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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서해 섬여행 - 어청도, 팔미도, 백령도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11. 7. 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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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ㆍ박상건 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서해북단 절해고도 어청도
군산 고군산열도에 딸린 섬 63개 중 서해북단 외딴 섬 어청도. 해안선 길이 10.8km 군산항에서 6km 망망대해에 떨어져 있다. 기상변동이 심해 인근 외연도, 연도까지는 일기예보가 맞지만 어청도는 수시로 변한다. 실제 군산항까지 갔다가 세 번이나 주의보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가 네 번째에 어청도에 상륙했지만 결국 하룻밤 사이 풍랑주의보로 발 묶이고 말았다. 어청도는 서해 영해기선領海基線 기점 중 하나. 대한민국 서해영토 마지막 경계선이란 뜻이다.

 

서해에서 가장 늦은 속도의 여객선이 운행돼 느림의 미학으로 철썩철썩, 터벅터벅 건너가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고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카뮈는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뿐”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고독은 평안과 만족에 이르는 과정이다. 각진 일상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 섬에 스스로를 맡겨볼 일이다. 전쟁 때 군량미를 보관하던 섬이었던 어청도는 서해안에서 제일 먼저 무선표지가 설치됐다.  

 

 

 ‘무선표지’는 등대에서 일정한 지점에 전파를 발사하면 항해하는 선박이 방위를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선박들은 망망대해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어청도로 대피했다. 어청도 등대는 이런 난기류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유인등대로 가는 길은 마을 시누대 숲길을 지나 40여 분을 걷는다. 산 중턱 팔각정에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100여 미터 절벽으로 이어진 황톳길 끝자락에 등대가 서 있다. 100년을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아무 조건 없이’ 뱃길 길라잡이 역할을 해 온 어청도 등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동기와 발전기를 돌려 등댓불을 밝혔고 그 원료가 며칠에 한 번씩 오는 배편에 실려 오면 드럼통을 지게에 지고 해발 100미터의 가파른 산길을 오고 갔다.

 

어청도 등대는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등대 중 하나이며, 2008년 7월 14일 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제378호)되었다. 12초마다 1회씩 불이 깜박이고 불빛은 37km 먼 바다까지 비춘다. 멀리서 바라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남쪽 끝 희망봉 등대처럼, 어청도 등대는 고도 61m에 우뚝 서 마도로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어청도는 수심이 깊어 김, 미역, 다시마 양식 등을 할 수 없다. 주민들은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지 않아 물고기가 산란하는 해초들의 손상이 없다. 고기를 잡을 때도 20cm급 이하 물고기는 바로 풀어준다. 아낙들은 섬 기슭에서 돌김, 해삼, 전복 등 해산물을 채취하여 먹거리를 해결하고, 주로 봄부터 가을까지 찾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민박과 낚싯배를 운영하며 산다. 한때 포경선의 주요기지이기도 했던 어청도는 검은이마직박구리가 국내 최초로 발견됐고 고니 서식처로서 유럽 철새탐조 여행객들에게도 유명한 섬이다.

  


우리나라 최초 등대섬 팔미도 해안과 숲길을 걷다
팔미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섬이다. 인천항에서 13.5km 남쪽에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 역사적인 섬이다. 그동안 해군이 주둔하면서 섬 출입이 통제돼오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월 개방됐다. 106년 만에 일반인들이 그 섬에 드나들고 있다.

그해 봄, 5월 31일 ‘바다의 날’을 맞아 방송 촬영팀과 팔미도 탐사에 나섰다. 바다와 섬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그곳은 풍요의 대상이며 안식처이다. 피안의 대상이다.


어족, 해조류 등 해양문화자원과 생활사의 보고이며 바닷길을 통한 교류의 장이고 침략의 지름길이다. 역사·문화적 인물, 신앙과 종교문화가 공존한다. 그런 점에서 팔미도는 우리네 해양문화를 그대로 상징하는 섬이다. 

