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거북 (사진=데일리스포츠한국 제공)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⑩ 송수권, ‘아내의 맨발’
너무 가까이 있어 너무 긴 세월 잊혀진 그 이름, 아내여!
뜨거운 모래밭 구덩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도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 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 간다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 송수권, ‘아내의 맨발- 갑골문’ 전문
거북의 발바닥은 온몸을 지탱하며 기어 다녔던 탓에 말발굽처럼 주름지고 그 만큼 무감각하게 탄탄해졌다. 순결한 시절에 꽃다운 나이로 시집와서 간지럼을 타며 첫날밤을 보냈을 아내의 발바닥을, 시인은 환갑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병실에서 마주쳤다.
그것도 “나이 쉰 셋/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에서 생사를 오고가는 수술실을 향하는 침대차에서 아내의 발바닥을 바라봤던 것이다. 생사를 알 수 없이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의 아내.
가난한 시인을 위해 그토록 “진흙 밭 삭은 잎 새 다 된 발”,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이었다. 아내에게 못 다해준 세월들이 너무 원통해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을 보내지만, 아내는 그 혓바닥의 감촉마저 느끼지 못한다.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홀로 울 뿐이었다.
그렇게 시인은 백혈병을 앓은 아내를 구하고 먼저 이승을 떠났다. 10월 28일은 송수권 시인의 고향 고흥에서 제4회 고흥군 송수권 시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후학들은 서정성이 절절한 작품을 낭송하면서 그의 시세계를 그리워할 것이다. 어디 시인의 아내뿐이랴. 우리에게도 너무 가까이 있어 너무 긴 세월 잊혀진 그 이름이 아내 아니었던가. 오늘은 탈무드 경구를 되새김질해본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데일리스포츠한국>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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