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시인 박상건
… 그의 시집이 나온 다음 해인지 분명치 않사온데, 황혼의 광화문 네거리를 바람에 머리카락 날리며 지나가는 미목수려한 시인을 본 곳이 백석의 마지막이었습니다.(시인 김광균의 회고)
… P는 광화문 네거리의 기념비각 옆에서 발길을 멈추고 망설였다.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다. 봄 하늘이 맑게 개었다. 햇볕이 살이 올라 포근히 온 몸을 싸고돈다. 덕석 같은 겨울 외투를 벗어버리고 말쑥말쑥하게 새로 지은 경쾌한 춘추복의 젊은이들이 봄볕처럼 명랑하게 오고가고 한다. 멋쟁이로 차린 여자들의 목도리가 나비같이 보드랍게 나부낀다. 그 오동보동한 다리를 바라다보노라니 P는 전에 먹던 '치킨 카츠'가 생각이 났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중에서)
… 육조관아가 늘어서 있던 조선시대의 광화문 네거리와 광화문은 의미에 있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백석이 거닐고 함박눈이 푹푹 쌓이던 거리, 채만식의 봄볕처럼 명랑한 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흰눈이 내리던 갑신년 겨울 저녁, 광화문 네거리의 당그래 출판사 사무실로 시인 박상건을 찾았다.
황금빌딩이라는 고풍스런 이름의 작은 빌딩 한 구석에 그가 경전을 해독하듯 웅크리고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이번에 그는 근 2년여에 걸친 시인들의 취재기를 한 권의 책(빈손으로 돌아와 웃다/당그래)으로 묶어 냈다. 같이 글을 쓰는 동업자로서 그들의 작업실과 창작무대를 찾아다니며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쉽사리 열리지 않는 시인들의 이면을 풀어헤친 만큼 힘들고 소중한 작업을 마친 그와 마주하며 이번엔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바쁜 세상이지만, 누구 못지 않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요즘 하는 일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주말 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업무(?)이고 안 가면 허전해서 못 견디는 일입니다. 두 개의 인터넷매체에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를 연재 중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밖에 한국방송 <미디어포커스> 언론보도 분석과 농림부 공보자문관, 새 학기 대학강의 준비, 계간 <섬> 봄호 발행을 준비중입니다.
♧사무실이 서울의 중심 광화문통에 자리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묘하게 서울살이 대부분이 광화문에서 이루어졌고 특히 섬문화연구소 활동을 이곳에서 시작해 계속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지인들이 대부분 광화문에서 활동중인 점도 있고 그들과 만나 술 먹고 교류하기도 편한 곳입니다. 강남 쪽보다 현란하지 않으면서 왠지 사람 냄새가 풋풋한 뒷골목, 카페 음식점 문화공간도 정겨운 대목 중에 하나입니다.
♧전기문학이 극도로 빈약한 풍토에서 같은 직종의 사람들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책의 출생과정을 듣고 싶은데...
☞사람이 있고 나서 문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언론이 있고 정치가 있을 터입니다. 모든 것은 삶을 보다 윤택하고 그런 삶의 올바른 기항지를 향한 수단이요 여정일 것입니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어떤 문학을 하느냐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문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이라면 그것은 허구이자 위선이며 독자에 대한 타인에 대한 언어도단입니다. 글을 좀 못 쓴 사람 아주 못쓴 사람보다 더 큰 죄악은 자기 삶을 속이는 말장난일 것입니다.
값싼 정치인의 말대가리와 하등의 차이가 없을 터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널리 알려졌거나 그런 글(문학)을 하는 분들의 뒤안길을 돌아보고 뒤적여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타인에게 존경받고 있는지 어떤 가치관과 문학관이 남과 다른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문학과 자신의 삶이 엇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일관되게 삶과 문학 행위를 채찍질하며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삶과 문학을 재확인하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큰 감동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그런 점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독자에게도 책 읽는 진정한 의미를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작업의 연장선에서 사화과학을 하는 소위 지식인을 탐구하는 작업도 준비중입니다. 그렇게 제 자신도 숙련하고 삶을 숙성하고 익힌 생각과 글에서 보람을 찾고자 하는 게죠.
♧누가 가장 취재하기 까다로웠습니까?
☞황동규 시인이 제일 까다로웠습니다. 그분은 자존심과 자기방어가 남달리 강했고 분명했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제가 쓴 글 가운데 자신만 부각됨으로서 스승과 부모에 대한 비중이 낮아진 느낌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표현을 손질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겸허함과 글에 대한 자존심, 자기 관리가 분명한 긍정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나오지 않는 취재과정의 에피소드 한 두 개를 소개해 준다면?
☞어느 시인의 경우 직설적인 질문이 계속되자 화를 벌컥 내기도 했습니다. 개인에 관한 글을 쓰면서 비판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그리고 문학적으로 한참 후배인 제가 문단 선배이자 사회적 지위가 월등한 지식인을 향해 저돌적으로 접근한 자체가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어느 시인의 경우 기존 평론 자료를 무시하고 무조건 제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 나중에는 "고맙다. 바로 그것이다. 시인이 쓴 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는 의외의 격려전화도 주셨습니다. 시인의 의도와는 엇나간 평론이 그동안 계속 되었고 시인의 문학성을 훼방놓거나 독자에게 잘못 인식시킨 과오가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문인들의 삶이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보는지요?
