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김포행 막차'의 시인 박철 한낮에도 애를 업고 담장 밖 기웃대며 서성이는 사내들과 한밤에도 돌아올 줄 모르는 여인들이 한데 엉크러져 살아갑니다 오늘도 고향 그리워 밤으로 돌아눕는 뜨내기들과 빈 거죽만 쥐고 있는 본토박이들과 구멍가게 모여 술주정하다 한가지로 쓰러지며 살아갑니다 ('김포 1' 중에서) 농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산다는 김포 땅. 박철 시인은 그 김포에서 오늘도 광화문행 버스를 타고 동료 글쟁이들과 문학을, 인생을 이야기하러 거리로 나선 다. 그렇게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다시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흔들리는 뒷모습을"바라보고 사 색하며 김포로 돌아오곤 한다. '김포 1'은 연작시 중 가장 서민적이고 소외계층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산업화의 거센 물결로 와해되어 가는 농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정경을 집단적 리얼리즘으로 표출한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병약한 몸, 구경꾼으로 절망하지만 섬세한 신경은 곧추 세우고 그에게 '김포'는 고향이면서도 산업화의 때가 아직 덜 묻은 서울의 마지막 농촌이다. 그러면서 개발의 소음이 갈수록 크게 들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그런 고민과 상념을 여리게 드러내며 천천히 살아 가는 불혹의 시인이다. 때로는 소심할 정도로 이 사회를 비관하고 그런 사회 앞에서 절망하곤 한다. 그러면서 자탄하기도 한다. "지금은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지만/그 어둠 속에 길을 잃고 헤매이는/아직 도 나는 구경꾼이 아닌지/빛과 화살의 아침을 찾지 못하고/떨쳐야 할 온갖 것 어둠에 묻어버리는/나는 아직도 구경꾼이 아닌지". 그렇게 번민한다. '아직도 나는 구경꾼이 아닌가'라는 제목의 시이다. 그는 1989년 남북작가회담 추진 문제로 마포 경찰서에 연행된 바 있다. 당시 함께 조사를 받던 소설가 현기 영 씨에 따르면 연행자들이 철야조사에 시달려 모두 새벽잠에 취해 있는데 박철 시인만이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더라는 것. 그의 섬세한 신경을 읽게 한 대목이다. 한 시대의 구경꾼이었다고 자탄하지만 병약한 몸으로 치열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영혼의 몸부림 같은 흔적을 시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소심 하지만 소시민적 문학이라고 단정짓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늘 사회현실에 시선을 주면서도 몸으로 부딪치거나 현장시를 쓰지 못한 것을 자주 탄식하곤 했 다. 마치 이성부 시인이 80년에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치열하게 싸우지 못한 자탄으로 10년의 절필을 했던 아픈 기억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현기영 씨는 "그의 시를 통해 화자가 자신과 뜨겁게 일치하는 동일시 현상의 감격을 맛본다"면서 "어느새 주인공의 체험이 내 자신의 체험으로 옮아와 있 음을 느끼는 이러한 체험은 현장의 직접 체험 못지 않게 생생한 실감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라고 평 했다. 박철 시인의 거개 시들은 김포에서 서울 사이를 오고가며 씌어진 것들이다. 그의 시에 있어 서 울은 투쟁의 상징이자 경쟁과 이기주의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서울은 속 풀이 대상이자 대항의 대상이 다. 언제나 미련 없이 던져 버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밤 세워 실오라기를 엮어가던 마음의 외투가 아닌 바에야 언제나 훌훌 털고 벗어버리는 외투 같은 것이다. 김포는 부익부 빈익빈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그네들이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이다. 문명의 이기가 요동치듯 밀려오고 지나가는 곳. 지금도 그가 사는 거처의 주의의 논들은 연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그런 김포 는 상실의 고통이긴 하나 한편으로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거처이다. 