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등대기행 17] 속초 등대
중력 이용한 국내 유일 등대, 사색의 공간으로 적격
‘묶을 속(束)’, ‘풀 초(草)'의 속초. 동해바다의 대명사랄 수 있는 이곳은 바로 뒤로는 설악산이 선연하게 보이고 앞으로는 드넓은 바다에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곳이다. 영금정 옆에 솔산이 있는데 바다에서 포구 쪽을 바라보면 이 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고 하여 속초라고 불렀다고 한다. 풍수지리에서는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모양새라는데 즉, 누워있는 소는 풀을 잘 뜯을 수 없어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에서 풀을 묶는 ’속초‘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청초호와 영랑호에서 ’속(束)‘자와 ’초(草)'를 각각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국지명총람’에는 속초리는 속새울, 속새골이라고도 불렀는데 속새가 많아 그리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속새를 한자로 표기하니 속초라는 것이다.
하여튼 6.25 후 휴전선을 바로 앞에 둔 속초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항구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에 따라 속초등대가 세워졌다. 56년 겨울 등대를 만들기 시작해 1957년 6월에 첫 불을 밝히게 된 것이다.
해수면 48m 높이에서 내뿜는 국내 유일의 중력 회전 등대불빛
속초등대는 영랑호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있다. 이곳 등대 불빛은 18초마다 네 번의 불빛이 반짝인다. 그 불빛은 지리적으로 19마일 거리까지 비추고 있다. 안개 등 기상 악화 때는 에어싸이렌을 통해 고동소리로 내어 항해자에게 포구의 위치를 알려주고 날씨의 변화를 일러준다. 이 고동소리는 45초마다 한번씩 5초간 길게 울린다. 그 소리는 3마일(5.5km) 해상까지 들린다.
속초등대는 백색원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다. 바다로부터 48m 지점에 솟아 있는 등대의 높이는 10m. 불빛 깜박이며 돌아가는 등명기는 독일제 렌즈로 직경이 1,000mm이다. 1953년에 제작된 이 등명기는 중추무게(중력)에 의하여 회전한다. 이런 방식을 이용한 등대는 속초등대가 유일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속초 등대는 동명항 영금정에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동해바다가 장관이다. 툭 트인 바다에 푸른 파도소리, 오고가는 배들의 뱃고동이며 갈매기 풍경 이 동해바다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특히 이곳 등대에서는 우리나라 등대의 종류를 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등대에서는 등탑 기둥이나 방파제 등대가 고작이지만 이 곳 등대 홍보관에는 각종 항로표지 사진과 실제 등부표, 동해안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류, 각국의 등대모양, 남극의 해양탐사 장면 등을 사진으로 잘 꾸며 놓았다.
그리고 등대전망대에 오르면 방파제 등대가 보이고 방파제 앞 조도 무인 등대, 등부표, 속초항 등표 등을 실제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 등대를 ‘등대 산 교육장’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유인등대와 무인 항로 표지를 한 장소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속초 등대뿐이다. 그뿐인가, 등대 아래서 낚시하는 사람들과 연인들의 산책, 물질하는 해녀들, 그리고 싱싱한 회시장 등이 생동하는 포구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등대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영금정 정자
시내를 들어오다 보면 속초등대는 ‘영금정 속초등대전망대’라고 표지판에 써 있다. 영금정은 돌로 된 산으로 파도가 쳐서 부딪치면 신묘한 소리가 들렸다는 것인데 그 음곡이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등대가 그 소리를 영혼으로 담아낸 듯 반짝이고 있다.
돌산이었던 영금정을 일제시대 속초항을 개발하면서 깨뜨려 항구를 조성했고 이로 인해 지금은 넓은 암반으로 변해 있다. 일본인들의 우리 산하 부수고 파괴하는 흔적은 어디를 가나 만찬가지여서 늘 가슴 아리게 하는 대목이다. 영금정에는 해맞이를 할 수 있도록 정자가 만들어져 있고 평상시에도 이곳은 산책 코스로 적격이다. 참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이다.
