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와 감자의 추억
양파. 아파트 베란다에는 시골에서 보낸 온 주먹만한 양파가 그물망에 가득 매달려 있다. 양파는 찬과 국거리로도 사용하지만 나는 간식거리로 자주 먹는 편이다. 물에 밥을 말고 된장에 양파를 찍어 먹는 식습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양파로 만든 과자를 먹는 아들 곁에서 나는 시집 한 권을 읽으며 태연히 양파 껍질을 벗겨 먹는다. 과자를 먹던 아들 녀석이 빙긋 웃으며 신기한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더니만 “나도 한번 먹어볼래요?”라며 한 껍질 벗겨 씹는다. 양파 겉껍질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맵기도 하지만 속살은 단맛이 일품이다. 이 양파로 그 과자를 만든 것이라고 말하자, 아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어린 시절 이렇게 토방에 앉아 양파를 베껴먹곤 했다. 때로 어른들은 들녘에서 간식으로 양파를 뽑아서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하며 시장 끼를 때리기도 했다. 굳이 시장 끼가 아니더라도 이웃 밭에서 무 한 뿌리 캐서 베어 물거나 오이 하나 따서 먹는 일은 자연 속에서 하루의 일생과 한 평생을 공존했던 농부들의 자연스런 먹거리 문화였고 여유와 즐김의 미학이기도 했다.
농산물인 양파는 정확히 따지면 백합과에 속한 두해살이풀이다. 특히 파 꽃은 9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여러 시작품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잎 사이 꽃줄기 수확은 주로 6∼7월에 이루어지고 잎이 쓰러지고 약간 녹색을 띨 때 식용으로 쓴다. 뿌리도 비늘줄기도 온통 식용인 것이 양파이다. 그 독특한 냄새는 이황화프로필, 황화알릴로 불리는 화학성분 탓이다. 이 물질은 생리적으로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고 이뇨효과에도 좋다고 한다. 이밖에 비타민과 칼슘, 인산이 함유돼 있어 혈액 중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약으로도 쓰인다.
중국 음식에는 당연히 양파가 바늘과 실처럼 함께 한다. 샐러드나 수프, 고기요리에 향신료로도 쓰인다. 영파는 영원한 보약인 셈이다. 요즈음엔 양파즙이 각광받고 있다. 껍질을 벗겨낸 후 물로 씻어 끓이면 매운맛이 사라진다. 다시 채를 썰어서 양배추와 함께 물에 30분정도 담가놓으면 바로 양파즙이 된다. 항균작용 당뇨병 치료, 동맥경화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집집마다 여름 체력 증진용으로 양파즙이 인기이다.
며칠 전 아내와 아들은 외갓집에 다녀왔다. 일손이 모자라 감자 캐는 일도 도울 겸 아이에게 현장체험의 기회를 줄 겸 떠난 시골 행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발전하다보니 감자도 붉은 고구마와 젖 붙인 단계에 와 있었다. 감자가 노란 게 아니라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유자와 귤을 젖 붙이면 유자의 신 맛이 사라지듯이 감자 맛이 꽤 담백하고 독특했다. 아이는 몇 개를 골라 물컵에 감자를 올려놓았다. 며칠이 지나자 오목하게 팬 눈 자국에서는 어린 싹이 돋아났다. 푸른 잎이 줄기 마디마다 나오는데 대개 3∼4쌍의 겹잎이다. 작은 잎 사이를 바라보면 또 다른 작은 잎이 붙어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오고 별 모양의 자주색 또는 흰색의 꽃이 핀다. 꽃이 진 뒤에 토마토처럼 작은 열매가 달린다. 주렁주렁 줄기마다 열리는 그것이 바로 감자가 아니던가. 삶아서 먹기도 하고,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기도 하는데 어릴 적 튀겨서 만든 과자를 구멍가게에서 사 먹곤 했다. 가장 싸면서 가장 배부르게 바삭바삭 씹어 먹던 과자가 바로 감자과자였다. 감자깡, 감자탕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 과자이다. 감자는 소주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녹말은 당면으로 사용하거나 가축 사료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덩이줄기 싹은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솔라닌(solanine)이라는 이 성분은 일종의 독성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싹이 나거나 빛이 푸르게 변한 감자는 가능한 솥단지에서 빼내 거름더미에 버리곤 했다. 아무튼 요즈음에는 햄버거 가게에서도 감자는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포토이트칩, 감자탕, 감자전, 된장국에 채 썰어 놓은 감자는 식욕을 잃기 쉬운 여름에는 그만이다. 조개구이를 해먹으면서 감자호일을 놔두면 해산물과 감자의 아름다운 음식 궁합이 맺어지기도 한다. 모닥불 가에 감자를 굳듯이 조개 옆에 감자를 구우면 그 냄새도 그렇지만 연한 고기와 달면서 담백한 느낌의 감자의 만남은 환상적이다.
이런 감자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감자캐기 체험행사가 서산시 팔봉면에서 열렸던 것. 각종 농산물을 전시하고 산지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인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감자를 가지고 축제를 열겠다는 그 아름다운 발상이다. 감자로 탑을 쌓고 각종 농악놀이, 감자 길게 깎기 대회, 감자중량달기, 팔봉산등산대회, 감자떡 만들기와 감자캐기 체험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팔봉산은 국내 100대 명산에 들어있는 산이다. 서해안의 금강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와 일몰은 장관이다. 그리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들판의 풍경과 솔숲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런 공간에서 도시민과 농어민이 어우러져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하고 우리 농산물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는 것,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 행사인가. 한연숙 팔봉면장은 “팔봉 감자는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서 자라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면서 “참가자들이 직접 감자를 수확하여 풍요로움을 느끼고 특히 청소년에게는 인스턴트 식문화에서 벗어나 자연의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는 학습현장이 되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과 이웃끼리 대화하면서 자연에서 편안한 기분으로 더불어 즐기도록 등산코스와 갯마을 산책이 가능하도록 풍경이 있는 농촌 행사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질 좋은 서산 간척지 쌀밥에 감자 그리고 양파를 얹어 마련한 여름 식탁은 얼마나 맛있고 풍만할까나. 오늘은 그렇게 추억의 시골 밥상머리를 떠올리면서 정겨운 얼굴들과 풍요로운 시골 풍경에 푹 빠진 채로 점심나절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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