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⑨] 정호승作, '슬픔이 기쁨에게'
-외롭고 쓸쓸한 날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며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전문)
정호승 시인의 이 시는 79년에 나온 그이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자취방에서 이 시 테이프를 틀어 놓고 몇 번씩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매 행마다 "주겠다"로 끝나던 시. 마지막 연에서 "걷겠다",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던. 힘없는 백성의 아들로 두 주먹 불끈불끈 쥐게 하던. 그리고 누군가에게 달려들며 나도 너에게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싶던.
가난했기에 더욱 절절하게 와 닿던 슬픔의 가락들. 시인은 독재정권 하에서 이 시를 썼고 나는 광주항쟁을 겪던 고교시절에 기다림의 슬픔으로 운명적으로 조우한 셈. 촌놈이 가출해 신문배달 하며 가까스로 입에 풀칠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업그레이드한 생계가 구로공단역 포장마차. 그 시절 포장마차 이름은 "시와 술잔". 촛불 켜 놓고 시를 틀어 놓으면 어른들은 청승맞다고 돌아섰다.
그래도 단골들이 있었는데, 학교 앞 뽑기 장사, 음악다방 DJ, 새벽녘 영업을 마친 나이트클럽 웨이터. 그들만이 죽치고 앉아 그들만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쏟아내던 포장마차.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올라왔을 터. 주절주절 세상 이야기와 동행하며 나도 소주잔 들이켰다.
초등학교 조무래기들에게 뽑기를 팔아 벌어온 50원짜리 동전 계산하려 들어온 아저씨는 늘 소주 반병을 시켰다. 남은 반병은 내 차지. 아저씨가 내일 와서 찾을 새로운 병의 반병을 위하여 나는 그 명분으로 남은 반병을 들이켰다. 꽃다운 나이에 뮤직박스에서 시집 밑천 벌고 있다던 음악 다방 그녀.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 못 나누고 공단을 떠났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슬픔이 기쁨에게 가는 여정 속의 슬픔이었다.
이 시에서 슬픔은 민중의 인격을 옹호하면서 세상을 신뢰하는 정신이다. 슬픔도 슬픔 나름인 것. 냉철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슬픔은 절망일 뿐일 터. 개인의 상처에서 역사의 생채기까지 상징하는 이 슬픔의 노래가 시대가 변했어도 우리네 마음속에 물결쳐 오는 것은 왜 일까.
슬픔은 사랑 할만 한 것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다 가기 전에 우리는 슬픔을 마음껏 사랑해 볼 일이다. 귤 파는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종로통에서 기타 쳐주고 술 한잔 얻어먹던, 충무로에서 섹스폰 불고 막걸리 한 사발 얻어 마시던 저녁 무렵 할아버지의 슬픔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눈물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노숙자가 덮던 라면박스가 포근해 보일 때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이 진정한 아름다운 것들로 빛날 때가 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우리의 슬픔으로 가슴 내려놓고 손길 뻗어줄 때 말이다. 슬퍼하는 친구에게 술잔 건네주며 함께 슬퍼하는 슬픔의 얼굴은 아름답다.
그런 세상의 슬픔을 위하여 오늘 저녁 길 포장마차에서 술잔 부딪쳐 보면 어떠리. 슬픔의 한잔, 기다림의 한잔, 아름다움의 한잔을.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보면 어떠리. 괜스레 쓸쓸한 날 당당히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 보면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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