비 내리는 날 술에 취하고 꽃향기에 취한 이유 다분히 이중적인 모습의 '김포'에 관한 그의 시들은 반대로 늘 한가지 목소리로 써졌다. 단순 명료하 다. 그래서 너무 쉽게 읽힌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만큼 진솔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자기 표현의 일관성과 고집이 면면히 한 흐름으로 흐르고 있다. 정서의 진솔함과 사물에 대한 견해가 투명 하게 시라는 형식으로 아우르러 진 것이다. 애써 글을 짜고 비틀면서 어렵게 풀어 가지 않는다. 따라 서 그의 시가 동어반복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의 일상을 피상적으로 들여다 본 경우 이다. 그는 이론과 문맥 분석 중심의 평론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편견과 오만함을 단호히 거부한 다. 시는 자고로 평이해야 좋은 것이 아닌가. 평이함 속에 견고한 형식을 갖췄다면 그게 좋은 시가 아 니겠는가. 그는 분명 그가 딛고 살아온 김포를 창작 무대로 삼아 체험적 시 쓰기를 하고 있다. 체험을 지렛대로 꼿발 서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늘 평범한 화자로 등장한다. 그렇게 생각을 조율하 고 절망의 깊이를 파 내려간다. 좌절 끝에 다시 희망의 깊이로 치고 올라오는 두레박질 같은 시와 삶 의 거리를 읽어낼 수 있다.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가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전문) 건강상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박철시인은 술자리를 좋아한다. 세상의 주류를 거부하지만 주당파의 주 류이길 원한다. 그것도 얼큰하게 취해 가슴 데피어지면 노래 한 곡 불러제끼기를 즐긴다. 그런 시인이 비 내리는 풍경을 스쳐 지나갈 리 만무하다. 하수구 뚫듯이 톡톡 쏘는 맥주를 통해 불혹의 껍데기 혹 은 일상의 편린들을 탈탈 털고 술술 뚫어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그런 삶의 찌꺼기를 침전시키는 맥 주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왜 이 시인이 아내의 심부름을 가다가 갓길로 들어서 술값을 유용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짐작하지 못할 터이다. 그 유혹의 원죄는 늘 무심하고 단순하게 살아온 그러면 서 정서적 반응을 민감하게 하는 이 도회지풍 시인의 기질이다. 슈퍼 앞에서 오 백원 내지 천 원 하는 포장 멸치나 땅콩에 맥주 한 컵 들이키는 맛은 서민의 멋이요 매력이 아니던가. 거기엔 삶의 헛된 유 희가 아니라 생에 대한 깊은 관조와 회한이 숨어있는 것이다. 두 번째 심부름 가던 날에는 문 밖에 버 려진 자스민 한 그루에 눈길을 빼앗긴다. 그의 시선을 잡아끌던 소멸 직전의 자스민 향기는 여린 시인 의 감성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 꼬드김을 당할 수 있는 것도 시인의 축복이다. 어쩜 시인은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의 위안으로 오늘도 살 맛 나는 세상으로 가는 동력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외도(?)에 뜬금없이 하수도 뚫고 노임을 떼먹은 뻔뻔한 주부로 전락한 아내, 아내의 손을 잡은 고운 눈썹의 아이, 그리고 그냥 웃음으로밖에 대답할 수 없었던 전업시인 가 장의 씁쓸함.... 애오라지 쑥국, 쑥국 울어예는 쑥국새와 무심히 내리는 빗방울만이 알 일이다. 그 빗줄 기 한 방울에 세 가족의 풍경이 흔들리며 매달려 있다. 그는 이 일로 영진설비 아저씨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없는 자들의 유일한 혜택은 때로는 패대기치고 때로는 동병상련으로 깊어 가는 일이다. 박철 시인은 이런 소시민의 일상을 노래하고 함께 그런 세상을 일구고픈 시인이다. 답답하면 그래도 김포를 뛰쳐나와 도회지를 두리번거리고 그리움이나 외로움으로 흔들리는 시계추 같 은 일상을 산다. 그런 삶을 좋아하고 그렇게 흔들리고 싶어한다. 때로는 자스민 향기에 푹 빠져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에 연민을 보탠다. 여태 한번도 털어 내지 못한 애틋한 사랑 한번 해보고 싶 은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현실에 타협하거나 안주하는 일도 싫고 권세와 세상의 주류로 우뚝 서고싶 은 욕망도 없다. 그런 욕망과 부류들과는 거리를 두고 살고 싶다. 그래서 "내 나이 이제 사십 세상의 유혹에 빠져도 좋을 나이"라고 조소하는 패러독스의 박철 시인. 