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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송수권 음식시론(詩論)

섬과 문학기행/시인을 찾아서

by 한방울 2012. 3. 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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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꼬막과 주꾸미, 대게와 뻘낙지에 대한 찬가

송수권 시인, 음식시집 <남도의 밤 식탁> 출간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송수권, 한, 뻘, 음식시집, 남도풍류

남도풍류의 음식문화를 읊조린 시집이 나왔다. 음식에세이집 <남도의 맛과 멋> <주간동아>에'송수권 풍류 맛 기행'을 연재해왔던 한국풍류문화연구소장인 송수권 시인은 최근 우리나라 음식시를 모은 시집 <남도의 밤 식탁>(작가)을 출간했다.

 

모두 5부로 나뉘어 총 80편의 음식시들을 수록한 음식시집 출간 동기를 묻자, 송수권 시인은 "시각은 교육에 의해서 길들여진 이미지를 생산하고 미각이나 후각은 시각에 선행한 본능적 원형감각 이미지를 생산한다"면서 "그런데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음식문화에 대한 시집 한 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산발적으로 써온 음식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새 시집으로 묶어냈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5년<산문(山門)에 기대어>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며, 남도의 서정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종래의 서정시가 생(生)의 에너지를 상실하고 자기 탐닉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한을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힘으로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는 문공부예술상, 금호문화예술상, 소월시문학상, 영랑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남도의 밤 식탁> 표지 송수권 시인의 음식시집은 남도 음식을 통해 남도 풍류와 남도인의 삶의 면면을 여러 각도에서 노래하고 있다.

 

 

참꼬막과 주꾸미 그리고 우리네 삶에 대하여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중략)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이 있는 詩를 쓰라고 퉁을 맞았지요

 

<퉁>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여기서 '퉁'은 꾸지람, 통사리의 뜻이다. 야무지게 생긴 보성 벌교 뻘밭의 꼬막을 통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시를 써온 이들을 우회적으로 질타는 모습이 이채롭다. 맛은 감각이고 멋은 감성이니 맛과 멋이 어우러지지 않는 정신과 삶이라면 그 영육은 조화롭지도 못할 뿐 아니라 정신과 행동의 일체적 삶을 구현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꼬막을 통해 찰지고 옹골찬 삶에 대해 묵상케 한다. 그런 시인의 은유적 발상은 끈끈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남도의 한(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뿌리에서 흘러나온 한의 줄기는 <봄날, 영산포구에서-주꾸미회>라는 시로도 이어진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뱅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맑고 푸른 남도의 하늘을 보면 '환장하다'는 표현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없다. 시라는 것은 이렇듯 극과 극이 통하는 묘미가 있다. 화가 치밀어 환장하기도 하지만 너무 아름다워서도 환장하기도 하니 더 어쩌란 말인가. 그게 남도 정서이다. '왱뱅'은 전라도 사투리로 앵병을 말한다. 부뚜막 위에 가전식초병이다. 숯검댕이로 온통 그을린 시골 정개(부엌) 부뚜막에는 늘 왱뱅이 있었다. 이래봬도 어머니가 직접 만든 자연산이다. 그 향토적 정서가 '오도방정'이라는 단어 때문에 더욱 정겹다. 그러면서 나즉한 뱃고동까지 들려오니 주꾸미 한 마리가 그려내는 남도 포구 풍경치고는 참으로 위대한 스토리텔링의 한 토막이 아닌가.

 

경상도 대게와 전라도 뻘낙지의 삶

강구항 입구에 들어서면 대게 찌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참으로 시골스럽고 아늑하다. 그렇게 강구항은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로 더욱 휴머니즘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곳이다. 전라도의 깊은 겨울밤은 집집마다 김을 말리는 발장이라는 것을 엮기 위해 공돌 치는 소리로 야단인데 반해, 경상도 강구항 겨울밤은 영덕대게 다리를 두들기는 소리로 야단법석이었다.

 

딱, 딱, 집집마다 게발 때리는 망치 속에 떠오른 불빛

게장국에 코를 박으면

강구항에 눈이 설친다

게발은 때릴수록 밤이 깊고

12월의 막소금 같은 눈발이

포장마차의 국솥에서도 간을 친다.

 

<겨울 강구항- 대게를 먹으며>라는 시는 맛깔스런 대게가 투박하지만 순박한 어민의 삶에 비유됐다. 눈이 설치고, 그 눈발도 막소금 같고, 더욱이 포장마차에 웅크린 사람들이 짜디짠 인생살이를 국솥에 간을 치며, 내 삶의 여정을 간을 보고 있다. 그래서 맛 기행은 그 자체가 삶의 여정이고 깨달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진정 맛을 아는 사람만이 사는 맛을 아는 사람일지 모른다.

