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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가을과 오일장 풍경

섬과 등대여행/섬사람들

by 한방울 2005. 9. 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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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가을은 나를 뒤돌아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별도 절망도 슬픔도 낙엽 지는 그늘 아래서는 잊혀지기 위한, 잊어버리기 위한, 그리고 버리고 비우기에 명분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낙엽의 계절이다.


낙엽은 허공에서 수없는 방황을 하다가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비에 젖어 눈발에 젖어 썩어갈 것이다. 그 썩어가는 순간이야말로 마지막 잊혀지는 순간이리라. 그러나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구초심이라. 그렇게 찾아가 드러누운 자리는 그가 애당초 떠났던  나무의 밑뿌리이고 보면 낙엽은 온몸으로 새로운 봄날의 새잎을 꿈꾸고 있는 게다.


가을이다. 가을이 외롭지만 않는 것은 낙엽 지는 시간만큼 긴긴 여름날에 땀 흘린 옥토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비옥한 땅이든 척박한 땅이든 농부들은 그 땅심을 읽어 열매를 위하여 힘껏 달려온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온 날 만큼 지금 이 시간은 아름다운 순간이리라.

      

그런 가을의 중심에 시골 오일장 풍경이 있다. 주말에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강화도 오일장을 찾았다. 오일장이 궁금하다는 녀석의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컴퓨터에 빠져 살고 가족간 대화가 줄어드는 시기에 녀석의 궁금증을 풀어준답시고 옛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줄 참이었다.


김포평야를 가로질러 강화도로 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 구절을 읊조리게 했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오일장이야말로 지나간 삶이며 역사의 파노라마를 되살릴 수 있는 아름다운 삶터이다. 잊혀져가는 것들을 마주하며 재현하여 이를 아들에게 보여주기에 쉽게 설명하고 함께 호흡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빠와 엄마의 살아온 길과 그 길에 누워 있는 추억까지도 밭이랑 갈 듯 되새김질시켜 줄 수 있는 곳이다.


코스모스가 유난히 아름답고 평화롭고 출렁이는 모습에 우리는 웃음과 행복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가을은 더욱 풍성해져 있었다.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가 바로 저런 평화롭고 그윽한 시골의 가을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 손뼉 치는 소리처럼 나뭇잎들이 나부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나뭇잎들이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혹은 못 다한 사연을 적어 놓은 그 시절 그 친구들이며 이웃들의 엽서처럼 다가섰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뒷산의 가을 잎들이 죄다 흑백사진으로 다가선 것은 왜일까.


그렇게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나뭇잎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산등성이를 넘어서고 있는가 싶더니만 황금 들판도 노란 물결로 일렁여 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저 황금들판처럼 모든 농부들의 가슴에도 가을의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은 일이련만...


텃밭에는 달랑달랑 오이며 가지가 허공에서 흔들렸고 앞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햇살에 눈부셨다. 저 자연의 열매들이야말로 봄과 여름에 농부가 흘린 땀방울을 지켜보며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온 살붙이들인 셈이다. 


오일장 입구는 가을 추수철이라서인지 더욱 북적였고 분주한 손길과 발길이 이어졌다. 딱지 치는 아이들과 각종 채소와 어물전의 풍경은 그대로 지난 추억의 앨범을 한 장씩을 넘겨주기에 충분했다. 저 오일장 풍경과 어릴 적 시골 추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쪽바다 내 고향은 강화도처럼 들판과 바다가 함께 하는 곳이었다. 방학 때면 동구 밖에서 바다가 펼쳐지는 아랫마을까지 굴렁쇠를 굴리며 내려갔다가 다시 윗마을로 올라오면 팥을 겻들인 밀죽이 저녁상으로 기다렸다. 요즈음 같으면 칼국수에 팥을 더한 것이다. 그 때는 밀밭이 유난히 많았다.


할머니는 “아가, 좀 쉬었다가 놀아라!” 할 정도로 흥건히 땀을 적시며 끼니를 잊을 정도로 노는 일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등목을 해주던 그 손길. 유년의 추억은 거개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추억이었다. 산을 몇 굽이 넘어서면서 지치면 쉬었다가 걷고 목이 타면 계곡 물을 동백 잎으로 떠서 마시면서 손주들이 사는 읍네 오일장을 찾았다.


할머니가 똬리 위 삼태기에 담아 온 것은 고구마 순, 부추, 순무 몇 개, 전어 몇 마리, 파 몇 단, 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그것으로 단팥빵과 사이다를 사오고 손떼 묻은 지폐를 손에 쥐어주고 돌아가시는 것이었다. 돌아간 자리에는 늘 할아버지가 매주 달여 보내는 한약이 있었다. 오랜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편식이 심한 손주를 위해 산에서 뜯고 말려 만든 할아버지의 정성이 우려낸 대병(큰 소주병)에 담긴 그 한약. 쓴 한약을 마시고 먹으라며 두고 간 것은 뻥튀기였다.


오일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풍경이 바로 공터에서 아저씨가 울려대는 뻥튀기 대포소리. 대부분 쌀과 옥수수를 가지고 나와 튀기지만 이따금 고구마가 등장하기도 한다. 절간이라고 해서 고구마를 잘게 썰어 말린 것을 가져다주면 이것을 튀겨주는 것이다. 요즈음 과자로 나와 있는 것은 단맛이 너무 배여 있지만 시골 쇠솥에 쪄서 햇살에 말린 고구마는 본래의 당질과 비타민 그리고 칼로리가 많아 조무래기들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간식으로 먹곤 했다.


뚝딱, 뚝딱...일정한 리듬을 타고 달군 쇠를 내리치는 대장간 망치소리도 시끌벅적한 오일장에서 들려오는 유일한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달군 쇠의 불빛과 적당히 뜨거워지면 치지직~ 소리를 내며 담금질되어 나오던 쇠붙이는 시골 사람들의 강인한 삶의 단면이 달구어져 있다.


성묘하러 가는 길의 그 낫, 밭일을 가는 할머니의 호미, 목선의 노를 젓던 버팀목이었던 노봉, 그리고 닻 등은 모두 오일장에서 다듬어져 주인장을 따라 귀가하던 것들이다. 오일장은 물건을 내다 팔기도 하지만 농사짓고 바다에 나가는 농촌 사람들의 수단이 되는 또 하나의 살붙이를 수술하거나 새로 장만해오는 통로였다.


한편으로 오일장은 시골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현장이기도 하다. 시골 농사의 결실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네 자식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누구네 집의 애경사가 무엇인지.... 텃밭에서 일군 채소이며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놓고 해가 지도록 기다리는 일이 지겹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매개로 하여 서로 마음 열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양푼에 밥을 비벼 나누어 먹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사는 일이 다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이는 낮술에 취해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신경림, ‘농무’)라며 한탄을 하기도 했고 전국의 오일장을 전전하며 몇 백 원의 이윤을 찾아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구구한 이야기도 슬프게 물결치기도 했다.


오일장 풍경은 그랬다. 때로 시든 배추 잎 같기도 하고 빛나는 붉은 사과 혹은 파닥이는 어물전 풍경으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재현하는 곳이다. 그 풍경 속에서 이승을 떠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과 조우하며 “지줄대는 실개천”처럼 질화로 옆에서 듣던 옛이야기를 떠 올리고 이를 다시 아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오일장에는 삶의 연속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 세월의 여울 속에서 그리움도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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