 
팔미도 해변은 유난히 굴 껍데기가 많다. 본디 모래가 많던 섬에 인근 해역의 오염과 모래 채취사업으로 해산물이 죽고 모래가 휩쓸려 나가 다른 곳에서 모래를 실어와 되살린 섬이다. 다행스럽게도 탐사에서 고동과 따개비들이 되살아나고, 가마우지가 살고 있음을 알았다. 섬 안에는 칡, 해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등이 서식한다. 숲길을 거닐면서 앞으로 펼쳐진 인천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등대 아래 해송을 새끼줄 꼬듯이 수직으로 비비꼬며 타오르는 것은 짙푸른 담쟁이넝쿨. 우리네 삶도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반반씩 버무려 비비꼬며 사는 것은 아닐까. 넝쿨들이 보듬고 타오르는 그 숲속에 우뚝 솟은 하얀 등대. 등대를 중심으로 한쪽 뱃길은 여객선이 항해하는 내항, 한쪽은 국제여객선과 화물선의 외항이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들은 앞다투어 인천항에 자국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그때마다 팔미도 등대는 침략의 이정표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등대는 그 나라 힘이 약할 때는 침략의 거점이고 힘이 강할 때는 개항의 상징이다. 그래서 등대의 역사는 곧 개항의 역사이며 그 나라 국력의 바로미터이다.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는 서해 최북단 섬이다. 본래 황해도에 속했다가 해방 때 북한군이 철수한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기후변화가 심해 백령도 사람들은 “누구나 올 수 없고 아무나 나갈 수 없는 섬”이라고 말한다.


북위 37°52′에 걸쳐 있어 2km 앞이 38선이다. 곳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서 북한과 팽팽하게 맞서고 한편으로 서로의 충돌을 막아 평화가 공존하는 중요한 섬이다. 섬 가운데는 담수호가 있는데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여 붕어와 망둥어, 숭어, 놀래미 등이 함께 산다. 6월이면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세계에서 두 곳 뿐인 천연백사장과 물범 서식지
사곶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은 모래 사이에 뻘이 뒤섞여 형성된 곳이다. 모래 속에 비단조개, 게, 골뱅이 등이 서식해 ‘살아있는 모래’라고 부른다. 3.7km의 백사장은 6·25 때 유엔군이 활주로로 사용했던 천연비행장. 자동차가 시속 1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이런 신비의 모래해변은 세계에서 이탈리아 나폴리와 사곶해변 두 곳뿐이다.

 

콩알만 한 자갈들이 1km 해안을 이룬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은 규암이 파도에 부딪히고 씻기기를 반복하면서 깎인 돌들의 해변이다. 작은 돌들은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엷은 청색 등 형형색색으로 문양까지 새겨져 있다. 이곳 섬사람들은 콩돌로 반지를 만들어서 예물로 사용했다. 두무진(명승 제8호)은 백령도 북서쪽 4km의 해안을 말한다.

 

투구를 쓴 장군들이 회의하는 장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의 해금강’으로도 불리는데 기암절벽에 수천 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선대바위, 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 갖가지 맵시가 연출돼 감동케 한다. 절벽 곳곳에 해국이 피고 갯질경이, 갯메꽃이 자라며, 물범 서식처로서 4월~10월이면 바위와 수면 위로 올라와 그 자태를 뽐낸다. 백령도에서 제일 높은 해발 184m 산기슭에 해병대 흑룡부대가 있다. OP(군사관측소)에서 바라보이는 저 편으로 북한 섬들이 보인다. 북한 장산곶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

 

맑은 날에는 월래도, 석도, 갈도, 장재도, 방소도, 약도, 서미도, 어업도, 수업도 등이 아스라하다. 남과 북, 한반도 섬들을 팽팽히 당긴 푸른 바다가 수평을 이루고 있는 그 상공을 아무 일 없는 듯이 오늘도 물새들은 평화로이 비행을 하고 있다.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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