속초 등대에 보면 설악산 경관이 한 눈에 들어선다. 또 해안선은 멀리 금강산으로 이어지고 날씨 좋은 날에는 이 해안선을 타 오르는 금강산을 바라 볼 수도 있다. 해안선과 산자락의 이 절묘하고 오묘하며 신비로운 조화 앞에서는 파도 소리도 어느 바다도 남다르게 들려오는 듯 하다.
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따스한 불빛으로 일어서는 속초 등대는 한쪽 가슴에는 분단의 아픔을, 한쪽 가슴에는 통일의 꿈을 지닌 채 서 있다. 그런 꿈을 보듬고 오늘도 묵묵히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의 항해 길을 비추어주고 서 있다.
등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설악산, 영랑호, 동해물결, 철새도래지 풍경들
속초 등대는 속초8경 가운데 하나이기도 데 휴가철에는 방문객이 한달 평균 만 오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호평 받고 있다. 등대에서 바라다보면 북쪽과 남쪽 백사장 해수욕장 또한 아름답고, 북서쪽으로는 36만평의 자연호수 영랑호가 함께 한다. 남서쪽으로는 속초4경인 철새도래지 청초호가 있다. 동으로는 가슴 환하게 맞아주는 동해 물결, 서로는 백두산을 향해 치달리는 명산 설악산이 등대와 변함없이 눈빛을 주고받고 서 있다.
바다와 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낚시와 안주감인 싱싱한 횟감이다. 자연에서 음미하는 그 맛에 맛들이지 못한 사람은 여행이 주는 한가함의 진정한 철학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강태공들은 속초항 방파제와 청호동 방파제를 많이 찾는다. 사계절 낚시 포인트이기 때문. 특히 9월 중순에서 11월이 절정이다. 파도가 있는 날이면 황어 숭어낚시가 인기다. 감성돔, 가자미, 임연수어, 학봉치, 노래미, 우럭, 아나고 또한 많이 잡힌다.
속초 회시장은 횟집, 활어판매장(횟집형), 활어판매장(천막형) 등 세 종류가 있다. 여행길에서는 규모 있는 곳보다 바다를 낀 활어장이 운치 있고 싱싱한 회 맛을 볼 수 있어 좋다. 바닷가에 즐비한 천막형 활어집은 회, 고추장, 매운탕 값을 따로 받고 썰어주는 값도 별도로 받는다. 그만큼 싸고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배를 타고 잠수함을 타고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배를 타고 직접 바다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잠재울 수 없는 사람들은 속초시내와 청호동 아바이 마을 사이 수로를 타고 가는 일명 갯배를 타보는 일이다. 본디 어부들은 과거에 이런 작은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해왔던 것. 일종의 작은 도선인데 긴 선 두 줄기에 배를 선으로 연결해 놓고 당기면서 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섬진강에 다리가 생기기 전에 전라도 광양 사람들은 경상도 화동 화계장터를 오가기 위해 강 언덕끼리 밧줄일 이어놓고 이를 잡아당기며 장터를 오고가고 서로 물물교환과 이웃 정을 다독이며 살았던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그 정서를 지금도 되살려내고 있다.
갯배는 6.25전쟁 후 속초가 수복되면서 북한 땅 고성에서 남하한 조막손이라는 김씨 노인이 20명쯤 탈 수 있는 배를 만들어 배삯을 받아 살면서 시작되었다. 이 갯배를 타려면 속초 제일극장 앞과 청호동 항구 방면으로 100미터 정도 가면 된다. 승선하는 사람이 이 줄에 매달린 갈고리로 배를 끌면서 뱃길을 건너가는 것인데 그것대로 운치가 있다. 속초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바다 여행 맛이기도 하다.
