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시인, "병상의 아내가 죽으면 절필할 것"
- 백혈병 앓은 아내 곁의 가난한 시인의 눈물과 통곡
송수권 시인. 그가 백혈병으로 시름하는 아내에게 피도 돈도 될 수 없는 '가난한 시인'이라
는 현실 앞에서 결국은 아내가 죽으면 절필을 선언하겠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현재 섬
진강변 염창마을 언덕배기 집필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집필실은 아내가 보험회사 다니며
모아준 돈으로 전세로 마련한 것이다.
그는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강의를 끝나면 바로 이 집필실에 와서 시작활동을 해왔다. 감나
무도 기르고 밤나무도 기르고 배추밭 잡초를 뽑아 텃밭을 일구어 자연과 함께 혼자 생활을
해왔다. 돈 벌면 이 집필실을 당신 것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아내는 지금 수술을 앞둔
채 병마와 사투중이다. 그래서 금요일이면 상경해 주말까지 아내의 병간호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 나온 시인"과 "수박장사 하던 시인의 아내"
그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 집필실 마당에 주렁주렁 열린 단감나무에 올라가 가을볕에 물든
단감을 따고 있었다. "햇과일이 나오면 그렇게도 아내가 좋아했던 단감인데...아내와 함께 다
음에 집을 한 채 사면 감나무부터 심자고 했는데... 이 단감처럼 붉은 피가 아내의 혈소판에
서 생성되어 AB형 피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에게 아내는 여느 아낙들보다도 각별했다. 송 시인은 어릴 적 찢어진 가난 탓에 자살한
동생을 생각하며 '산문에 기대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집필실 바로 건너편 저 지리산에
서 쓴 작품이다. 그도 지긋지긋한 가난을 못 견디고 동생처럼 서울 여인숙에서 자살을 생각
한 적이 있었다. 죽기 전에 백지에 쓴 몇 작품을 잡지사로 보내놓고 차마 죽지 못한 채 알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전국을 떠돌았다. 그 작품은 원고지에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사위
원에 의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그 원고를 뒤늦게 발견한 잡지사 주간이 본심에 올려 이
잡지사가 발굴한 최초의 시인이 되었던 송수권 시인.
그래서 그를 일러 "쓰레기통에서 나온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시인은
순천사범을 나와 섬과 산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저마다 도회지로 나가려하는 마당에 그
는 교육청을 찾아다니며 벽지 학교를 자청했던 상록수 교사였다. 주말이면 서울 남대문 시
장을 찾아 등잔을 구입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낙도며 산골 아이들을 가르치던 진정한 사
표였다. 그런 생활이 연속되면서 아내는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수박을 키우고,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 그 수박을 이고 나르며 시인의 생계를 도맡았다.
생활고는 아내가 지탱, 시만 써서 국립대 교수 1호가 된 시인
지속된 생활고 탓에 아내는 다시 보험회사에 나갔고 28년 동안 빌붙어 견뎌준 탓에 시에 전
념해왔던 송시인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교수가 되었다. 박사학위는커녕 석사학위
도 없이 전문학교(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만 나온 그를 교수 만든 것은 생활고를 지탱해준
아내의 덕이라는데, 지금 그의 아내는 병상에 쓰러져 있다.
그가 교수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아내는 "여보! 시 쓰면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그렇게
평생 타박만 했는데 詩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라고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송시인은 교
수 특별전형에서 정식발령 통지서를 받았는데, 우리 나라에서 학위 없는 시인으로 국립 대
학교 교수가 된 우일한 시인 송수권. 해방 후 시 써서 국립대학교 교수가 된 1호 시인인 그
에게 아내는 "그게, 다 나의 공이 아니라, 당신 노력 때문이에요.... 당신을 뽑아준 총장님께
인사나 잘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나 친척들이 골수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때마
다 아내는 "2년 후면 송 시인도 정년퇴직인데, 송 시인 거러지 되는 꼴 어떻게 봐요. 그게 1
억이 넘는다는데....."라고 생떼를 썼다.
집필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송시인은 바로 아내를 찾아 서울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시
집간 큰딸이 병간호를 하고 있었는데 딸의 친구가 금년 9월 고등학교 1학년 학력평가 문제
지(수능 대비 전국 모의고사)를 들고 와 송시인의 등단작 '산문에 기대어'가 언어영역 문제
로 출제되었다고 자랑했다. 그 시험문제를 들고 자랑하는 딸의 친구에게 시인의 아내는 이
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알았니? 은경이 아빠 詩, '지리산 뻐꾹새'와 '여승'도 진작 수능시
험에 출제되어 나갔어야!....난 이제 죽어도 한은 없단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죄가 많지만 순결한 아내의 피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눈물자국을 훔치며 병실 밖으로 나온 송시인은 그랬다.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난 나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지를 너무나 잘 알아....내 아내가 죽으면 나는 다시 시를 쓰지 않겠
다. 시란 피 한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어....." 교통사고로 인해 과다 출혈을 보이며 광주와
서울 병원으로 이송되기를 거듭했던 시인의 아내는 의경들이 달려와 피를 주면서 그 피로
연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한번의 수혈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 시인의 가슴을 쥐어짜는 것이다. 병 문환
온 문인들마다 골수이식까지는 아직도 피가 필요한데 하느님도 정말 무심하다고 가슴을 쳤
다. 그가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것도 바로 그것이 언어로 하는 말장난보다 '진실'이라
는 것, 그 진실이 언어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혼잣말로 내뱉었다. "이 짐승스러운 시인의 피를 저당잡고 죽게 할 일이지, 왜 하
필 아내인가? 나에겐 죄가 많지만 순결한 아내의 피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나를 살려두고
만일에 아내가 죽는다면 난 다시는 부질없는 詩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도 시를 쓴다면
난 도끼로 나의 손가락을 찍어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아내의 병상으로 다가가 굳게 이
를 악물던 시인.
아내에게 바치는 시, 딸이 낭송하자 병실 울음바다
그의 아내는 가족들에게 부담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었을까? 마스크를 쓴 채 연신 눈물만 흘리다가 잠이 들었고 그 곁의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써서 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잠든 엄마 앞에서 아빠가 쓴 시를 낭송하는 딸의 낭송
시를 들으며 병실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蓮葉에게
송 수 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가진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고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가치마늘 같던 발아!
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 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