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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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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방울 2008. 5. 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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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박상건(전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언론학박사)

 

기자란 무엇인가. 기록하는 사람이다. 기자(記者)에 굳이 ‘놈 자(者)를 쓰는 깊은 뜻은 “모든 영역, 즉 잡다한 일을 하고 이를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사와 세상 사람의 문제를 포괄하여 기록한 사람이니, 기자출신 철학가 카뮈의 “신문기자란 그 날 그 날의 역사가”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일직이 송건호 선생은 “신문기자는 민족주의자요, 민주주의자이며 민중을 지도하는 사상가”라고 말했다. 그린데 오늘날 기자들은 신문사 월급쟁이로 변질됐다고 질타했다. 리영희 선생은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1988년 기자협회에서 원고청탁을 하자 “신문지 만들지 말고 신문을 만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당시에 비하면 민주주의는 훨씬 진전되었다. 그러나 언론은 여전히 빙점이거나 퇴보 중이다. 최근 지방지와 중앙일간지 풍경을 보자. 먼저 지난 3월 부천 기자실에서 벌어진 이른바 ‘오물투척사건’은 코미디도 아니다. 부천시 출입기자는 70여명인데 이중 도내 신생지 20여명이 기자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기자단에 들어오지 않는 기자들이 부천시를 지나치게 비판한데다가 광고량이 적어 빚어진 갈등”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이들을 인정하지 않은 출입기자측은 “광고를 주지 않은 식당 등에 보복기사를 쓰는 등 근본적으로 기자의 자질문제가 심각했다”며 광고 배분과는 무관한 공정보도와 자정운동을 강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언론의 책무는 비판 감시기능이다. 기자단 자체가 유착 가능성을 염두한 행위이다. 기자는 보도자료 필경사도 아니고, 광고수주 사원도 아니다. 오직 검증저널리즘을 통한 공적저널리즘의 커뮤니터(Communicator)이다. 여기에 자치단체장이 비판기사를 자주 쓴다는 이유로 특정신문의 구독중지를 지시하고 해당 언론사에 출입기자 교체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검찰이 기자단 소속 3개 신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곧 결말이 나겠지만, 인천경기 기자협회가 기자단해체 등 실천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은 부적절하다. 마치 수도권 기자들의 관행에 대한 암묵적 동의로 비춰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공정보도는 자정운동 없이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선 도덕성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기자의 공명성이 부각된다. 그래서 배고프지만 ‘놈자’의 의미를 아로새기면서 기자의 길은 가는 것이다. 숱한 편견과 신문산업의 위기 속에서 몇몇 양질의 지역신문이 특종과 중앙 일간지로 기자를 배출하면서 전통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려 노력하고 언론운동의 선두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중배 선생의 지적처럼 “진짜 사이비는 중앙 일간지 사주”일 것이다. 중앙지를 보면 아직도 경품제공 등 내놓고 불공정거래를 하면서 기업의 불공정거래는 죽을 짓을 한 집단처럼 몰아친다. 특히 <조선일보>는 거대한 친미담론을 가지고 여중생 장갑차 촛불시위를 반미시위라고 보도하더니, 10대들의 광우병 촛불시위마저 “반미의 운동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움직임과 합쳐졌다”는 식으로 만사를 이데올로기 문제로 덧칠한다.

 

이런 오만과 편견의 극치는 제 잘못은 보지 못한 채 “TV의 괴력은 언제든 TV의 폭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방송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한 쪽으로는 방송진출을 서두른다. 괴력이 폭력으로 바뀔 수 있음은 이미 그들의 발자취가 다 말해준 것이 아닌가. 오죽하면 10대들이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 신문사 건물을 손짓하며 “00일보 쓰레기”, “000은 찌라시”라는 구호를 외치겠는가. NIE(신문활용교육)와 논술세대인 이들은 매우 논리적이면서 미디어 학습효과가 높다.

 

2008년 신문의 날 공식 표어는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이다. 이제는 제발이지 표어대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언론의 길을 꿈꾸고 싶다. 신문이 세상을 제대로 읽어야 독자가 신문을 펼쳐줄 것이 아닌가. <독립신문> 창간일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삼은 것은 그만큼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자유와 품위를 스스로 다지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수많은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던 5월광주항쟁의 28년을 맞는 이즈음에 우리 언론이 진심으로 다시 깨어나 어둠을 넘어 시대의 희망을 좇아가는 대열에 서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마침내 정도를 걷는 언론과 아름다운 동행의 참 민주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임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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