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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사람들

섬과 등대여행/섬사람들

by 한방울 2005. 5. 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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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에서 97킬로미터 먼 바다의 섬

흑산도는 목포항에서 중국 방향으로 97킬로미터 해상에 떠 있는 섬이다. 전남 신안군에 소속된 비금도 도초도를 지나 망망대해를 한참동안 항해하다 보면 반갑게 마주치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목포항을 떠난 지 2시간 30분 정도. 흑산도는 다른 신안군 부속 섬과 따로 떨어져 먼 바다에서 출렁이는 섬이면서도 아이러닉하게도 신안군의 본섬이다. 가장 큰 섬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정작 신안군청을 목표에 위치하고 있다. 


먼 바다 흑산도이다 보니 바람 불어 발 묶이기 십상인데 도착한 다음날 역시 파도가 3~4미터 일어 풍랑주의보로 인해 뱃길이 묶였다. 일본 중국어선 할 것 없이 모든 선박들이 바람을 피해 흑산도항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국제항이 된 게 흑산도이다.


뱃길이 묶일 때 정박한 어선들의 모습을 보면 섬사람들의 공동체문화를 읽을 수 있다. 11개의 유인도와 8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흑산도는 섬들이 서로 방풍림 역할을 한다. 활엽수가 유난히 많고 물길 어귀마다 섬들이 스스로 조류를 막아준다. 정박한 배들 역시 바람과 큰 물결을 피해 이웃선박과 맞대어 밧줄을 묶고 서로 의지한다. 힘들 때마다 서로 어깨동무하는 섬사람들의 철학은 그렇게 자연과 함께 해왔을 터이다.


주의보가 내리면 뱃사람들은 집이나 배 안에서 그물을 손질하며 출항을 준비한다. 남서해 최남단 섬 흑산도는 26킬로미터 지점에 마지막 섬 홍도를 거느리며 목포와 홍도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어미 섬이다. 산세와 물빛이 너무 푸르다 못해 짙푸르게 검은 색을 띠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흑산도. 바다가 유난히 깊어 검고 해안 숲들도 검푸른 윤기를 자랑하며 흑산도가 섬 전체가 왜 다도해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지를 실감케 한다. 흑산도 의 모든 바다와 섬은 어업전진기지이기도 하다.


푸르다 못해 너무 깊고 검붉다 하여 ‘흑산도’

여객터미널이 있는 예리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섬을 둘러보았다. 선착장 근처 진리 마을에는 초령목이 철봉 받침대로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뭇가지를 꺾어 제를 지내면 귀신을 쫒고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에 관광객들이 수없이 가지를 꺾는 바람에 나무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산길을 굽어 오르자 장보고가 주민들과 함께 지은 성곽이 보였다. 흑산도는 신석기시대에서부터 생겼다고 전하나 실제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후 당나라와 교역하는 중간 지점으로 삼은 성곽이다. 이곳에서부터 상라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강원도 미시령 고갯길처럼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했다. 열두 구비의 산길을 넘어가는 데 다 올라서 내려다보는 흑산도 앞바다와 올망졸망한 무인도들은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그 바다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고갯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흑산 앞바다 그리고 횡섬, 가도, 영산도 그리고 뒤로는 홍도 쪽으로 펼쳐진 망덕도, 장도, 쥐머리섬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먼 바다 흑산도가 결코 외롭지 않게 푸른 바다에 출렁이고 있음이었다. 전망대 아래 동백꽃이 웃음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 옆에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늘 바다에 나가 살아야했던 남정네들. 낭군을 기다리는 낭자의 가슴은 늘 검은 빛 흑산도처럼 검게 타 버렸을 터. 흑산도는 예로부터 조기, 고등어, 삼치 파시가 성황을 이루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삶아 왔던 곳이다.


먼 바다 나간 낭군 기다리다가 속이 검게 탄 ‘흑산도 아가씨’

지금이사 청정해역에서 잡은 흑산도만의 특산품 홍어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면서 섬사람들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흑산도는 수심이 깊어 중국 쪽에서 오는 상어도 잡힌다. 그래서 집집마다 작은 상어를 내다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남녘 바다애서 대접받는 우럭은 흑산도에서는 지천에 깔려 있는 생선으로 찬거리로 삼고 있을 정도. 흑산도에 오면 어느 섬모퉁이에서나 낚싯줄을 드리우면 우럭을 잡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감성돔, 돌돔, 참돔도 많이 잡히고 봄에서 초겨울까지는 농어가 많이 잡혀 이를 겨냥한 강태공들이 몰려오는 섬이기도 하다. 


