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⑨ 이재무 시인의 ‘갈퀴’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들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서 갈퀴를 부른다
- 이재무, ‘갈퀴’ 전문
사진:; 데일리스포츠한국, 연합뉴스 제공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첫 화두부터 뇌리를 내리친다. 독자에게 가하는 그 정서적 충격만큼, 생태시에 관한한 시인의 경지는 넓고 깊다. 이재무 시인의 작품은 늘 가볍지 않은 문장과 민중적 정서를 과하지 않게 유연하고 읊조리는 기법이 일품이다.
“흙은 못 견디게” 가렵지만 “실실 웃으며/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올린다. 흙먼지도 시인의 가락 속에서는 떡고물이 되고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흙이 간지러운 것은 “으쓱으쓱” 새싹들이 크고 있기 때문. 녀석들은 마치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란다.
그렇게 갈퀴는 할아버지 울 아버지 등허리 긁어주는 효자손처럼 아름다운 손이다. 흙 이랑을 가지런히 빗어준다. 시인이 아름답게 빚어낸 시어들의 울림은 들녘마다 기쁨으로 희망으로 여울진다.
이런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염무웅 평론가는 “시의 가장 깊은 바탕에 한국인 삶의 뿌리인 흙의 감각이 살아있다”라고 평가했다. “일상의 경험적 진실성을 서정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농사꾼 아들로 6남매 맏이로 태어난 시인의 시력 36년.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슬픔은 어깨로 운다’,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등이 있다.
이재무 시인은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 대상, 난고문학상, 풀꽃문학상, 편운문학상, 송수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천년의 시작’ 대표이고 숙명여대 등에서 시 창작을 가르친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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