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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⑧ 이성부, ‘벼’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18. 10. 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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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우러져 기대는 삶, 넓디넓은 사랑과 넉넉한 힘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이성부, ‘전문

 



가뭄과 태풍을 만나 한바탕 몸부림친 후에 가을을 맞는 벼. 풍년이면 풍년인 대로 흉년이면 흉년이어서 주목받는 한해살이 풀, . 농부로 상징되는 벼는 다사다난한 격변기를 거쳤다. 시인이 등단한 시기인 70년 격동기도 가난과 개발과 독재의 이중고를 겪었다.

 

반세기 세월이 흘렀음에도 가 전해주는 울림은 여전히 강렬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분단조국의 한반도는 도전과 응전의 지렛대 역할을 해내며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사물인터넷 등이 4차 산업을 상징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민초들의 터전은 땅이고 땅이 역사적 공간이면서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교감지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본주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정서적으로 각지고 피폐화 한 삶일수록 벼가 웅변하는 공동체화두는 중요하고 빛날 수밖에 없다. 이 시의 키워드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이 넉넉한 힘의 원천을 공동체이고 이를 떠받치는 힘은 넓디 넓은 사랑이다.


,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시와풍경]은 <데일리스포츠한국>, <리빙tv>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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