지금도 물이 귀해 5일제 급수제를 하는 흑산도는 적은 땅에 농사를 지어야했음으로 묘지를 사용하지 않고 무인도로 건너가 가족들의 주검을 바람에 발효시키는 풍장을 했던 가슴 아픈  섬이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 전통을 이어 목포 등 밖에서 장례를 치룰 경우 고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화장을 해야 하는 관습이 있다.


그러나 어른을 섬기는 정신만은 숱한 세월 속에서 한결같이 물결치고 있었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마을마다 한달에 한번씩 어른들을 모시고 야유회를 갖는데 이날도 깃대봉 양지바른 숲 그늘에서 죽항리 섬사람들은 망중한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이방인을 불러 홍어 한점과 막걸리 잔까지 권했다. 이것이 홍탁이던가.


선비들도 유배왔다가 섬과 섬사람에 정든 곳 흑산도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과 한동안 섬과 홍어 이야기, 고기 따라 드넓은 바다를 누비다가 태풍을 만나 목숨을 구한 이야기 등등....특히 홍어는 사흘쯤 삭혀야 제 맛이고 막걸리에 곁들여 먹으면 좋으며 좋은 홍어는 칼질할 때 찰떡처럼 찰진 육질을 드러난 것이며 좋은 홍어부위는 홍어애(창자)라고 일러주었다. 역시 홍어는 흑산도의 명물이었는데 포구로 돌아설 즈음에도 마음씨 좋은 횟집 아저씨는 홍어 썰기를 하다가 나그네를 불러 기름소금에 물코라는 부위를 잘라 입에 넣어주며 소주잔까지 권했다. 그 귀하다는 홍어를 순전 공짜로 다 맛본 셈이다.


어쩜 외딴 섬이기에 유배지가 되었겠지만 이런 인심과 유배 온 선비들과의 오랜 만남 속에서 그들은 더욱 풍부한 감성과 넓은 가슴을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억울한 유배를 하면서도 목민심서를 썼던 강진 벌판과 마량포구, 마량포구의 인연과 함께 이곳에서 15년의 유배생활을 한 약용의 형 약전은 누구보다 섬과 섬사람에 대한 애착이 컸기에 남서해안 바닷고기와 해산물 155종을 채집하여 어류학 총서 ‘자산어보’를 집필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후기에는 강화도 조약에 관한 상소로 면암 최익현마저 유배생활을 했던 흑산도에는 선비들의 정신적 쉼터로, 강인한 삶의 체험지였던 셈이다. 그런 고귀한 영혼들을 기리고 꽃피우듯이 섬 안에 온통 풍란과 각종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후박나무 군락지인데 멀리서 보면 붉은 꽃등을 들고 서 있는 듯한 그 자태에 매료돼 다가서보면 꽃이 아니라 잎들의 오묘한 조화로 등잔을 드는 모양새이다.


주의보가 해제되자 포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목선들의 통통대는 엔진소리와 함께 나부끼는 깃발만이 역시 섬의 생동감을 말해주었다. 너무나 청명한 아침 날 다음 기항지를 향해 떠나는 데 언덕배기에 한가로이 암소 한 마리가 풀을 뜯다가 흑산 앞바다를 향해 연신 ‘음메~’를 외쳤다. 그도 무슨 그리움이나 기다림 탓인가? 아니면 흑산도 풍어를 기원하던 것이었을까.... 


○ 흑산도 가는 길

1. 항공: 김포항→목포항

2. 대중교통: 버스(서울 강남고속버스→목포터미널), 기차(용산역→목포역)

3. 해상교통: 목포항-흑산도: 07:50, 08:00(짝수 날만 운항), 13:20, 14:00

배편문의: 해운조합(061-240-6011)동양고속(061-243-2111), 남해고속(061-244-9915)

4.섬내교통:

흑산항에서 마을버스 운행. 택시(1코스 3만원, 2코스 6만원, 3코스(일주. 3시간) 8만원선.

택시문의: 개인택시(061-275-9775), 동양택시(061-275-9744)

부속 섬 운항(가거도, 상태도, 하태도, 만재도) 매일 10시에 출항. 비성수기와 성수기 불규칙 운행. 반드시 여객회사에 문의 후 출발 필요.

5. 숙박: 흑산비치호텔(061-246-0090 5만원), 여관 및 민박(3만원)


글, 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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