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 (3)
나태주 시인의 산골마을 시골학교 생활 38년
시인 교장 선생님 오르간 연주에
아이들의 합창소리 울려 퍼지고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대숲 아래서 전문)
나태주 시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다. 참 평화스럽다. 대숲바람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한폭의 수채화이다. 이 시에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 어느 여교사와의 실연의 아픔이 배여 있다.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이었다.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달님만이 내 차지다". 외로운 가슴에 실비단 안개만 자욱하다. 세상이 다 나를 등지고 선 것만 같다. 물에 비친 달님만이 내 차지이다. 연인끼리 헤어진 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유행가 가사들이 죄다 이녘을 말한 것만 같던 그런 시절들이 있었지 않던가.
그러나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 아닌 것도 아닌/이 가을"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사랑의 실패는 절망의 극치라는데, "내 것만도 아닌 것도 아닌"이라는 역설, 참 기막힌 반전이다.
*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골 풍경을 노래하는 시인
시 곳곳에서 이처럼 연가풍 실루엣이 나부낀다.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70∼8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들에게 당시 주독자는 여고생들이었다. 지금 초등학교 학부모 세대. 그이를 찾아갔을 때도 문예반의 한 아이가 엄마가 사준 것이라며 그이의 에세이집을 들고 복도를 오갔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이의 시가 소극적, 여성 편향적 정서에 머물지는 않는다. 질그릇 같이 투박한 정서가 있다. 흙 내음이 풋풋하게 묻어난다.
한 사물이 작가들 펜대에 걸리면 거개 별의 별 이론에 의해 습관적으로 변용된다. 그러나 그이의 시에서 사물은 원형질이다. 필요이상의 기교가 없다. 정직한 묘사는 독자를 편안하게 하고 신뢰하게 한다. 그이의 시는 자연주의적이다. 목가풍 전원주의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목월풍이다. 누가 그랬던가, 자연은 영혼과 문학의 고향이라고.
자연의 대변인 나태주. 그이는 그렇게 자연과 그이의 삶을 일치시키며 긴 세월 서정시를 써왔다.
1945년 충남 서천 초현리 산골 외갓집에서 태어나, 친가인 막동리에서 성장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할머니에게 맡겨져 유년시절을 보냈다. 공주 사범학교 진학과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 시절 몇 년을 빼고는 거의 공주에서 살았다. 장학사 시절에 관료주의가 싫어 시골 학교를 택할 정도로,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골 정서가 유년에서 지금 환갑 문턱 에 이르기까지 저절로 배여 있었다.
그런 그이의 공주 상서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이기에 내내 마음이 편했다. 어릴 적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차창으로 스치는 저 들녘의 바람, 강물소리, 풀꽃, 아니 산천초목이 죄다 그이의 눈에 스치면 한 편의 서정시로 탄생하지 않았던가. 승용차 안에서 그이의 최근 시집과 산문집을 펼쳐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의 면면을 보라. 소나무, 풀잎, 상수리 나뭇잎, 나뭇결, 산꽃, 꽃대, 메꽃, 줄장미꽃, 무찔레꽃, 청보리, 다목솔 나무, 꽃덤불, 뻐꾸기, 꾀꼬리, 할미새, 석류나무, 정미소 뒷담길, 병아리 등.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 정겨운 모국어들이다.
그이를 등단시킨 사람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이다. 박목월 시인은 이후 그이의 시작을 지도했고 결혼식 주례도 맡았다. 박목월 선생은 당시 문단에 나온 그이를 일러 "한 시대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과 사명을 띠고 등장한 시인"라고 격찬했다. 그렇게 그이는 한국 문단에서 제2의 박목월이라는 평을 들으며 송수권 이성선 시인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서정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 교장실에서 글짓기반 수업하고, 아이들 길동무되어 시골길을 걷고
다시 승용차는 금강을 지나 꼬불꼬불 산모롱이 몇 굽이를 돌아 계룡산 줄기인 마티재에 이른다. 그이의 시집 산촌엽서에 실린 가을, 마티재라는 시가 떠올랐다. "산 너머, 산 너머란 말 속에는/그리움이 살고 있다/그 그리움을 따라가다 보면/아리따운 사람, 고운 마을도/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살기 힘들어 가슴 답답한 날/다리 팍팍한 날은 부디/산 너머, 산 너머란 말을 외우자"라는......