 

<뻘물-낙지>라는 시는 그 깊은 맛이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기까지 한다.

 

이 질퍽한 뻘 내음 누가 아시나요

아카시아 맑은 향이 아니라 밤꽃 흐드러진

페르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한

이 질퍽한 뻘 내음 누가 아시나요

(중략)

여자도 낙지발처럼 엥기는 여자가 좋고

그대가 어쩌고 쿡쿡 찌르는 여자가 좋고

하여튼 뻘물이 튀지 않는 꽹과리 장구 소리보단

땅을 메다치는 징 소리가 좋아요

 

페로몬(pheromone)은 암꽃이나 암벌이 수컷을 부를 때 내뿜는 분비물이나 그 냄새를 말한다. 뻘내음에 코를 박아본 적 있는가. 뻘은 무좀을 잡아 삼킬 정도로 강렬하다. 그 강렬함에서 낙지가 살고 참꼬막이 살고 수평선을 들썩이게 하는 수많은 해양 미생물이 산다. 호수의 연꽃의 삶처럼 뻘밭 낙지의 삶은 엥기는 여자와 동급이다. 최소한 옹골찬 여성 정도 될 것이다. 낙지발처럼 엥기고 쿡쿡 찌를 수 있는, 살 부비면서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사랑 같은, 진하고 진득한 사랑 같은 낙지발. 낙지에 대한 의미부여는 결국 뻘의 정신에 연유한다. 장구소리보다 더 진한 징 소리라는 의미는, 오대양을 오가는 서양의 수천 톤 크루즈의 위엄보다도 더 웅장하고 깊은 울림의 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의 힘이다. 그 뻘의 정신은 남도의 진하고 질퍽한 한(恨)이다.

 

 

 송수권 시인 송수권 시인은 남도의 서정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종래의 서정시가 생(生)의 에너지를 상실하고 자기 탐닉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한을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힘으로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아왔다.

 

 

남도 한(恨)의 자유로운 편곡과 즐기기

막걸리를 소재로 삼은 <시골길 또는 술통>은 남도의 한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송수권 시인만의 독창적 절창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은 그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희망의 강한 물줄기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 시에 매료됐던 필자는 대학 글쓰기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시 한 편을 낭송케 하는데 봄 학기이면 어김없이 이 시를 읊게 한다. 잊어져가는 우리 시골풍경을 잘 보여주고 첨단 디지털 시대에 너무나 멀어져 간 그러나 너무나 그리운 남도의 아름다운 유산을 되새김질해주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서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TV문학관>이나 농촌 다큐<3일>을 몇 문장으로 압축한 것 같은 시골 파노라마가 너무 리드미컬하다. 술통이 뛴다. 바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길이 바퀴살을 돌린다. 창작에서 낯설게 하기라는 툴이 이렇게 문장을 비틀어 춤추게 할 수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비포장길의 돌들이 튀는 것이 아니라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시골길이 술을 들이켜 비틀거린다. 모두가 즐겁다. 울력이나 품앗이 때 들이키는 것은 동네 사람뿐이랴, 길과 돌과 풀들도 함께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무위자연이다. 길은 돌고 돌아 비틀거리는 곡선이지만 결국 다함께 주막집까지 뛰는 즐거움을 즐긴다.

 

구판장 아낙은 읍네 양조장에서 배달돼온 술통을 받는다. 아저씨가 술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개구쟁이들이 구루마에서 뛰어내리듯. 고무줄 잡아당겼다가 놓듯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흑백 앨범 속에 묻힐 뻔한 70~80년대 우리 농촌 풍경이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오랫동안 환영, 환청 같은 것을 관객들에게 울리면서.

 

잊혀져가는 한국전통문화유산과 풍류의 참맛 그려낸 시집

이처럼 이번 송수권 시인이 낸 신작시집 <남도의 밤 식탁>은 우리 농어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디지털 세대에게서 멀어진 토속어의 재발견과 우리가락에 대한 새로운 관찰과 모색을 하게 한다.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유산과 풍류의 참맛이 무엇인지를 음미케 한다.

 

그대는 한국의 풍류가 무엇인지를 아는가. 새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우리 음식문화가 깃들인 남도 시인의 감칠맛 나는 서정시를 읽으며 그 맛과 멋을 찾아 봄맞이 여행을 준비해보면 어떨지.

 

덧붙이는 글| 필자 박상건은 시인이고 섬문화연구소소장으로 섬여행가와 섬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웃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섬 바다를 품다, 대한민국 건기사전, 언론입문을 위한 기사작성 실무,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 글쓰기 등이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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