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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너를 그리며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10. 8. 3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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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오르는 길을 잠시 멈추고

산등성 마루턱에 앉아

한번쯤 온 길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달이다.

 

발 아래 까마득히 도시가,

도시엔 인간이,

인간에겐 삶과 죽음이 있을 터인데

보이는 것은 다만 파아란 대지,

하늘을 향해 굽이도는 강과

꿈꾸는 들이 있을 뿐이다.

 

정상은 아직도 먼데

참으로 험한 길을 걸어왔다.

벼랑을 끼고 계곡을 넘어서

가까스로 발을 디딘 난코스,

 

8월은

산등성 마루턱에 앉아

한번쯤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달이다.

 

오르기에 급급하여

오로지 땅만 보고 살아온 반평생,

과장에서 차장으로 차장에서 부장으로

아, 나는 지금 어디메쯤 서 있는가,

 

어디서나 항상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은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는데

우러르면

별들의 마을에서 보내 오는 손짓,

그러나 지상의 인간은

오늘도 손으로

지폐를 세고 있구나.

 

8월은

가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케 하는 달이다.

 

- (오세영,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전문)

 

 

 

8월이 간다.

“오르는 길을 잠시 멈추고/산등성 마루턱에 앉아/한번쯤 온 길을 뒤돌아보게”한다. 걸어온 길 보다 가야할 길이 짧은 길모퉁이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이거나 구름을 바라본다. 붙잡아도, 붙잡지 않아도,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의 바람이 나그네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8개월을 거닐었다.

세밑 오기 전에 너무나 다사다난했다. 우리는. 가는 길 허물어기도 하고, 허물어지다 만 길에서 되돌아서기도 하고, 저마다 먼저 건너려다 함께 넘어지기도 하고, 그 길 가장자리에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빗줄기에 질퍽이는 길 걷고 걸으면서 8월,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8월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너와 나는 어디메쯤 와 있는가.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지금 이 길목에 서 있는가. 그래도 가을하늘은 마냥 푸를 것이고,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구름을 손짓하며 남은 4개월에 희망을 품을 것인지, 달려온 8개월 쓰라림과 아픔을 잊기 위해 배려와 버림으로 살아갈 것인지.... “8월은/가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

 

 

 

8월은 간다. 멈출 수 없는 구름결에 가을로 간다.

꽃 지고 단풍 붉게 타오르고 귀뚜라미 울어 예며 야단법석을 떨 산천의 가을은 푸르름 혹은 녹슬어 가는 낙엽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겸허 질 터이다. 다시 눈 내리고 모든 것들이 산천초목의 밑거름이 되어 썩어 흙이 되는 모습 앞에서 너무나 경건하게 눈물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성대 겸임교수)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8868&PAGE_CD=N0000&BLCK_NO=5&CMPT_CD=M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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