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고독한 섬, 어청도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08. 3. 1. 09:52

본문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59] 서해북단 절해고도 어청도와 등대를 찾아서

 

어청도 앞바다에서 제일 먼저 파도를 맞는 가진여 무인등대

 

풍랑주의보가 내려지고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오는 선창가에 등대 불빛이 켜지고

경비정에서 밤바다를 비추는 불빛이 서서히 켜지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에서 솟아 국토의 기준선이 되는 섬

어청도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이다. 군산시 고군산열도에 딸린 섬 63개 중 서해북단의 외딴 섬이다. 조선 말엽 충남 보령군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북 군산시 옥구면에 편입됐다. 섬 면적은 1.8 ㎢, 해안선 길이는 10.8㎞이다.

 

어청도의 봄은 더디게, 더디게 오고 있었다. 군산항에서 66㎞ 망망대해에 떨어져 기상변동이 심한 섬이다. 주민 이용원(47)씨는 "인근 외연도, 연도까지는 일기예보가 잘 맞지만 어청도는 하루에 기상이 여러 차례 변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 필자도 서울에서 군산항까지 갔다가 세 번이나 주의보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마침내 네 번째에 어청도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하룻밤 사이에 풍랑주의보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외롭고 고독하게 험난한 바람 속에서 크는 섬 어청도. 어청도는 서해 영해기선(領海基線) 기점 중 하나다. 영해기선은 국가 통치권이 미치는 영해(領海)가 시작되는 선으로 통상기선이라고도 부른다. 서해와 남해는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섬들이 많아 적절한 지점 설정이 필요한데 이 기준선을 직선기선이라고 부르며 정부는 1977년 이를 선포했다.

 

본디 제일 오른쪽 계단식 하얀등대 하나가 세워졌다가 해일사고 이후 원통형 하얀등대 빨간

등대가 디귿자로 세워져 거센파도를 두번에 걸쳐 더 막아내고 있다. 

 

카뮈는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뿐"이라고 말했다. 느림의 미학으로 철썩철썩, 터벅터벅 봄을 향하는 외딴 섬 어청도에서는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고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인간에게 고독은 중요하다. 평안과 만족에 이르는 시발점이다. 각진 일상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킨다. 고독한 섬에서의 하룻밤은 그런 고독과 인생의 가치를 진실로 체험하는 실험실이다. 그리고 고단하게 부대끼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처다.

 

대숲 지나 돌담길의 어청도 등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전쟁 중 군량미를 보관하던 섬이기도 한 어청도는 서해안에서 제일 먼저 무선표지(無線標識, radio beacon)가 설치됐다. '무선표지'는 등대에서 항만, 항로 등 어느 일정한 지점에서 전파를 발사하면 항해 중인 선박이 이를 수신하여 그 지점에 대한 방위를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어청도 등대는 굴곡의 삶을 살아온 어청도의 역사와 함께 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들이 거센 바람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찾아오는 대피항이 어청도항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은 중국 대륙고기압으로 인하여 풍랑과 폭설이 잦았다.

 

어청도 등대는 이런 난기류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등대로 가는 길은 마을 시누대 숲길을 지나 40여분을 걷는 산길이다. 산 중턱에 팔각정이 있는데 땀을 식히며 어청도항과 마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다. 유난히 대나무와 소나무가 많은 구릉선 산지인 탓에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채소 등을 군산에서 사다 먹는다.

 

해망도로 팔각정에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마을 뒤편 산등성이를 내려서는 길은 60여m의 절벽으로 이어진 황톳길이다. 등대는 그 끝자락에 아담한 돌담길로 에워싸여 있다. 어청도 등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대륙진출의 야망에 따라 전략적 목적으로 세워졌다.

 

검산봉 해송사이로 보이는 어청도 전경 

 

백년 전통의 어청도 등대가 망망대해를 굽어보고 있다

 

근 100여년을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아무 조건없이' 망망대해 뱃길의 길라잡이 역할을 다해온 어청도 등대. 이성원, 최종관 두 등대원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오자마자 풍랑주의보가 내려 고생이 많겠어요? 다음부터는 저희 등대로 먼저 일기예보를 물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등대원은 유인 등대 불빛뿐만 이처럼 시간 단위로 기상청에 해상 날씨를 문의해 파악하고 무인등대도 관리한다.

 

어청도 등대는 1912년 3월 첫 불빛을 밝혔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동기와 발전기를 돌려 등댓불을 밝혔다. 며칠에 한 번씩 오는 배편을 통해 기름 드럼통을 받아 지게에 지고 해발 100m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 등대 불을 밝혔다.

 

어청도 등대는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에 윗부분을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만들어 조형미가 으뜸이다. 등대 윗부분 홍색 등롱과 하얀 등탑 그리고 돌담이 바다를 낀 채로 등대를 껴안은 모습은 해질녘 석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망망대해에서 구세주처럼 반짝이는 등대불빛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등대로 선정된 어청도 등대는 초기 등대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수은 위에 뜨게 하여 등명기를 회전시키는 '중추식 등명기'가 귀중한 유물로 보존되고 있다. 12초마다 1회씩 불이 깜박이고 불빛은 37㎞의 먼 바다까지 비춘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남쪽 끝 희망봉 등대처럼, 어청도 등대는 고도 61m에 우뚝 선 마도로스의 '희망'이다. 유럽 여러 선박들이 대서양을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던 긴긴 여정에 희망봉 등대는 구세주처럼 다가섰다. 어청도 등대도 그런 항해자에게 안도의 한숨을 전하며 든든한 동행자 역할을 한다.

