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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9. 7.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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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에는 상념에 젖곤 합니다.

제 아이디가 한방울인 것은

이 한 방울을 좋아하는 탓입니다

 

요 며칠 출근 길 아파트 철쭉이며

울타리를 치던 장미가 여름 문턱에서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참 많이도 안타까웠습니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면서 문득,

그 시든 풀잎이며 꽃잎들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조무래기들이 나뒹굴던 잔디도 기지개 켤 수 있을까,

그 기다림, 설레임, 작은 희망이 빗줄기마다

제 가슴에 새순으로 돋는 듯 합니다.

 

그럴 수 있을까, 기대 반 기우 반으로

창가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

초복에 내리는 이 빗줄기를 응시하노라면,

하늘나라 개천에서 콸콸 쏟아지고 넘쳐 흘러온 것처럼

온 세상을 빗줄기가 퍼붓는 날에는

마치 새순을 토닥이는 봄비처럼 청아하고 청량한 마음으로

출렁출렁 흔들리곤 합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는 문득,

마음 한켠에 남은 부끄러운 눈물처럼 비에 젖어들곤 합니다.

게으르거나 무지한 주인장 탓에 거실에서 말라가던 고무나무와 난 줄기

뒤늦게 영양제를 꽂고 별의별 조치를 다 해보았지만

끝내 생기 난 얼굴로 조우하지 못한 그 생명에 덧붙여

이 빗줄기 온몸으로 뿌려대고 함께 젖어들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들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하릴없는 바람일 것임을 잘 압니다.

 

 

어쩜, 빗줄기는 그렇게 잊고 싶은 것들에 대한,

그리워하며 다가서지 못한 것들, 그런 얼굴들에게

조물주가 희망의 씨앗으로 뿌려대고 나부끼는 기호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 마음의 한마당에 뚝, 뚝 지고 퍼져가는 빗줄기가

도화지 위에 그리는 낙서가 되어 상념의 꼬리를 이어갑니다.

 

창가에 서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그 한 방울이

그런 영상의 기표들이 다가섰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빗줄기는 그렇게 사색의 바다를 이룹니다.

샛때로 강처럼 계곡처럼 먼지 낀 창틀에 고였다가

녹슨 시간을 데블고 흘러갑니다....

 

 

창으로 흐르는 빗줄기는 서로 사선을 그으며

손에 손을 잡고

한 강물이 되어 흘러갑니다.

고층 빌딩 아래로 하염없이 바람이 되어

온몸으로 끌고 낙화하는 꽃이 되기도 합니다.

물보라가 되어서 결국은 하얗게 사라집니다.

어쩜, 빗줄기는 사라져서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비의 생명력인지도 모릅니다.

버려서, 비워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 빗줄기 빗방울입니다.

 

그 사색의 공간을 흔들며

비가 하염없이 내립니다.

소란스럽고 단절된 소통의 한복판에서

허공을 가로지르고 부서지는 파도가 되어

빗줄기가 세차게 퍼붓습니다.

그 빗줄기가 오늘은 무척 새롭게 풀잎처럼 무지개처럼 피어오릅니다.

 

 

만물은 허무에서 나와서 무한을 향해 움직인다고 하죠.

빗줄기는 그런 공간에서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지르는 듯 합니다.

“나는 존재하는 전부가 아니다. 허무와 싸우는 생명이다.”라고

다시 소스라치는 바람에 제 몸을 던지며 빗줄기는 말합니다.

“나는 허무가 아니다. 허무 속에 타는 불이다. 영원히 싸우는 자유의 의지이다”라고.

 

그렇습니다.

지금 내리는 빗줄기는,

우리네 삶의 한켠을 흔들어 깨우는,

목탁소리이며 정열이며 생명이며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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