그는 '광화문 서정'에서 시처럼 "결국 모든 것은/슬픔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게 세상 한 복판에서 자화상을 읽는다. 삶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남루함과 현대화 "엽전들의 추억"까지 떠올리 면서 말이다. 방화동에서 방학동까지 좁은 길 넒은 길 수많은 사람들 헤치고 지나며 수월치 않은 우리네 생활과 희망과 또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이 길 막혀 어제 거리를 헤매었으나 그것은 나의 길 너의 길 가는 세월의 서투름을 하나하나 버리며 돌아오는 길의 기쁨과 즐거운 추억에 대해 생각한다 터덜터덜 차창 밖에 고개를 던지며 도봉산 그 작지 않은 숲의 우거짐과 김포벌 거침이 없는 바람 소리의 오랜 내력에 대해서도 귀기울여본다 사랑해야지 방화동에서 방학동을 오가며 거기 놓여진 온갖 흩어진 길들과 가로수 눈물까지도 사랑해야지. ('길' 전문) 이 거리를 헤매면서 서투른 일상 속에 절망하기도 하는 박철 시인. "원시의 낙엽 속에 한줌 흙 될 걸" 회한의 순간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밤이면 김포행 막차에 오른다. 김포를 오고가는 길은 삶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여정이다. 절망의 그림자를 끌고 귀가한다. 때로는 세상을 탈탈 털면서 귀가 하기도 한다. 절망은 늘 깨달음이다. 속울음 울고 눈물도 흘리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러면서 "거기 놓여진 온갖 흩어진 길들과 가로수/눈물까지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한다. 김포는 그에게 하루살이 항 해의 기항지이다. 깡마른 체구, 이 체구가 더 마르지 않기 위해서 한잔 술을 약으로 마시곤 한다. 잊기 위하여, 흔들리는 세상 함께 흔들리기 위하여. 그런 흔들림은 세상을 거부하지 않는 잔정 같은 것이 묻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아무리 취해도 술이 심지의 불꽃을 키우듯 눈빛이 파닥인 다. 흔들리는 몸짓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는 출판 디자이너이다. 그렇게 아내를 불러 함께 귀 가한다. 아내의 벌이로 근근히 생활하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 경제력이 없는 가장을 향한 아내의 사랑 만은 늘 팽팽한 실핏줄처럼 삶의 혈맥이 되어 흐르고 있다. 그런 사랑이 김포로 흘러 들어간다. 김포 평야 젖가슴에 흐르는 한강처럼 참 따뜻하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것이다. 격정의 세월, 낮고 무심하게 천천히 살아갈 터 이런 부부의 삶의 한 귀퉁이를 엿보여주는 시가 있다. "미학사라는 출판사가 있었다/한 때 잘 나가던 그 출판사가 문을 닫던 날/거기 디자이너로 있던 여자는 남편을 위해/용달차를 불러 원고지를 횡령하 였다/한 시인이 평생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이건 사주이던 박의상시인도 사장이던 배문성시인도 모르 는 일이다/여자는 원래 그런 여자였다". 최근 계간 <작가>에 실린 '미학사'라는 시이다. 이 시를 두고 한 평론가는 "사적 경향 이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지만 보기에 따라서 얼마나 잔잔한 사랑을 읽을 수 있는가. 가난한 시인과 아내의 마음이 작은 울림으로 일렁인다.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이 시에 서 무얼 더 표현하랴. 문 닫는 출판사 짐 정리하는 와중에 글쟁이 남편을 떠올렸다는 자체로 가슴 찡 한 것이다. 월급은 제대로 받고 퇴사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출판사 제작용 원고지가 대 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로고가 새겨진 습한 원고지가 만년필 글씨를 잘 먹는다 해서 맨질맨질한 원고 지 보다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시인은 그 원고지가 퇴색되어 가면서 다시금 시의 열정을 가다듬거나 고생하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를 되새김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소재를 아주 짧고 단순하게 그린 시이다. 