 

1989년 8월 29일부터 이틀간 어청도 해상에 '초속 25m'로 바람이 몰아치던 폭풍우 사태가 있었다. 파고 5m의 해일이 어청도를 들이닥쳐 선원들이 사망·실종하고 어선들이 침몰하거나 포구의 배들이 뭍으로 밀려온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어청도항에는 하얀 방파제 외에 두 개의 방파제가 디귿자 모양으로 더 설치돼 지금은 주민들의 평안이 되어주고 있다. 등대원들은 이처럼 섬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바다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맑고 푸른 어업전진기지, 고래잡이서 낚시꾼 천국으로

중국 산둥반도와 300km 떨어져 있는 어청도는 다른 섬과 달리 시조가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전횡이다. 그는 중국 제나라의 재상을 지내다 왕이 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 천하를 통일하자 추종자 500명을 이끌고 어청도에 피신하여 밭을 일구고, 고기를 잡으며 최초 원주민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한왕 고종이 보낸 사자에게 붙들려 본국으로 잡혀가던 중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전한다. 전횡의 넋을 위로하고자 백제 옥루왕 18년 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치동묘이고 지금도 어민들은 이곳에서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해무가 끼며 한폭의 동양화가 되는 농배섬. 고니 서식처이다.

 

섬기슭에서 만난 딱새 한마리

 

어청도(於靑島)는 "물 맑기가 거울과 같아", '어조사 어(於)', '푸를 청(靑)'자를 쓴다. 수심이 깊어 김 미역 다시마 양식 등을 할 수 없다. 양지식당 김차남(50·여)는 "어청도 주민들은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지 않아 물고기가 산란하는 해초의 손상이 없습니다"며 "고기를 잡을 때도 20cm급 이하 물고기는 바로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낙들은 섬 기슭에서 돌김, 해삼, 전복 등 해산물을 채취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민박을 한다.

 

주의보가 해제되자 아침 주낙낚시를 어획한 후 돌아오는 어선과 선창가 

 

어청도 에메랄드 빛 바다는 어업전진기지로써 우럭, 돌돔, 참돔, 감성돔, 방어, 농어, 놀래기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우럭과 농어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낚시꾼들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대표적 낚시 포인트는 비안목, 가진여, 불탄서, 신목여, 사생이골, 등대낚시터 등이다. 선상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6개 지역에는 인공어초가 조성돼 있다.

 

어청도는 과거 고래잡이를 위한 포경선의 주요기지였다. 동해에서 고래를 잡던 포경선은 12월부터는 4월 봄까지 어청도를 배를 돌려 밍크 고래 등을 잡았다. 1985년까지 연평균 900마리를 잡을 정도였고 당시 1마리 가격이 3천여만원에 달했다. 2006년 6월 12일에도 길이 6m, 무게 6t 가량의 밍크고래 1마리가 그물에 걸려 발견되기도 했다. 고래잡이 호황은 70년대 어청도 인구를 1만명으로 끌어올렸다.

 

천혜의 섬을 골재채취구간으로 지정하다니?

어청도는 검은이마직박구리가 국내 최초로 발견된, 희귀 철새 266종의 안식처다. 어청도항에 사이좋게 서 있는 두 섬 농배섬은 고니 서식처다. 희귀조류가 많아 조류학자 닐 무어스 등 유럽 철새탐조 여행객들에게 더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청도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목격했다. 군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것이다. 지난해 군산항 기점 5개 항로를 오고가는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50만5286명. 선유도는 전년 대비 22%(22만8066명), 말도는 29%(2만7708명) 증가한 반면 어청도는 2만2404명으로 10% 감소했다.

 

하루 두 차례 운행하던 여객선이 한 차례로 줄어들었다. 94명 정원의 낡은 여객선이 저속으로 먼 바다를 오고가기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주민들은 차량을 선적할 수 있거나 1시간 30분 내에 오갈 수 있는 쾌속선으로 교체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소장 박상건)가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섬'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섬 여행의 가장 큰 제약'으로 '섬으로 가는 교통편'이 1위(38.9%), 그 다음이 숙박(17.1%), 섬 정보(15.2%), 바가지요금(15%), 섬 내 교통(11.6%) 순이었다. 어청도는 여객선 문제와 섬 내 해안도로 개설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섬의 문화적 가치에 무관심하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어청도 외해 40㎞인근지역을 4년 동안 4천만㎥의 골재를 채취케 하는 골재채취구간으로 지정했다. 모래채취는 결국 해안침식으로 태풍이나 해일 때 재앙의 원인이 된다.

 

동해안 방파제에서 너울성 파도로 인명사고를 부른 것도 결국 모래유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래를 파서 일시적으로 집 한 채, 빌딩 한 채 더 짓는 일이 섬의 문화적 가치보다 결코 우선할 수는 없다. 인심 좋던 어청도는 요즈음 골재채취 보상금 문제로 갈등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아무튼 천혜의 섬이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 사이에 2001년 주민 428명이던 것이 2008년 3월 현재 행정서류상 280명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실거주자는 150명에 이른다. 역사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아름다운 어청도가 옛 명성을 되찾길 간절히 소망한다.

 

○ 어청도로 가는 길

1. 승용차: 서해안고속도로 북군산IC(706번 지방도-군산 방면)-성산(27번 국도)-군산여객선터미널/호남고속도로 전주IC→전주∼군산간 산업도로 군산 분기점→군산여객터미널

2. 고속버스: 서울-군산 간 20~30분 단위 운행(버스문의: 1544-5551)

3. 배편 문의: 군산여객터미널(063-472-2712) 계림해운(063-467-6000)

관련글 더보기