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그리는 새벽 닭울음 소리
박상건(시인)
원숭이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다고 느껴본 것은 올해가 처음입니다. 인간 세상이 고통에 찬 한해였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행운도 뒤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 괴테의 말처럼 행복은 때로 저절로 오는 운명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원숭이로 태어나 미안하다고 생각해본 것도 올해가 처음입니다.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아갈 때 나무 위를 건너다니며 땀방울에 젖은 먹이나 받아먹는 참 철없는 녀석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기껏 동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원숭이로 태어나 사람들의 喜怒哀樂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왔음에 더없는 기쁨과 영광을 느낍니다. 저희 원숭이학교 원장님도 원숭이 띠입니다. 원장님을 어머니라고도 부릅니다. 농사짓는 전형적인 시골 아낙입니다. 늘 총총걸음에 들판으로 나가 해질녘 바삐 돌아오는 일생을 사셨습니다. 사골 국물 우려내 자식들 밥상머리 챙기고 다 우려낸 뼈들은 가족 같은 동물을 챙겨줍니다. 모성애는 그런 것입니다. 어머니 몸은 도막난 사골 뼈처럼 야위어 원숭이학교 정문에 세워진 장승처럼 마음 편히 드러눕지 못하고 들판과 집을 오고가십니다.
그런 어머니는 휴머니즘의 상징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나침반입니다. 단맛 쓴맛 온몸으로 체험하여 세상사 뿌린 대로 거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였습니다. 텃밭 시금치도 배추도 밥벌이가 엉망이었습니다. 닭 장사 소 장사도 조류독감이니 광우병이니 난리법석을 떨면서 또다시 삽질을 해야 했습니다. 묻어야 할 어머니 무거운 짐은 묻지 못하고 단란한 가족들 웃음만 묻어야 했을 때 참으로 가슴은 미어질 듯 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외국 소가 젖을 출렁이며 넘어질 때마다 전 국민의 가슴이 철렁였고 애꿎은 우리 소들을 덩달아 묻어야 했을 때가 가장 슬펐다고 했습니다. 거대언론은 왜 그렇게 대책 없이 야단법석들이었는지. 그런 언론이 어머니의 가슴을 두 번 내리쳤을 터입니다. 원숭이가 슬퍼할 정도이니 어머님 가슴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인간사 참으로 복잡하고 때로 생각 밖의 결과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어머니 삶에서 곁눈질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사촌끼리도 때로 머리 띠 둘레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맞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화와 경쟁주의 산업화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그것이 단절될 때였습니다. 가지와 가지를 이어 달리며 사는 원숭이의 일생만은 인간세상에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인갑답게 사는 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릅니다. 휴머니즘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기뻐서 눈물 흘리고 슬프면 슬픈 대로 함께 눈물 흘립니다. 휴머니즘은 600년 전 권위주의에 질식되어 가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학자들은 1세기 건너 새로운 휴머니즘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 ‘뉴휴머니즘’. 세월이 흘러도 ‘인간다움’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농촌은 전통적으로 이런 ‘인간다움’을 자연이라는 대지에서 일구고 열매 맺는 터전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변해도 농촌은 마지막 보루로 인간이 돌아가야 원초적 고향입니다. ‘인간다움’과 ‘자연다움’이 동시에 살아 숨쉬는, 영원토록 그리워 할 곳이 농촌입니다. 그래서 농촌이 살아야 합니다.
원숭이는 탐욕의 동물입니다. 동물은 반사적인 탐욕을 바탕으로 하는 생존하는 반면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꺾이지 않으나 함께 일렁이는 삶을 추구합니다. 탐욕은 대립과 갈등의 씨앗입니다. 독일 속담에 “탐욕은 항상 밑 빠진 그릇 채우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깨진 항아리는 아픈 상처의 사금파리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농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입니다. 자연을 일구고 자연에서 결실을 맞으며 사는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휴머니즘과 자연주의의 향기가 어우러지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지금 비록 어려울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끝내 승리할 것입니다. 하늘에 의지하여 살아오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통한 유일한 판관은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마른 땅에 눈비 내리고 젖은 땅, 젖은 사람들 가슴에 햇살을 내어 말려줍니다.
잠시 슬픔을 너무 오래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늘은 생명을 축축하게 적셔줍니다. 독일 속담에 “승리한 자는 억울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혜는 곤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새로운 지혜의 줄기를 위해 땅을 다질 때입니다. 굳은 땅에 물이 괴인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산다는 것은 음미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음미되지 않은 삶은 보람이 없습니다. 원숭이들이 원숭이학교에서 지내는 일은 학습과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좀 더 인간다운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입니다. 인생은 하나의 학교이며 한권의 책입니다. 아무렇게나 넘기는 책장이 아니라 하루의 일생을 음미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하늘은 정직한 사람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정직은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정부와 농민이 ‘신뢰하는’ 새해 새날을 음미하면서 새 책장을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도 덩달아 뛰노는 결실의 들녘에서 나으리는 농부에게 막걸리 한 사발 건네고, 농부는 나으리 입에 맛깔스런 포기김치 찢어 넣어줄 수 있는 훈훈한 농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묵음김치처럼 주름진 한 해 삶들일랑 먼 훗날 밑거름으로 묻어두고 새해 새벽 닭 홰치는 소리를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닭은 예로부터 부부금술을 의미해 베게와 이불, 장롱에 많이 아로새겼습니다. 12지중 유일하게 날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이라고 부릅니다.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햇빛이 두려운 잡귀들이 줄행랑을 친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널뛰기는 잘하면서 차마 날지는 못했던 못난 원숭이와 함께 살아온 많은 분들에게 애닯고 무거운 단봇짐일랑 이제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여, 매일 알을 낳는 암탉처럼 희망찬 하루의 책장을 넘기며 닭울음소리와 함께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올 내내 조류독감 파문의 장본인이었던 닭이 우는 소리는 재기의 몸부림입니다. 그것은 농부들 새해 비상의 나래짓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새해는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길 빕니다. 그래서 내년 세밑 구판장에서는 씨암탉 한 마리 잡아놓고 막걸리잔 부딪치면서 숫눈발처럼 구수한 이야기꽃이 휘날렸으면 좋겠습니다. “잘 가거라~ 이 한 해여!”. 그렇게 당당하고 정겨운 농촌의 풍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농민신문 2004년 12월 28일자 특집판)
지리산 넘나드는 '시인 집배원' (0) | 2005.04.06 |
---|---|
삶을 담금질하는 대장간 망치소리 (0) | 2005.01.17 |
상처로 얼룩진 그루터기의 일생이여 (0) | 2004.12.27 |
낙동강변 복숭아 농부 이야기 (0) | 2004.10.06 |
임진강변에서 참외농사 짓는 시인 아줌마 (0) | 200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