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비행장이 있던 모래벌판 섬 | ||||||||||||
[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9] - 여의도 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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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속한 여의도 면적은 8.48㎢. 여의도의 ‘여(汝)’는 ‘너’, ‘의(矣)’는 어조사로 ‘네 마음대로’ ‘너의 것’ 등을 뜻한다는 설과 ‘너른 벌의 섬’, ‘너벌섬’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양과 염소 기르고 재첩 캐던 섬
여의도는 그런 모래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혜의 생태섬이었지만 가난과 전쟁으로 점철되던 당시 사람들에게, 특히 개발론자들에게 여의도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그래서 ‘네 마음대로’ 섬이라는 뜻에서 ‘너섬’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여의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해방 뒤의 일이다. 해방 전에는 일본군 비행장이 있던 탓에 주변에 민간인들의 주거가 금지됐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양말산 기슭에 20평 남짓한 살림집 50채를 지어 만주와 일본에서 귀국한 50가구를 살게 했는데 이들이 여의도 첫 정착민이다. 여의도는 1916년 9월 일제가 간이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비행기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2년 12월 안창남의 모국 방문 비행도 이곳에서 실시됐다. 1945년 광복군의 이범석 장군이 귀국한 곳도 여의도 비행장이었다. 1936년 김포 비행장이 새로 건설된 후에도 여의도 비행장은 존속했고 8·15 광복 후에는 미군이 한때 사용하기도 했다. 즉, 여의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해방 후 한국 공군의 발상지로 명명하기도 한다. 현재 성남의 서울공항이라고 불리는 부대가 바로 이곳 여의도에 있었던 부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의도 한복판에는 비밀 지하 벙커가 설치됐고, 일부 언론이 발굴 보도하기도 했다.
* 이 글은 인터넷서울타임스(http://www.seoultimes.net)에도 동시에 연재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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