나름의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그런 시 기법을 몇 군 데에서 더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몸값과 습성과 지켜야 할 예의까지를/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 속에 다 있다는 듯/확신과 열의로써 설명"하는 사람들, 가식으로 가득한 지식인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자 하는 것이다. 우회적인 서울사람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고 싶을 뿐 이다. 세상을 일일이 도덕적 잣대로 들이밀고 싶지는 않지만 응급실에서 생사 고비를 넘겼던 그로서는 복잡하고 고단한 삶이 싫은 터이다. 너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삶을 터부시하는 게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만은 분명하면 그만이다는 생각이다. 다시 "쇠줄을 잡고 생명줄을 잡고/마지막 희망의 노래" 를 부를 날을 생각하며 지금 이 '격정의 세월'을 걷는 것이다. 다만 천천히 걷고 싶은 게다. "늘상 뒷전에 서서 무섭게/바라보던 개화산, 내 할아버지/묻히고 내 언제 그곳으로 돌아가려던/쑥국새 그 산 날이 가면 갈수록 작아지는 사연"이 안타깝고 그 때 그 김포 땅이 그리울 뿐이다. "세상 쓰레기 온통 뒤집어쓴다 해도/김포는 김포예요/돌아서며 막차 걱정"하는 시인은 세상살이 이론과 실제는 다른 것이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살붙이고 살아온 김포를 고집스러울 정도로 사랑한다. 그 사랑은 너무 깊 다. 그래서 오늘도 따뜻한 아랫목이 기다리는 김포행 막차 운전석 뒤에서 흔들리며 가는 것이다. 자신 만 흔들리며 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도 통째로 자신과 흔들리며 산다고 믿는다. 그것은 때로 절망이고 희망으로 교차한다. 김포는 무한한 상상력과 추억을 일구어준 삶의 무대 이러한 마음을 최근 '신행(新行)'이라는 작품에서 드러냈다. 천년만년 비행장의 대명사로 남을 것 같던 김포공항이 국제화 물결에 밀려 인천공항으로 이사갔다. 트럭 행렬이 꼬리를 물고 서해 섬으로 이사 가던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어린 날 내가 만들었던 도토리나무 상처에 손을 디민 채 서치라이트 하나둘 꺼지는 소리를 들었다 눈앞이 가물거려도 트럭의 행렬은 유한하다 사람들은 모르거나 믿지 않는다 내가 왜 마지막 비행기가 날아가는 늦은 밤에 도토리 나무 잎새로 파르르 떨고 있었는가를 ('신행' 중에서) 그에게 비행장에 대한 추억은 아련한 것이다. 마음 깊이에 쟁쟁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활주로 불빛 을 볼 때마다 그는 포장마차 불빛을 떠올렸고, 속초 앞바다 집어등이나 발간포 폭음을 연상하기도 했 다. 성탄 재야의 대학로 풍경을 떠올리기도 했고, 어릴 적 소녀와 노닐던 반딧불이이나 홍등가 불빛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김포였다. 그 공항의 불빛도 불빛이지만 비행기가 멀리 구름 속으로 사라질 때는 유토피아를 꿈꾸기도 했다. 김포는 그런 상징이다. 그러면서 부자와 가 난, 서울의 빛과 그림자, 갈망과 절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그도 어디론가 비행기처럼 뜰 때가 아닌가 싶다. 훌훌 다 털어 버릴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은혜인지, 산업화의 배은망덕한 짓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 요란한 포크레인 소리는 부리나케 김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차제에 서울로 쳐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부천 강화 어디론가 더 밀려 갈 일인지... 꿈의 서치라이트 불빛은 이제는 개발의 상징인 공사장 서치라이트로 돌변해 그렇게 김포 땅을 파먹고 있다. 이제 김포교통 막차 대신에 지하철 개화산역 막차를 생각하면서 광화문과 김 포 여정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김포행 막차'의 시인 걸음걸이는 과연 우리 시대의 방황과 성숙한 지 성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 박철 시인은 …… 1960년 서울에서 출생,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87년 <창작과 비평>에 '김포' 외 1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등이 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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