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가덕도 등대에서 하룻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국토해양부 부산해양수산청 가덕도 청소년 등대캠프에서 [글쓰기와 여행]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갔었다. 특강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장난꾸러기로 난잡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사는 일은 곧 삶의 희망 찾기였다고 말했다.
어린 날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아이들. 거개 소녀가장이거나 고아였다. 그러나 시종 밝고 예의바르던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일러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깨닫는 자가 스승인 것을 무엇을 말하랴. 그곳에서 너무나 많이 배우고 왔기에 나는 다시 소감을 정리해두었다. 그해 여름 소년 소녀들과 아름다운 등대원들, 그 얼굴이 오래도록 그리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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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밤바다를 비추는 가덕도 등대)
그간 너무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덕도 청소년 등대캠프에 동행하는 일은
바삐 길 떠나는 삶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인 것을
세상의 바다에서는 밧줄을 느슨하게 풀 줄도 알아야함을 배웠습니다
특강 강사로 가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제가 너무 많이 생각하고 깨닫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 것을
자연 속에서 누가 무슨 말장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가없이 깊은 자연의 철학 앞에서 말입니다
섬으로의 여행은 일상의 각진 생각을 버리고
잠시나마 한가함을 가져다주는 듯 합니다
홉즈는 한가함이야말로 철학의 어머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한가함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공(空), 또는 허(虛)입니다
여행은 인생의 엑기스를 마시는 일입니다
여행은 이미 만들어진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일입니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할 뿐입니다
자연과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맛보는 그 어설픈 한가함은
자연에서 자꾸 이탈한 욕망의 그림자를 거두어주는 듯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잊어버린 마음의 보물을 찾으며
자기를 탐색해 보는 것입니다
가덕도로 가는 길에는 보급선을 탔습니다
보급선은 등대원들의 식량과 등대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기름과 시설물들을 나르는 선박입니다
섬 기슭에 선 무인등대나 바다에 뜬 등부표를 관리하기도 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일을 하는 배를 타고 가는 길은
괜스레 행복해집니다
물새들도 덩실덩실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래짓을 해댑니다
가덕도 등대로 오르는 길은 숲길이었습니다
솔숲에서 풍기는 송진 내음이 자욱하고
해풍을 먹고사는 동백꽃도 활짝 피어
천혜의 숲길을 들어서는 이방인들을 기꺼이 반겨주었습니다
(가덕도 등대 앞바다의 노을)
가덕도 등대는
왼쪽에서는 해가 뜨고 오른쪽에서는 해가 지는
아주 풍광이 빼어난 등대였습니다
여기서 시를 낭송하고
가곡을 부르고
그저 말없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가 도착하고 난 얼마 후에
노을이 졌습니다
노을지는 야외에서 아름다운 만찬을 했습니다
저 노을이 하루를 열심히 살고 가듯이
소년, 소녀들아,
아니 우리 모두들
잠시 외롭고 슬플지라도
저 파도가 노을을 감싸고 더 깊어지는 삶을 살듯이
우리도 뜨거운 사랑으로 희망으로
더 옹골차게 깊어 가는 삶을 살자고
식사 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담을 나누었드랬습니다
(사진= 가덕도 등대원 숙소 창밖으로 밀려오는 아침햇살)
내일 다시 태양은 떠오르듯이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정열이니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올 미래를 믿으며
세상의 바다에 희망의 닻을 던져보자
인생은 살아볼 만 한 거라고
이 세상의 바다를 뜨겁게 보듬고
둥글게 둥글게 살아보자고
저 해변의 조약돌들이 둥근 것은
저 물살들이 절망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물살을 처 올린 탓이라고
우리는 이 세상의 바다에서
이 풍진 세상의 바다에서 희망의 둥근 돌을 굴리면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파도치며 살아보자고 다짐했드랬습니다
누구나 산다는 것은 바둥바둥 파도치는 것
저 통통대는 통통배도
해안선에 부서지고 퍼렇게 멍든 파도도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을 터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밀려와서 다시 밀려가는 세월 속에서
큰 바다와 어깨동무하며 살아왔을 터
우리도 언제나 꿈꾸는 파도가 되자
우리도 언제나 푸른 섬이 되자고 다짐했드랬습니다
밤새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던 바다에
아침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해는 한순간에 이 바다로 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의 꽃에 물 조리개질을 하듯이
차근차근 넓은 바다 한 길에 은빛물살 뿌리면서
서서히 이 바다를 데피며
전율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율하는 바다로 배들이 포말을 감아 돌리며
항해 길에 나섰습니다
아침은 그렇게 희망으로 가는 포구인 셈입니다
포구에는 물살이 밀려오고
쓰러지면 다시 시작하는 절망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인 바다의 상징입니다
포구는
항해의 시작이자
정박의 끝입니다
찬바람 어둠 속에서
밤새 불빛 밝혀 저 바다에 아낌없는 사랑을 퍼주던
등대의 가슴을 햇살이 널어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 등대 아래서
우리는 먼저 마음 퍼 주고
그 빈자리에서 우리도 모르게 피어나는
그 소담한 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앞서 온 어려운 세상살이를 하는
소년 소녀들을 초청해 아낌없이 음식을 만들던 등대원들의
깊고 애틋한 손길이며 마음 씀씀이들
그늘 없는 모습으로 감사히 먹겠다며 수저를 들던
그 마음들에 모두 모두 감사하다는 마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여행은 이런 삶을 통째로 보여주어서 좋습니다
우스개소리도 잘하고
그 천진난만하기만 하던 청소년들의 모습
그들의 미래도 저 등대처럼 온 세상
뜨겁게 불빛 밝히길
이 세상 당당하게 항해하는 선장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런 행복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참 감명 깊고 아름다운 가덕도 등대 여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보낸 아름다운 시간들이
오늘도 등대의 아름다운 불빛이 되어
이름 모를 사람들의 뱃길이며 저 바다의 허공마다에
잊혀지지 않을 영혼의 불빛으로 피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아이들과 등대원들이 참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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