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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가는 기차여행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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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괜스레 마음 설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를 일입니다

6일 오후 비 내리는 서울역에서
남녘행 호남선에 몸을 맡겼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릴 적 화롯불 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큰 고모 작은 고모 모여 앉아 군밤 혹은 군고구마를 굽던
장작불 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했드랬습니다

비 오는 장면은 늘 저에게 뜨거운 그 무엇을 전이시켜 줍니다
물과 불은 극을 이루지만
극과 극은 늘 접점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법이니까요

신열의 땀방울이 유리창에 내릴 때
긴 시간 내 지난 날을 돌이켜 보게 되고
내가 찾아 떠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한번 더 깊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스치는 바람도 스쳐 지나가는 강물소리도
모두가 우연이 아닌 언젠가 한번 부딪쳤을
삶의 편린이나 언저리처럼 다가섭니다
그것은 전생이던 현생이던 어떤 인연 탓이 아니겠습니까?

말없는 강물이나 호수 그리고 나부끼는 가로수길에서도
따스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집중호우를 만나며
좁은 우산을 받쳐들고 길 위에 떠도는 빗방울처럼 한 점 한 점
낯선 거리에 내 온기를 방황 혹은 사색의 이름으로 찍는 다는 것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옹골차게 물채우기 같은 삶
그런 삶을 반추해 보는 것이 여행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주에서 다시 대전 청주로 버스를 갈아타며
낯선 버스터미날을 걸어 비오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저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
어디를 가나 나그네 걸음걸이를 잡아 끌어댕겨 주는
그 무슨 포르포즈 같은 침묵의 언어들이 나선처럼 교차하고 있다는 것

한번쯤 훌쩍 떠나볼 필요성을 이런 대목에서 느낍니다
이내 차오르는 대청댐 그리고 문의마을
수몰민의 아픔도 들려오는 듯 하고 어렵지만 한잔 술과 따스한 가족애를 느끼게 했던 초가의 사랑채 혹은 주막집의 흔적들....
먼발치 현암사의 고즈넉한 좌불상의 훈기

그런가 하면 청주시 상당산성 그리고 이름모를 호수가에 은사시나무 그리고 창포의 흔들림...
그 속에서 단오날 아낙네들 소곤댐도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비가 호수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마음을 진종일 비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더 비울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
한잔 술에 얼큰히 취해
뻣뻣한 관념의 삶 미지근한 세상을 뒤집어 본다는 것
지칠줄 모르고 달려오는 기차 속으로 들어 앉아
다시 현실 속으로 숨가쁘게 달려간다는 것
귀속본능을 다시금 느끼면서
하릴수 없는 삶 어찌하지 못하는 삶이지만
한동안 지난 온 길을 추억의 이름으로 더듬어볼 수 있다는 것
여행에서 얻은 소득 혹은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매듭짓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다는 생각에도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이녁에 대한 반성과 겸허함의 여백을 더 크게 만들 필요충분조건인 듯 합니다

그렇게 남녘여행은
짧지만 진하게 전신에 피로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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