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숲에서
박상건
지금 숲에는 물빛 마찰음. 허공에는 사선의 가지들이
햇살줄기를 가위질하고 있다
잘려나간 햇살들이 방아깨비처럼 톡톡 튀어오르는 것을 보면
숲의 생명력은 팔짝팔짝 뛰는 햇살의 힘에 있다
햇살 풀무질하는 것은 차고 돌리는 물소리이다
물소리는 기도하는 나무들의 종소리이다
종소리 구르는 나무의 울타리는 여백이다
여백과 여백 사이에 바람이 불고 인정이 쌓인다
생목이거나 노거수이거나 더 큰 여백을 위해
낙엽이 지고 열음한 나무들은 드러눕는다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서로의 목침이 되고
팔베개가 되어주는 사선의 삶.
경계 없는 세상이 숲을 이루고
숲에서 노래하는 새들은 숲의 일원이다
-박상건. <상수리나무 숲에서> 부분.
시집 《포구의 아침》(책 만드는 집. 200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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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상상력. 숲의 생명력을 읽는다. 시적으로 팽팽하게 긴장된 건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 건강한 긴장미가 여백을 만나 더 넓은 세계를 연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이 거기 스며들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개인주의적 삶을 당연시 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꽉 짜인 일상을 생각한다. 여백이 없으니 친구도 이웃도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니 세상이 사막 같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 아니겠나. 오늘은 숲을 이루는 나무의 삶을 읽는다. 자기 영역만 맹목적으로 지키는 삶보다 햇살도. 물소리도. 바람도 흐르는 여백 있는 숲의 세상을 여는 삶. 노래하는 새와 같은 숲의 일원이 되는 삶을 생각한다.
-배한봉(시인. 《시인시각》 편집주간)
(경남신문, 200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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