 걷는, 사팔뜨기 눈빛으로 꺼이꺼이 집게 발 벌리며 거품 물고 걷는 게들의 행진. 그 풍경은 흡사 반농반어촌의 농부들에게 논두렁 물대러 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라는 메타포로 보인다. 미물도 저리 목숨 걸고 꿈틀대는 데 사람이사 지쳐 살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하다. 그렇게 작은 것들은 우리네 삶을 일깨워주어 아름다운 것이다. 배짱이와 토끼가 되지 말고 푸른 벌판에서 더욱 푸르게, 푸르게 살라는 자연의 메시지로 여름 햇살보다 강렬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그래서 들길마다 해안마다 살랑살랑 이는 꽃바람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지 모른다.    

“꽃들을 잊고 살아 온지 그 얼마/매일같이 출퇴근길 한강을 건너오고 건너가면서/꽃을 잊고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면서/살아온 지 그토록 오래//그리하여 꽃을 잊고 아이들이 커가고/아버지와 삼촌들이 늙어가면서 어머니와 언니들이 돌아누우면서/세월의 켜켜 사이로 묵은 인간의 때와 욕망만 높아가고/아름답지 못한 추억과 내일없는 미래를 향해 낮은 포복으로 기면서//혹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성을 내고/사소한 일에 긴장하면서 꽃들을 내던지고/나와 너, 우리를 갈라놓는 색깔과 향기 없는 일에 몰두해 온 우리//우리는 꽃을 잃었다./우리는 순수한 꽃의 세계를 버렸다./우리는 꽃향기에 실어 보내는 우리 자신을 그리하여 버렸다./꽃을 보고 꽃을 안고 꽃과 함께하는 모든 것을 훼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한강철교를 건너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신문사에 있을 때 꽃에 대한 시 한편을 청탁하자 백학기 시인은 ‘꽃은 강철을 녹인다’라는 이 작품을 보내왔었다. 그 때 강철과 꽃의 만남이 얼마나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았던지 모른다. 그렇다 꽃은 강철은 녹인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 꽃의 그 위대한 생명력과 도전 앞에서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내친 김에 다음날 가족과 함께 고양 화훼단지를 찾았다. 값 싸고 다양한 꽃 세상을 마주할 수 있고 자연학습장으로써 그만이어서 자주 찾는 곳이다. 어림잡아 1백여 개의 화원이 여름 공기를 맑은 꽃향기로 물들이고 있었다. 국화, 장미, 카네이션, 거베라, 선인장, 동백, 단풍, 동양란, 서양란까지 사계절 꽃들이 선보인다.


꽃집을 운영하는 불혹을 넘긴 김순자씨를 만났다.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꽃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면서 처음부터 운영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잔손이 많이 가고 인내심이 없으면 곤란한 일이 바로 꽃집 경영이란다. 큰 나무들은 옮기는 그 자체부터가 힘이 들고 작은 꽃들은 그 꽃대로 잔손이 많이 갔다. 김씨는 특히 양란을 좋아한단다. 덴파레는 꽃이 화사하면서도 1백일동안의 수명을 자랑해 무척 아끼는 꽃이란다. 화원을 운영하다보면 에피소드도 많은데, 얼마 전 회사원이 달랑 10만원만 들고 와서 화키라 나무를 무조건 4개를 사야만 한다고 졸랐다는 것. 결국 웃으며 마진을 포기하고 4개를 건네주었는데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직장 상사로부터 싸게 사왔다고 칭찬받고 또 사오라 해서 주문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싸게 파는 것이 결국은 단골손님을 늘리는 길이고 마진에 집착하기 이전에 꽃이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그 자부심은 대단하다. 꽃의 진열은 고객이 한눈에 여러 종류를 볼 수 있도록 늘 단정하고 깨끗하게 진열한단다.


우리나라 꽃 소비량 60%가 화환이 차지한다고 한다. 스탠드형 플라워 디자인이라 부르는 화환은 외국에서는 리스(wreath)라고 부른다. 화환은 1030년대 선교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서양 사람들은 태양의 진행과 인생경로를 상징하여 화환을 둥글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화환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많은 수난을 당했다. ‘꽃의 수난사’는 이렇게 씌어졌던 것. 1994년 3월 25일에 결혼한 가수 조용필씨는 결혼이 끝난 뒤 경찰서에 출두해야 했다. 축하 화환이 너무 많이 진열되었는데도 관할구청이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며 한 시민이 당국에 고발했다. 당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화환 개수가 제한받았다. 86년 3월 공직자 화환 증여 집중 단속, 90년 7월 총체적 난국극복 차원에서 경조화환 집중단속, 91년 2월 혼주와 상주4명 고발 조치 및 화환 증여 24개 단체 및 개인 명단 공개, 92년 4월 각 행사장 꽃탑 및 화분 장식 금지령이 내려졌고, 93년 6월 민자당 당정회의에서는 마침내 화환 진열 전면금지결정을 내렸다. 그 해 7월 12일 화훼농민 1만2천명은 여의도에서 화환규제 규탄대회를 열고 청와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듬 해 7월 7일 대통령은 화환 개수를 2개에서 5개로 늘리도록 허용했다. 1998년 이런 규제는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역시 꽃은 그렇게 강철보다 강했다. 그런 애증의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꽃은 이미 우리네 일상으로 급속히 파고들었다. 직영 농장에서 가져온 꽃은 신선도가 높아 365일 접할 수 있다. 그렇게 꽃은 오늘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처럼 사람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우리 존재가 확인된다. 우리도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어 꽃의 진정한 존재를 확인시켜주자. 그 향기에게로 다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저 꽃들의 속말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 기꺼이 화답해주자.