☞일단 돈 안 되는 일에 자신의 영혼을 쥐어짜서 받친다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가 뒤틀리고 각박하고 자본주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태일수록 시인의 맑은 영혼의 울림과 부조리에 대한 일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문인들이야말로 위대한 방랑자요 선구자입니다. 분명 문인들이야말로 영원한 시대의 목탁이요 종소리입니다.
♧문인에게 바람직한 창작의 산실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직접 보거나 발을 내딛어보지 않는 곳을 글로 쓰지 않는 다짐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론학적으로 말하면 현장중심 사실보도인 셈입니다. 팩트 없는 상상력 남발은 과장보도 왜곡보도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언론학과 문학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글이라는 뼈대로 시작하고 그런 뼈 국물을 우리는 사골사발 같은 작업을 하는 행위의 겉과 속의 모양새는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문인은 자고로 낮고 소외된 지역, 모두가 인간적인 권리를 항해 함께 지향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와 행위를 바탕으로 함께 울고 기뻐할 수 있는 대상과 소재라면 바로 그곳이 창작의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의 진실이 퇴색되거나 탈색되지 않는 글이 뒤따른다면 말입니다.
♧결국, 타산지석이라고 남의 삶을 살핌으로서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을 것으로 보는데, 이번 취재에서 박시인이 얻은 미덕이 있다면 무엇인가?
☞여행은 한가함을 말하는 것이죠. 스스로 깨닫고 평안을 찾는 길입니다. 그런데 남을 찾아 떠나는 일과 그런 결과를 책임 있는 글쓰기로 드러내는 일은 부담이 엄청 컸습니다. 여행은 삶의 액기스를 뽑아먹는 행위인데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는 구석이 많았다는 것이죠.
좋은 취지였지만 오히려 명예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대목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에 대한 여행이든 사람에 대한 여행이든 많이 배우고 깨달아 삶이 익어야 얻는 일종의 의식이자 행위인 듯 합니다. 사람여행이든 자연여행이든 공통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물 묻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시쳇말이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끈덕지고 끈끈한 눈물이나 강이나 바다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죄다 그런 세상의 한복판을 해쳐왔더군요. 그런 삶 앞, 굴곡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주장과 생각을 변색시키지 않고 꿋꿋하게 영혼을 지켜오고 닦아왔다는 사실 앞에서 존경스럽고 개인적으로 타산지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올바른 삶 위에 이루어지는 글은 언젠가는 대접받고 인정받는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인생은 곧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언제 정을 느끼고 어느 경우 서운함을 느끼는지요?
☞아무래도 어려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손길 내밀어 주는 경우가 가장 정겨운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힘있는 곳에 빌붙고 그 자력이 상실될 즈음 영악하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에 필요하면 붙고 그렇지 않으면 멀어져 가는 속물근성이나 엽전의식이 팽배한 경우가 아주 서운한 경우이지요. 원죄이기는 하겠지만 상대가 시인인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나보다 더 힘있고 연륜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굽히는 분들을 마주할 때 한없이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존경스러워져 그분을 향한 마음을 추수리고 다잡게 됩니다.
♧취재와 여행에는 이력이 붙은 듯한데 길게 쓰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 앞으로의 개인적인 계획도 듣고 싶습니다다.
☞바둥바둥 이력나게 먹고살며 지내온 길이 어느 날 되돌아보니 그것이 밥줄이고 이력으로 굳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취재하는 일, 여행하는 일, 언론비평 하는 일은 결국 생각하기와 글쓰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 길에서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한때는 존경하는 인물도 많았는데 지금 우리 시대는 타락의 정도가 심하고 어른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길게 쓰고 싶은 사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굳이 개인적 계획이라면 나지막한 곳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는 오지 섬사람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고 그들이 사는 지역의 생활문화를 발굴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묻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게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인데 끝으로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 한 두 권만 선해 주시죠?
☞<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건물을 나설 때 당그래출판사 이춘호 사장과 시인이 배웅 삼아 따라 나섰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낮술로 정종 한 잔 어때? 하고 누군가 흰눈 녹듯 속삭였다. 세종문화회관 옆 광화문통을 빠져 나오며 긴 숨을 한 번 몰아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80년도인가, 건너 편 레코드 가게에선 이맘때쯤 산울림의 노래가 흘러나왔었다. 노래는 이제 잠시 광화문을 떠나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채만식의 레드메이드 인생들이 분주히 오가며 21세기의 눈길을 축제처럼 즐기고 있었다.
▣ 시인 박상건
·전남 완도 출생.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농림부 공보자문관, 서울여대 언론학 강의. 시집 <포구의 아침>, <김대중살리기>, <일류공무원 삼류행정> 등.
▣ 글: 시인 박철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87년 <창작과 비평> 통해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시집 <김포행 막차>, <새의 전부>,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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