그래, 가슴 답답한 날에는 산 너머 산 너머를 외우자. 조금만 조금만 견디면 그 너머에 희망이 있을 터. 삶이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저 산너머에 아리따운 사람, 고운 마을이 있다. 그런 그리움에 살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으로 살자. 그렇다. 삶이란, 산너머 희망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 너머 신작로를 달리다 보니 미루나무 몇 그루가 마중 나와 선 상서초등학교. 2층 교장실에 들어서자 사랑방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모여 운영회의나 하던 그런 교장실이 아니었다. 상서 초등학교 교장 나태주라는 그런 명패도 없다. 그저 아담한 집필실 같다. 책상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와 교직원이 놔두고 간 결재판 그리고 시집 등 여러 문예지와 아이들이 글짓기한 원고들로 수북했다. 집필 책상은 벽 쪽에 있었고, 그 벽에는 자작시와 손수 그린 데
생 몇 점이 걸려 있었다.
그이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느 날 사물을 그리며 시를 깊이 이해해 보고자 시작했던 그림 그리기가 이젠 프로급이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이녘도 모르게 아늑한 세계로 빠져든단다. 무아경, 꽃들과 함께 오솔길 길을 걷는 기분. 그이가 보물처럼 아끼는 게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이 고풍스런 오르간이다. 운동장 쪽으로 난 창가에 그 손 때 묻은 오르간이 있었다. 오르간을 연주하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머언 나라를 떠도는 느낌이란다. 때로는 바람에 떠도는 민들레 홀씨가 된 기분이다.
하기야, 오르간이란 것이 그렇지 않던가. 학예 발표회나 큰 행사 때마다 약방에 감초처럼 시골 학교 분위기를 자아냈
던 명물. 졸업식장에서 눈물 떨구게 하던, 전근가실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시간에 유난히 떠들던 아이들도 말없이 검은건반을 두들기는 선생님 연주에 흐느끼며 따라 불던, 해질녘 하교 길 자꾸만 돌아보는 창가에 쟁쟁히 맴돌고 있는 듯한 그 오르간 소리.
분명 특별한 악기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종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이 직접 작사한 산버찌 나무 아래를 합창했다. "산 버찌 나무 아래서 두 눈이 마주쳤다네∼ 산버찌 나무 아래서 두 손을 잡았다네∼지금은 어른된 나무 작은 아기 산버찌∼산버찌 나무아래서 울면서 헤어졌다네∼" 너무 맑은 울림에 눈물이 핑 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골 학교 음악 수업 광경이다. 퍽이나 깨끗한 서정의 울림이었다. 역시 그이는 천상 시골 선생님이요, 서정시인이다. 교장으로 부임한 이래 자원해서 합창반 노래지도와 문예반 학생들의 글짓기 수업을 교장실에서 지도하고 있단다. 이렇게 받은 시간외 수당은 하루에 3만원. 이 돈이 20여 만원 수준에 이르면 몇몇 안 되는 교직원과 마을 어른들과 어우러져 막걸리 파티를 한다고 한 교사가 귀뜸 해준다.
그이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린 편이다. 권위주의적 모습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그이이기에 학부모들을 자주 찾는 일은 이상할 일도 아니다. 또한 기꺼이 아이들의 길동무가 되어 들녘을 걷곤 한다. 그러다 보니 3학년 효상이처럼 1학년 때부터 급식비 한번도 내지 않는 녀석이지만 선생님 눈치 안보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녀석은 등교도 제일 늦게 하고 하교도 제일 늦게 한 녀석이다. 방과후에도 늘 빈 운동장에서 혼자 놀다가 제일 늦게 귀가한다. 말수가 없는 녀석이 교장 선생님과 마을길을 걸을 때면 날개를 단 듯 발길이 가벼워진단다.
개울가 들풀 이름을 척척 외우는 이 녀석을 볼 때,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지식이고 녀석의 능력이라고 믿는 그이. 녀석이 어느 날 쓰러진 일이 있었다. 품팔이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생활하며 두끼를 굶고 등교해 쓰러진 것. 이제 녀석은 든든한 교장선생님을 친구로 맞았으니 결코 희망을 잃지 않겠지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던 그이.
* 때로는 쓸쓸하고 애닯게 걸어온 시골 시인 교사의 오솔길
누구보다 농촌의 가난, 가난의 아픔을 잘 안다. 그래서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외할머니에 의해 성장한 저학년 아이들 가운데 간혹 여 선생님의 젖가슴을 만지던 광경을 보고 정에 굶주린 탓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그이. 이렇듯 그이는 교원들의 입지나 권위가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밥벌이로 선택한 교직이었지만 시 쓰며 교직을 허락하여 주고 시골에 오래 머물도록 해준 신께 그저 고마울 뿐이죠. 초등학교 교사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녀야 해요. 생각도 행동도 초등학교 교사다워야 해요. 갓 입학한 저학년의 경우 교감 때는 고감 선생님, 교장 때는 고장 선생님, 아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 철부지들이 어떻게 부르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도 있잖아요"
참 포근하고 포용력 있는 시골 교장선생님 모습이다. 그이가 최근 펴낸 산문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판사, 검사, 도지사, 교회 집사에는 일 사(事)가 붙는다. 변호사, 설계사, 연구사, 장학사 같은 이름에는 선비 사(士)가 붙는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스승 사(師)가 붙는다. 스승사가 붙는 이름에는 교사 외에도 의사, 간호사, 이발사, 미용사, 요리사 등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정신이나 육체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것.