    

돌이켜보면 꽃은 논두렁 밭두렁 풀벌레 소리의 하아모니를 연출하던 우리네 고향 길 동행자였다. 삶의 또 다른 문화 중 하나였다. 들풀의 출렁임이 한창이던 시골길에서 조무래기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잠자리 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잠자리도 함께 동행 하던 곳이 풀섶이었다. 화훼단지는 그렇게 평화스런 들판과 마을의 추억을 떠올려주며 한적한 시외 들판에서 울긋불긋 꽃과 푸른 나무들을 빼꼭히 보듬고 서 있었다. 마치 작은 밀림을 연상케 해주던 꽃집 내부 풍경. 그런 밀림에서 보내는 여름날과 꽃향기는 얼마나 아름다우랴. 향수가게에 들어가면 그 사람에게서 향수 향기가 나듯이 꽃 속에 갇히면 그 사람의 육신과 인상에서도 부드럽고 정겨운 꽃향기가 묻어나고 이내 젖어드는 법이다. 우리 꽃에 젖어 살아보자. 알고보면 꽃은 즐기는 수준을 넘어 민족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가을을 대표하는 한 송이 국화꽃은 고결, 추억, 달콤한 꿈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꽃은 보고 기르는 재미도 있지만 그 의미를 통해 새로운 삶을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때로 민족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했던 꽃. 이를테면 가을을 대표하는 한 송이 국화꽃은 고결, 추억, 달콤한 꿈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서리를 맞으며 꿋꿋하게 피어난 우리민족의 애환을 상징하기도 했다. 봄에 싹을 데쳐 먹기도 했고, 여름엔 국화잎을 쌈 싸먹기도 했다. 가을엔 국화뿌리를 달여 마셨을 뿐만 아니라 국담수라고 하여 국화꽃에 내린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다.


때로 연약한 듯한 꽃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매신저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상에 한 송이 꽃을 꽂아 놓고 잠깐씩 바라만 보아도 마음은 평온해지고 헝클어진 마음은 곧잘 정돈된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한 인생이 마감되는 영안실에서 묘지에서 꽃은 우리네 나그네 길을 따라 나그네처럼 시들어간다. 자연과 인간의 매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꽃의 일생. 아무튼 꽃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행복을 창조하는 일이다. 꽃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손길이 뜸하면 꽃은 시든다. 난 잎 파리 하나도 주인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더욱 견고해지고 조리개를 뿌리는 주인장의 살을 배기도 한다. 풀이 칼이 되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슬기를 따라 그 생명의 고귀함과 물욕을 잊으며 사는 일, 무상함에 빠져 드는 일, 그것이 꽃에 매료돼 사는 일이다. 그런 사색의 공간이야말로 꽃이 주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꽃의 소비량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꽃을 심고 꽃을 파는 일을 그 지방자치단체의 생산성과 문화적 차별화로 추구해 가는 곳이 늘고 있다. 각종 꽃 축제와 전시회가 일상의 문화로써 주민들 곁으로 갈수록 근접해 가고 있다. 꽃에게는 충분히 유혹당해도 좋은 일이리라. 꽃 전문가에 따르면 절화 구입시기와 고르는 요령에 있어서는 꽃의 색상이 선명하고 농약살포 흔적이 없어야 하고 꽃, 잎, 줄기의 균형이 완전한 게 좋다고 한다. 꽃은 중간 정도가 좋고 장미의 경우 도시일수록 꽃이 핀 것, 시외에서는 꽃봉오리가 딱딱한 것이 좋다는 것. 카네이션은 꽃봉오리가 핀 뒤 자른 것이 오래가고 수송과정에서 꽃의 상처가 생기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도 꽃 고르는 법의 지혜이다. 출하시기에 있어서는 아침녘 갓 출하된 꽃이 제일 좋다. 따라서 꽃을 어디에 언제 사용할 것인지를 정해 구입 시기를 정하는 것이 좋다.


꽃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듬고 마음의 에너지를 재충전해보자. 삶의 여유와 행복이 어디 멀리 있으랴. 우리 지금 꽃의 의미를 찾아, 그 향기를 찾아 가보자. 그렇게 꽃에게로 가보자. 그리고 되뇌여 보자.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고.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