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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아침 사색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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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아침      
창가에 서있습니다
아침부터 빗줄기가 제법입니다

2박3일 짧지만 옹골찬 여행이었습니다
빛고을에서 방송을 마치고
모처럼 스탭들과 한잔 걸치면서
고향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드랬습니다
4강 때는 5.18 영령들에게 누가 되면 어떨까 싶어
거개 시민들이 마음을 조아렸다고 하더군요
하긴 그 영령들의 힘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4강신화가
가능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제가 등대였음으로
아니운서 작가들은 모두 등대를 찾아간 이야기와
생방송의 시간상 진행하지 못한 아쉬운 구석들을 털어놓더군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잎새주에 알탕이었습니다

순천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었음으로
더 지체 못하고 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를 탓습니다
갈대밭 구경은 밤이 되어 포기하고
친구와 바로 섬진강으로 갔습니다
송수권 시인과 잠 못 이루는 대화에 한잔씩을 비우고
설익은 눈커풀을 털며 낚시대를 둘러매고 아침 강으로 향했습니다

강을 따라 뭉개구름들이 흘러가는 섬진강
모래톱에서 여섯 개의 낚시대를 거치대에 걸어놓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때 낚시대가 흔들립니다
큰 게 입질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숭어였습니다
다른 낚시대에는 손바닥만한 은어가 걸려 있었습니다
강 건너편에서는 포풀러 잎들이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그들은 낚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을 터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노닐러 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미안하게도 회를 떠서 소주를 깠습니다
그 맛이 죽여주었습니다
하동포구와 만나는 섬진강에는 민물고기에서부터
바다 물고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어느덧 또 다음 일정을 따라 움직여야 할 시간

강가의 유유자적에 빠져 있는 시간에
이미 내 어깨쭉지며 등허리는 순창 고추장처럼 익어 있었습니다
목포로 가는 내 등짝은 뜨겁기만 했습니다
목포에서 밤새 섬 학자와 섬과 등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분은 방송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관점의 섬을 이야기하다가
문학적 시각의 등대 이야기를 들으니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등대는 그리움 외로움의 상징이지만
육지의 동경 대상이지만
찾아가면 시벤트 기둥에 수은등 뿐이지요

그러나 등대는 왜 그 절벽 위에 서있어야 하는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며 1백년의 세월을
그 자리에서 절대고독으로 가슴을 채우며 서있는지
정서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오늘부터 저 등대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시작해봅시다

목포에서 다음날 아침 압해도 라는 섬으로 갔습니다
홀로 부두를 거닐었습니다
수많은 물결들이 저마다 인연을 맺어
한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인연 속에 섬은 변함없이 뜨거워지고 수많은 식물과 새떼를 키우며
홀로 물결치고 있는 것입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 온몸이 뜨거워졌습니다
약국에 가니 화상이라고 했습니다
약을 바르면서
갯물이 온몸에 튀겨옴을 느꼈습니다
시인의 집필실에 남겨두고 온 몇마리의 숭어 눈망울이
뜨겁게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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