교직 38년. 그이는 열 아홉 나이 때부터 외진 산골길을 걸어왔다. 돌이켜보면 멀리 흰 구름 아스라이 스치는 길고 긴 들길이었다. 시골교사로서 시골시인으로서 솔직히 때로는 쓸쓸했고 애달펐다. 그 때마다 풀잎과 꽃잎에 눈길을 주며 벗삼아 걸어왔다. "풀잎 속엔 가느다란 길이 있어/그 길을 따라서 가면/오두막집/오두막집은 황금빛/오늘이 빛부신 서양받이/차마 굴뚝도 세우지 못한" 그렇게 풀잎 속 작은 길을 걸어왔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민주 항쟁이 불붙던 80년대, 누구나 한번쯤 서정시의 이탈 유혹에 걸려들거나 휩쓸릴 때, 그는 외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골 학교에 소리 없이 나부끼는 깃발처럼 자연에서 햇살을 모으고 흙 내음을 퍼다가 독자들에게 부단히 내보냈을 뿐이다. 절반 이상의 시집이 이 때 나왔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터. 이런 면에서 참 고집스런 시인이다. 언젠가 그이는 시인들 모임에서 "충청도가 말만 느리지 행동도 느린 것은 아니다"며 모임에 제일 먼저 왔음을 우스개 소리로 한 적을 보았다. 어쨌든 혹자는 기술문명이 절정을 이룬 20세기말에 굳이 서정시가 필요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실지 제대로 된 서정시인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럴수록 삶의 진정성을 위해 전통적 향토적 서정시가 필요하다는 그이.
그렇게 변함없이 자연주의적인 시심을 꽉 보듬은 채 예까지 왔다. 그리고 그 길을 가고 있다. "다른 아이들 모두 서커스 구경 갈 때/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이처럼/모로 돌아가서 까치집을 바라보는/늙은 화가처럼/신도들한테 따돌림당한/시골 목사처럼."(서정시인 전문)
* "대숲바람 소리 듣고 싶거든 막동리로 오시오"
아내는 월급 봉투를 받으면 제일 먼저 쌀과 땔감을 사둘 정도로 지독한 가난과도 싸우며 이 길을 왔다. 늘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그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물질로는 가난했지만 늘 자연이란 친구를 옆에 두고 산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그이. 그이가 자연과 눈 높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보는 낙천성, 나 아닌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자연 친화력, 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력 그리고 겸허함 때문일 게다. 그래서 자연도 친숙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섰을 터.
그렇게 우리 시대 타고난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시인 나태주. 그이가 맑고 밝은 세계에서 채취한 시어들 속에서 독자들은 잊혀진 인간의 고향, 자연의 질서, 생명과 가족의 존귀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해 빼어난 절창을 보인 시집이 막동리 소묘(幕洞里 素描 이다. 고향을 무대로 총
185편의 4행시가 수록돼 있는 이 시집은, 시종 향토와 자연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시인의 눈이기에 산골의 곱고 아름다운 구석구석의 모습이 마치 동영상처럼 펼쳐진다. 이 시집은 흙의 문학상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뻐꾸기 한 울음에 더욱 푸르러지는 산,
뻐꾸기 또 한 울음에 또 한번 깊어지는 산,
뻗어가는 댕댕이 멍가넝쿨 와르르
산은 무너져서 품속으로 핏줄 속으로 달겨든다.
(막동리 소묘 23)
솔바람 소리 듣고 싶거든, 막동리로 오시오,
대숲바람 소리 듣고 싶거든 막동리로 오시오,
솔바람 소리 그 비릿한 목숨의 살향기.
대숲바람 소리 그 나긋나긋 뜨거워오는 또 하나의 사랑.
(막동리 소묘 117)
무심히 흐르는 금강처럼 비우고 비우며 온 시인의 뒤안길....지난한 세월이었다. 금강 빈 나룻배에 앉아 시상을 가다듬던 그이. 어느덧 강물처럼 흘러온 세월 앞에 서있다. 무심한 강물이여....누구보다 욕심 없이 살아온 그이였지만, 시 빈손의 노래에서 다시 "끝내 빈손이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더 비울 수 없을 때까지 비우고 버림으로써 얻은 空卽生.