좁은 수로 보다는 파도치는 드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다면 8천원 승선료를 내고 타는 유람선이 있다. 설악산 줄기를 이어가는 작은 산줄기의 자태이며 속초의 바다, 아름다운 호수 등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낙산사와 관동팔경 등 동서남북에 걸친 화려한 산수를 한 눈으로 조망하는 유람이다.
바다 속을 직접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해저관광 잠수함을 타면 된다. 신비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그 환상에 젖어드는 코스는 내물치항에서 출발해 동해항 앞 무인도 조도에 이르는 것이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고 비용은 4만9천5백원이다.
해발 230km로 푸른 소나무로 우거진 청대산을 등산하는 것도 괜찮다. 정상에 서면 속초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해의 푸른 파도는 물론 대청봉, 달마봉, 울산바위 등 설악산의 진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속초는 이러 저래 아름다운 산수를 동시에 출렁이며 오늘도 묵객과 나그네의 발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 심장부에 속초 등대가 있는 듯 없는 듯 섬모롱이에 서서 365일의 바다의 안전을 보살펴주고 있다.
● 미니상식l전쟁과 약탈 속의 등대 이야기
등대는 해상의 길라잡이다. 선박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메신저이다. 그러나 등대가 꼭 좋은 일에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가 문명의 진전을 위해 유럽 진출을 꾀할 때 그 출구를 바다에서 찾았고 싸움의 시작과 방어의 시작은 등대였다. 누가 등대를 먼저 만들고 등대를 점령하느냐는 전쟁 승패의 관건이었다.
일본의 끊임없는 대륙진출 야망 역시 한반도 요충지에 등대를 세우는 일에 드러나고 있고 그렇게 우리나라 대부분의 등대는 일제 치하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등대에는 기쁨과 슬픔을 버무린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육지에서 러시아인들이 나폴레옹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길거리 표지판을 거꾸로 돌려놓아 적은 군사로 방어할 수 있었듯 섬나라에서는 등대를 이용한 해상 전략을 자주 폈다.
해적선들은 포클랜드 해전에서도 독일과 영국간 보급선 방어와 탈취 작전 와중에 끼어들어 상대의 적이 하는 것으로 위장해 약탈하거나 함선이나 보급선으로 위장해 등대 아래 보급 창고를 털어내기도 했다.
또 암초에 장작불 등을 피워 거짓 등대((False fire)를 만들어 불빛으로 선박의 항해를 교란시켜 암초에 좌초된 선박으로부터 화물을 약탈하기도 했다. 복잡한 해안선과 기상악화가 심했던 남아메리카의 카리브해와 영국의 코니쉬 해안이 그 대표적인 곳으로 이런 이유로 이곳을 죽음의 바다라 부르고 있다.
14세기 스코트랜드 알보스성의 아보트라는 사람은 암초 위에 소리를 내는 큰 종을 설치해 종소리로 위험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마저 해적들이 떼버리고 난파선으로부터 금괴와 생필품 등을 약탈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과는 반대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 침략에 맞서 적은 병사로 대항하기 위해 전남 완도 당사도 등대 건너 육지에 불을 밝혀 일본군이 바다로 오인해 항해를 가속화토록 유인해 배가 육지로 곤두박질치게 하는 지략을 펴기도 했다.
● 속초 등대로 가는 길
○ 항공
서울→양양국제공항→공항시내버스→속초→속초등대
○ 기차
청령리역→강릉역→강릉시외버스터미널→속초행 버스→속초→속초등대
○ 고속버스
서울(강남 동서울)→속초터미널(3시간 30분소요)→속초등대
○ 승용차
- 서울 →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원주 →대관령→강릉→속초→속초등대
- 서울 →신갈분기점(영동고속도로)→호법분기점→원주→대관령→강릉→속초→속초등대
○ 교통문의: 공항공사(033-670-7311),강릉역(033-645-7788),강남터미널(02-780-2323), 동서울터미널(02-456-3181), 속초시청(033-633-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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