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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이의 슬픈 여름나기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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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라고 가슴 부풀어 있던 균우에게
요즈음은 참 지옥 같은 느낌일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침자습한다고 제일 먼저 학교갔던 녀석
돌아오면 정해진 코스로 점심을 먹고(지정 분식집->친구 집->결국은 집에서 혼자 먹거나 뛰어 넘는다) 학원 갔다 오면 아침에 헤어진 엄마 혹은
아빠와 조우했던 녀석
그래도 시간 가는줄 몰랐을 것이다
아빠가 오면 축구해주고
엄마가 오면 아파트 숲에서 매미를 잡으러 가주니...

그러나 방학으로 녀석의 사정은 달라졌다
학교로 갈 수도 없구
아침부터 친구집으로 처들어갈 수도 없는 일
방학계획표에 따라 7시에 일어나는 일은
8시까지 늦잠을 자는 것으로 후퇴하고
머리깜끼 대신 머리에 물을 발라 깜았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에 젖는다

개구장이 녀석을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동국대 야외 수영장엘 갔다
물놀이 기구며 매미채를 들고 동국대로 향했다
의외로 매미가 많았다
일단 다섯마리의 매미를 잡아 차에 놔두고 수영장으로 갔다

정확히 3시간 동안 물놀이를 했다
우동도 먹고 김밥도 먹고 홧바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다이빙도 하고 풀장에서 배구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적당히 지칠 무렵 녀석은 스스로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승용차 안에 있던 매미들이 죽어 있었다
에어콘이 꺼지자 땡볕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균우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숲으로 가서 매미를 묻기 시작했다
매미를 다시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녀석은 세 마리만 다시 잡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문을 다 열고 에어콘을 3단으로 올리라고 했다
녀석은 즐거웠던 수영장의 기억이 일순간에 매미죽음으로 혼란스렀던 모양이다
솔직히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은 19층 복도에 서서 며칠 전 내가 손바박에 놓고
날려보내던 매미방생처럼 세 마리를 하늘가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이 매미가 그 숲을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일기를 쓰는 녀석
오늘의 과정을 그림으로 그렸다
수영장과 동국대 숲을 그렸다
녀석이 매미무덤을 그리지 않는 것은 나에겐 순간의 기쁨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아내와 나는 다시 출근하는 길
녀석은 매미처럼 아파트에 갇혔다

마음이 아파 아내 보다 먼저 가라 했다
점심은 친구집(녀석 친구 어머니에게 매달 식비를 지불하고 챙기게 함) 그렇지 않으면 야후분식집에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은 둘이 식탁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복도를 나서는 순간
탁~하는 소리가 가슴을 철렁였다
엄마 아빠가 사라진 순간
녀석은 문단속부터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울텐데....핸드폰으로 더우면 에어컨을 켜라고 했다
창문은 꼭 열어두고 켤 것을 강조했다

이렇게 8월까지 가야할 균우의 여름방학이 슬퍼졌다
내 서울 친구들은 고향집 완도 앞바다로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맞벌이 인생에다가 멀미를 자주 앓는 녀석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댁은 내키지 않는 먼 거리가 되어 버렸다

다음주에는 무의도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이면서 갯벌과 조개줍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섬이다
그 다음주에는 아내와 균우는 청학동 계곡에서 물소리와 물장구를 치게 했다
그러면 여름방학 절반은 갈 수 있을래나

어리시절 하면, 시골 분교 사택의 아름다운 숲속이나 강 그리고 바다의 추억 뿐인 나에게
요즈음 균우의 서울나기 녀석의 여름나기가 안타깝기만 하다
아니 녀석의 모습이 생각할 수록 참으로 슬퍼진다

이런 모습이 서울의 모든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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