그렇게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자연주의자 나태주. 방생이라는 시에서도 "강가에 나와 내가 나를/떠나보낸다/이젠 가봐/……//그동안 힘들었지?/이젠 나를 떠나도 좋아/저것, 저 물고기"라고 노래한다. 강물·물고기·시인은 하나이다. 어느 날 한 여름 매미울음소리가 마지막 남은 제 목숨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울어 제낀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눈물 많은 시인 나태주.
그렇게 매미도 인간도 본디 그립고 외로워하며 사는 것.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그런 인간의 목숨이 백 년을 가랴 천년을 가랴. 하여, 우리 비우면서 이 길을 가자 한다. 생명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은 듯 자꾸 뒤척이며 흐르는 저 강물처럼 무심히 무심히 흘러가자 한다.
비단강이 비단강임은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백 년을 가는
사람 목숨이 어디 있으며
오십 년을 가는
사람 사랑이 어디 있으랴……
오늘도 나는
강 가를 지나며
되뇌어 봅니다.
(비단강1 전문)
■여행 메모
▶볼거리
·계룡산: 수려한 돌과 물이 어우러진 명산으로 갑사, 동학사, 신원사가 있다.(관리사무소 / 042-825-3002∼3)
·칠갑산: 울창한 천연림으로 등산로가 잘 개발되어 있으며 장곡사가 있다.(관리사무소 /041-940-2530)
·마곡사: 태화산 기슭, 삼태극의 골짜기에 세워진 천년고찰로 김구선생이 심은 향나무가 서있다.(관리사무소 / 041-841-6362)
·계룡산 도예촌: 대전에서 동학사 입구를 스쳐 5백미터 쯤 와서 첫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 전하여 계룡산 방향으로 들어가 길이 막힌 곳에 위치함.(041-857-1335)
·금강: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이천리를 흘러온 금강은 안개 자욱하고 봉황산에 아침해가 밝을 때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룬다.
·국립공주박물관: 041-854-2205, 월요일은 휴관, 세 그루의 금송(金松)이 볼만하다.
·무령왕릉: 공주 시내에서 22번 버스와 50번, 25번 버스가 수시 운행된다.(관리사무소 /041-856-0331)
·공산성: 백제 왕궁지로 추정되는 공산성은 금강변에 있으며 여러 개의 누각과 유적을 품고 있다. 영은사란 절도 있다.
·곰나루: 곰 아가씨 전설이 애달픈 곰나루는 무령왕릉을 지나 금강변 솔밭 속에 있다.
▶먹거리
·산채나물정식(수정식당, 갑사 아래, 041-857-5164)
·버섯빈대떡과 능이버섯회(태화식당, 마곡사 아래, 041-841-8020)
·멧돼지불고기(삼일가든, 우금치, 041-854-9927)
·우리밀칼국수(마당깊은집, 고가네칼국수/중동 제민천변, 041-858-3033)
·따로국밥(새이학, 공산성 금강변, 041-854-2030)
·야채돌쌈밥(고마나루돌쌈밥, 공산성 서문광장 옆, 041-857-9999)
·장작불오리진흙구이(예다원, 산성동미나리깡, 041-856-6705)
·손두부, 순두부국밥(고박사네손두부집, 이인면 소재지, 041-857-4075)
▶가는 길
·계룡산: ①동학사: 버스편(서울-고속버스, 직행버스로 공주행-공주에서 시내버스)
기차편(서울·부산-대전역 하차-동학사행 좌석버스)
②갑사: 버스편(서울-고속버스, 직행버스로 공주행-공주에서 시내버스)
기차편(서울·부산-천안역 하차(또는 대전역 하차)-공주행 직행버스-공주서 시내버스)
③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유성IC- 32번 국도-동학사, 공주방면 23번 국도 갑사)
천안에서 공주로 오는 길도 새로이 뚫렸음
·칠갑산: 버스편(서울-직행버스로 청양행- 청양서 시내버스 / 대전 서부터미날 청양행-청양서 시내버스)
승용차: 경부도로로- 천안IC- 예산- 청양 / 대전-공주 36번 국도-대치터널-칠갑산 장곡사)
■ 나태주 시인은 ……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공주사범학교·방송통신대·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고,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굴뚝각시, 추억이 손짓하거든,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산촌엽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절망, 그 검은 꽃송이, 추억이 말하게 하라,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쓸쓸한 서정시인,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등이 있다. 흙의 문학상·충청남도 문화상·현대불교문학상·박용래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공주 상서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며 전국 지역문학인 공동체인 지역문학인회 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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